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하고 멀쩡한 정신으로 어떻게 그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창조할 수 있단 말인가?
위대한 돌+아이 중의 하나인 툴루즈 로트렉 전시회를 보러 갔다. 한국에서는 처음 열린다는 로트렉 작품 전시회.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로트렉 전은 예술의 전당에서 지난 5월 3일까지 열렸다.
지난해 9월 열렸던 베르나르 뷔페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도슨트의 해설을 곁들인 관람을 하고 나서 도슨트 해설의 썩 유용함에 매우 만족해하는 중이다. 최근 도슨트들이 관람객들을 몰고 다니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로트렉 전시회에서도 도슨트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정우철 도슨트의 해설 시간대에 맞춰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이 있을 정도이니 한 번쯤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작품 감상을 훨씬 풍성하게 할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럽다.
전시회를 알차게 보려면 도슨트 해설 시간 전에 넉넉하게 도착해 미리 작품을 한번 훑어 봐야 한다. 도슨트 해설 시 기본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정우철 도슨트의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1시간 정도 로트렉의 삶에 대한 스케치를 곁들인 작품 세계에 대한 해설을 듣고 나니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프랑스 파리 물랑 루즈의 빨간 풍차를 그린 화가, 난쟁이, 알코올 중독자, 매춘굴에서 살다시피 했던 성 도착자… 로트렉을 떠올릴 때 따라붙는 이미지들이다. 몇년전 잠깐 방문했던 파리에서 이곳 몽마르트의 물랑 루즈 만큼은 봐야 한다며 들렸던 거리에서 돌고 있던 빨간 풍차는(맨 위의 사진)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몽마르트 언덕, 고흐가 살던 집이라는 문패가 걸린 집 앞에서 잠시 서성이다 내려온 로트렉의 거리 물랑 루즈는 관광객들로 빼곡했다. 생전에 서로가 같은 부류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고 몇 안되는 친구로 교류하며 살았다는 고흐와 로트렉.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조롱받고 차별받던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격려하며 서로에게 창작욕을 복돋워줬던 동료였다. 물론 항상 술과 음식은 파리 최고의 귀족 가문의 자제, 로트렉이 계산했다.
로트렉은 파리의 귀족 가문 자제로 태어났다.
한데 이 가문은 재산을 타인에게 나눠주기 싫은 탐욕적인 가문이었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촌 간의 결혼으로 가문의 계승자를 돌려 막았다. 계속된 근친결혼으로 인해 유전적으로 뼈가 부서지는 병이 대를 걸러 나타났고 하필이면 로트렉의 아버지 대를 건너 이 병이 로트렉에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불운의 귀족 로트렉은 14세 되던 해 넘어지면서 허벅지의 뼈가 부러지게 되고 이후 로트렉은 하반신 성장이 멈춰버렸다.
하반신 성장이 멈춘 채 상반신만 성장하는 난쟁이로 어른이 된 로트렉은 백작인 아버지처럼 승마나 사냥 등을 하지 못하고 대신 어머니의 지원으로 그림을 배우기 위해 화실에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며 아버지의 냉대와 멸시를 이겨내야 했다.
아들로 인정받지 못한 로트렉은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천박한 귀족성에 치를 떨기도 했다는데 그가 그린 삽화 중 샌드위치를 게걸스럽게 먹는 귀족은 그의 아버지를 빗대 그린 것이라고 한다. 삽화에 말 풍선으로 “천박해, 너무 천박해” 까지 그려 넣은 로트렉은 아버지의 차별과 냉대, 멸시를 받으며 그림에 대한 집착을 키워낸 예술가다.
이에 반해 한없이 너그럽고 죄책감을 가진 채, 평생 로트렉을 보살피며 그의 마지막 죽음까지 지켜줬던 어머니는 로트렉에게는 인자한 성모 마리아 그 자체였다. ‘천박한 아버지와 성스러운 어머니’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부모에 대한 천착을 넘어 로트렉이 다음으로 천착한 것은 파리 몽마르트 아래 마을의 유곽을 이룬 매춘부들이었다.
로트렉은 아예 이곳에 방을 얻어 자유스럽게 그들과 교류하며 귀족의 눈에 보기엔 뒤틀렸지만 사실은 생존의 삶 그 자체인 삶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그리고 기록했다. 그의 대표작 대부분은 물랑 루즈에서 춤을 추는 무희 거나 노래를 부르는 가수,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매춘부 등을 그린 작품들이다.
로트렉의 작품 메이 밀튼 포스터.
현대 회화의 대가인 피카소가 존경했던 화가, 로트렉. 피카소는 그의 작품 ‘푸른 방’에서 로트렉에 대한 존경의 오마주로 ‘푸른 방’ 작품 속 공간인 벽면에 로트렉의 작품인 메이 밀튼 포스터를 그려 넣기도 했다.
로트렉이 없었다면 앤디 워홀도 없었을 것이라는 후대 예술가들의 평이 아니더라도 19세기 후반인 로트렉의 활동 시대가 무색할 만큼 현대의 팝 아트 같다.
피카소의 푸른 방. 그림 오른쪽 벽에 붙어 있는 로트렉의 메이 밀튼 포스터가 눈에 띈다.
지금 2020년대의 작품이라고 해도 전혀 올드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림 전체를 꽉 채우기보다 사물의 특성을 극대화해 캐치하는 로트렉 특유의 기법 때문이라고 한다.
로트렉의 이 기법은 현대 회화에 가장 크게 미친 영향이라고 하니 조롱과 멸시, 냉대에도 굴복하지 않고 나만의 세계를 이룬 로트렉의 정신세계는 현대인 모두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포스터와 삽화 등의 일러스트전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열린 로트렉 전시회를 통해 현대 포스터, 그래픽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트렉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며 스스로 나를 지키고 뭔가를 이뤄내는 일에 대한 자기 단련은 어디까지 계속돼야 하는지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