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다시 지금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며, 지금은 다시 여행을 떠나는 순간
날짜를 적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날짜는 인간이 정해놓은 시간의 기준임을 알면서도 그런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가 어찌 내 마음대로 환경을 조종하면서 살겠나라는 생각으로 어쩔 수 없이 시류에 묻혀 간다. 2017년 3월 17일 금요일. 일을 일찍 마쳤다. 갈 곳도 많고, 오라는 곳도 많았지만, 붙잡는 곳이 없이 그냥 가족과 불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냥 그것이 전부였다. 아내와 아이들만 데리고 나름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볼까 했지만, 장모님의 건강이 걱정되는 관계로 그냥 장모님도 모시고 가기로 결정했다.
어디로 갈까 고민을 했다. 통영? 거제? 남해? 하동? 운전사 마음대로 하라는 아내의 말도 별로 와닿지 않았다. 여행은 그렇게 늘 무엇을 얻으며, 그리고 왜 가는 지를 항상 강조하던 나였지만,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에 대하여는 무뎠기 때문이다. 결국은 늘 익숙한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진주 동서네로 가기로 결정. 간다는 말도 없이 그냥 쳐들어 가는 재미. 가는 길에 전에 아내가 입원했다가 만난 옆 짝꿍분이 운영한다는 생선구이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결정했다. 진주 금산 청*사 앞에 있는 월*생선구이집에 도착.
주인장은 반갑게 인사를 했고, 하루 종일 굶은 나는 신나게 밥을 먹었다. 술도 한 잔 곁들이고 싶었으나, 배가 불러 포기했다. 저녁을 먹고, 바깥 어른과 인사를 하고, 주인장과 함께 이런저런 담소를 잠시 나누고 동서네로 향했다. 밤 9시가 되어서야 동서네에 도착했다. 처형이 우리를 맞았다. 형님은 도 간부들과 약속이 있어 나갔다고.
굳이 전화를 한다는 걸 말렸는데 고3 아들을 데리러 간다던 처형이 결국 전화를 했나 보다. 열시 반이 넘어 형님이 왔다. 함께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로 술 잔은 계속 비어갔다. 그렇게 피곤했던 하루는 토요일 끝이났다. 그리고 새로운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늦게 일어나서 간단히 콩나물 국으로 속만 달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하늘에는 미세먼지가 가득하여 흐릿하였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통영으로 가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래서 그냥 통영으로 출발. 통영에는 루지가 유명하다던데, 줄이 길 것이라 예상했다. 역시나 예상은 잘 들어 맞았다. 그럼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통영 케이블은 유명해도 오래되었으니, 사람이 많이 없을거라 생각했다.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줄을 서지 않아도 될 만큼 빠른 탑승으로 지루한 기다림 없이 금방 올랐다. 신났다. 어쩌면 어제의 숙취로 멍한 상태였지만, 이번 여행은 좀 제대로 해보고자 했다. 서로가 서로를 더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여행도 가끔 가지만, 자주 투덜대는 나 때문에 늘 여행이 순조롭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장모님과 함께 출발하면서 왠만하면 어머님도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머님은 늘 '됐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마음이 아프다. 뭐, 이러나저러나 내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니까 이런 것도 군소리 말고 다 받아들이자고 마음 먹었다. 어머님은 다시 날을 잡아야 할 듯 하다. 어머님이 잘 걷지도 못하는데 농사일은 죽어라 하시니 참, 답답하기도 하다. 에라 못난 놈.
케이블카에 오르는 일이 그리 힘들지도 않다. 케이블카를 지탱하는 강한 철골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나 역시 세상에 이런 튼튼한 철골물이 되길 바란다. 뭐 말처럼 쉽겠냐만은 가보지 않을 길을 가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즐겁고 재미나지만 조금 힘들 뿐이다.
케이블카에 오르자 웃고있는 장모는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내와 아들의 옷을 부여잡고 한껏 겁에 질리신거다. 그런 할머니를 정훈이는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녀석!
그리고 이내 카메라를 향해 웃음 짓는 녀석이 귀엽다. 하긴 어느 부모가 자기 새끼 귀엽지 않겠나?
그렇게 케이블카는 둥둥 하늘을 타고 산을 오른다. 걸어서 가려면 가보려 마음도 먹지 않았을 미륵산을 이렇게 오른다.
큰 아들도 나름대로 포즈를 잡아준다. 지난 주에 함께 했지만, 영 재미없게 보낸 한 주여서 미안했는데 이번 주는 제대로는 아니라도 그냥 대충이라도 놀아줘야겠다. 그렇게 케이블카는 자꾸만 산으로 오른다. 사람은 누구나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마음 속 깊은 곳의 욕망이 있나 보다. 오르면 결국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왜 그리 오르려 하는 지 알 수 없지만, 나 역시 오르려 애써는 모습을 보면 참 애처롭기도 하고, 그냥 그렇기도 하다.
케이블카는 산으로 서서히 오르고 아들의 눈길을 잡은 무언가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통영의 관광산업을 다시 살리는 루지라는 타는 기구다. 자동차도 아닌 것이 자전거도 아닌 것이 가파른 언덕을 가로질로 내려오는 짜릿함이 꽤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나 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살짝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로 결국 루지는 그렇게 신나는 놀이기구가 아님을 살짝 주입시켜버렸다. 아니 다른 것이 더 재미나다는 데로 주의를 돌렸을 뿐.
마치 스키장을 오르는 **처럼 - 이름이 뭔지 몰라서- 올라가서 타를 타고 내려오는 루지가 재미있어 보이지만 줄이 너무 길어 포기를 해야했다.
케이블카는 쉼없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아마 우리 인생도 이와 꼭 같음을 왜 모를까? 그리고 다시 돌아 오르고 다시 돌아 내리고. 인간은 자연의 일부요, 자연은 지구의 일부요, 지구는 우주의 일부이니, 아마 그 원리는 어디에나 꼭 같은데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아둥바둥대며 살고, 앞으로 어찌 될 지 모르는, 또는 언제 그리 될지 모르는 세상을 너무 독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 역시 현실적인 놈이요, 현실에 맞춰 살아간다. 하지만 늘 생각이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어찌 살겠나 싶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그리고 미래지향적으로 살아가되 늘 되돌아보고 생각하고 주변으로 고개돌리는 여유도 잊지 말아야겠다.
미륵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아마 오후 3시가 다 되어 갔다고 생각되는데,
젠장, 여기까지만 기록이 되어있고, 저절로 로그아웃이 됐나 볻다. 그 다음 글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글을 다시 쓴다는 것은 정말 골치 아픈 일이다. 생각이 수시로 변하기에 같은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글을 다시 쓸 수가 없다. 진짜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다시 적어나가기로 한다.
오후 3시가 넘었는데 점심을 먹지 않았다. 물도 한 병 들지 않고 산으로 오르는 길이 그리 쉽진 않았다. 높거나 멀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은 그저 배고픔으로 짜증이 났을 것이다.
작은 놈의 얼굴에는 짜증이 한껏 묻어난다. 오줌도 누고싶고-산에 오줌 눌 때가 없다-배도 고프고 목도 마를 것이다. 그러니 사진을 찍어도 별로 흥이 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미륵산 꼭대기 근처에 도달하니 느린 우체통이 있었다. 일주일 후 집으로 보내는 또는 일 년 후 집으로 보내는 우체통. 천원을 주고 엽서를 뽑아 간단한 메모를 했다. 그리고 작은 아들에게 펜을 넘겼다. 작은 아들은 '아레나 8을 가고 싶어요.'라고 자랑스럽게 적었다. 아마 다른 말은 별로 생각나지 않나보다. 배고픔과 목마름과 게임 생각이 제일 컸을 것이다. 녀석.
큰 아들은 제법 진지하게 글을 적어간다. 뭐라고 적었는지 기억이 가물하지만 억지로 기억을 하고 싶진 않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을 것이니, 일 년 후 중학생이 되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것이다.
작은 아들의 선택은 일 년이었다. 아마 일 년 동안은 이 추억을 간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겨울잠바가 더워보인다. 미안했다. 날씨는 좋았으나, 혹시 모르니 잠바를 입으라고 한 나의 잘못이다.
산으로 오르는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미륵산을 오르는 길은 산을 오르는 느낌이 아니다. 요즘 산은 이렇게 멋진 아니 편안한 데크로 꾸며져 있다. 이것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별로인 것일까? 사람마다 선택은 다를 것이니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 길은 흙길이요, 산은 산길이요, 바다는 물길이어야 하니까.
무슨 생각인지 큰 놈도 어슬렁거리며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며 바라보는 하늘이 시원하다.
중턱에 이렇게 멋진 바위가 넓다랗게 자리잡았다. 여기서 살아도 꽤나 재미날 것 같다. 소주 한 잔만 넉넉히 준비된다면.
미륵산 정상은 461m. 누가 그렇다고 정했는지는 모르나, 우리는 이렇게 늘 척도에 따라 산다. 나는 얼마의 산을 올랐으며, 얼마의 길을 걸었으며, 얼마의 돈을 벌었으며, 얼마의 무언가를 했는지. 늘 세상이 정해놓은 그 척도에 따라 성공을 가늠하면서 이렇게 살아간다. 일터를 떠나면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든다. 아니, 다녀왔기에 다시 이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나도 배고프고, 피곤하고, 숙취에 정신이 몽롱하니 해장술이 생각났을 법 하니까. 아마 지금 생각도 그 때의 생각과는 다를 것이다.
오랜만에 아들들과 셀카놀이에 빠졌다. 얼굴이 나름 잘 나온 듯 하다. 이날은 고양이 세수로 눈만 씻고, 머리는 자다 일어난 그 꼴 그대로인데 사진은 제법 멀쩡하게 나왔다. 우리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사나보다. 속지말라 화면빨. 이런 말이 절로 떠 오른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보니 돌언덕이 제법 멋지다. 산너머 바다도 푸르고 날씨도 화창하니 기분마저 상쾌하다. 이런 기분이 쭈욱 이러지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지금 사진을 다시보니 그때의 기분이 살아난다.
아이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 한 장이 남기는 추억이 꽤나 크다고 느낀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정말 몇 장 되지 않는 흑백 사진이 나의 추억의 전부였고, 색바른 칼라사진도 내겐 남지 않은 그런 안타까움을 돌아보며, 아이들 사진을 찍으려 무작정 셔터를 눌러대며 웃음에 젖는다. 그래도 내 손에 잡히는 사진 한 장이 더 소중한 것은 기술문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드디어 아들의 잠바를 벗겼다. 내가 잘못한 선택은 내가 조금 책임져야 할 것 같다. 잠바를 들고 가는 나도 덥다. 때론 이렇게 소중한 것이 때론 저렇게 귀찮기도 하다.
산을 내려와 서호시장으로 발을 옮겼다. 서호시장은 통영 해안도로가에 있다. 배가 고파 먼저 밥을 먹을까 했지만, 시장을 먼저 둘러보는 것이 시장에 대한 예의. 쭈꾸미가 반긴다. 얼마전 먹은 쭈꾸미 회가 생각났다. 회를 사러갔다가 주인장이 맛보라고 썰어준 쭈꾸미 한 마리가 제법 맛났었는데.
새부리를 닮아 새조개란 이름을 가진 친구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부리르 닮은 것이 아니라 전체가 새가 알에서 생명을 이뤄가는 그 모습이다. 예전에 한번 먹어 봤는데 그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란 이렇다. 아마 같이 마신 소주 맛만 남아 있기에 그럴 것이다.
거대한 홍합이 눈길을 끈다. 진짜 크다. 이 놈 한 마리 미역국에 넣어 먹으면 미역국이 시원하겠다. 바다가 주는 풍성함은 그저 눈만 즐거운 것이 아니다. 입도 한껏 즐겁게 한다.
전복이 정말 크다. 엄청나게 큰 전복은 1kg에 십오만원이란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평생가도 이런 전복 한 마리 아내에게 얻어 먹겠나 싶어서 내가 돈 벌어서 내가 사줘야 겠다. 차라리 그래야 혼이 덜 나겠다.
고소한 구이가 일품인 볼락, 회로 먹으면 끝내주는 볼락, 국을 먹어도 너무도 좋은 볼락. 볼락 가시에 쏘이면 제법 아프니 조심해야한다. 구워서 머리까지 쪽쪽 빨아먹으면 온 몸에 힘이 생긴다. 볼락.
고추를 닮았다며 신기해하는 아들에게 개불의 이름을 알려줬다.성에 관심을 가지며 고추에 관심을 가지는 아들들에게는 개불이 신기한가 보다. 예전에도 알려줬는데 그땐 관심이 없더니 이제야 관심이 생긴 듯.
포장마차의 단골 메뉴인 꼼장어가 몸을 꼬고 앉았다. 처음 포장마차에 들러 꼼장어를 먹었던 십대 그 시절이 생각난다. 포장마차에서 제법 비쌌던 꼼장어. 형님과 같이 가면 겨우 얻어 먹을 수 있던 꼼장어도 이젠 고급 음식이 되었다.
못생겨서 죄송할 필요는 없다. 우락부락한 모습이 정말 멋지다. 나름대로 자신의 모습을 강하게 어필하는 아귀는 고기의 제왕같다. 상어보다 더 강한 인상이지만, 콩나물과 만나면 맛있는 아귀찜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참 간사하다.
어시장 쥔장이 만져봐도 되냐는 아들에게 머리는 만지지 말라는 엄포를 놓는다. 어른이 봐도 입 자체가 무섭다.
바다의 산삼 해삼이 빨딱 섰어요. 진짜로 누워있는 게 아니다 바위에 붙어 있는 바닷 속 해삼처럼 벌떡 일어서 있다. 사진 찍고 싶은데 전등 때문에 어려워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쟁반으로 빛을 가려준다. 덕분에 이렇게 멋진 해삼의 선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동그란 저 모양이 주인장의 쟁반이 비친 것이다. 신기한 사진을 한 장 얻었다.
그냥 집으로 오기 아쉬워, 서피랑을 들렀다. 피랑이란 말에서 험난한 파도를 피해 언덕으로 언덕으로 오른 갯가 사람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름이야 어떻든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문학은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지만, 문학은 사람이 사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니, 삶 자체에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고 살아야겠다.
굳이 창조적인 삶을 살고 싶지는 않지만, 논리나 이론보다는 감성이 묻어나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결국은 감성을 살아가는 것이 창조적이란 말 아니겠는가? 그런데, 미래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결국은 AI와 경쟁해서 살아남기위해서는 감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아마 오래 전부터 인간에 대하여 생각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이제 미래 예측은 과거에서 시작하자. 그리고 그것이 순수한 내 이야기인냥 떠들지 말자. 난 전문가가 아니다. 난 그냥 살아가는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아내도 이 말이 마음에 드나보다. 그렇기를 바란다.
설정 사진은 언제나 멋지지 않다. 가끔 잘 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들들의 모습에 웃음을 찾는다. 배꼽이 멋지게 나온 사진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다. 아니 귀찮아서 찾기 싫다. 글을 쓰는 나도 재미가 없는데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그래서 글은 독자를 생각하면서 쓰라고 하나보다. 그래도 나는 내 글이 좋다. 누가 읽던 아니던 나는 나의 글을 써내려갈 뿐이다. 그러다 문득, 독자를 위한 글을 쓰게 되겠지. 나도 현실적이니까.
작은 놈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길 좋아한다. 제법 날랜 편이다. 작은 놈을 따라 큰 놈도 하고 싶은가 보다. 큰 놈은 제법 묵직하지 살짝 걱정이다.
그래도 멋지게 점프.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살짝 굴러 넘어지는 센스를 발휘하며 몸이 무겁다는 녀석. 우습다. 손에 쥔 메모장이 사방으로 날라 다닌다.
서피랑에서 찾은 멋진 곳.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남길 수 있는 낙서장. 낙서는 글의 시작이다. 글은 그림에서 시작되었고, 그림은 낙서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낙서는 글이다. 많은 분들이 낙서를 많이 하면 좋겠다.
피곤에 지친 듯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이들. 이것도 설정이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다. 신나게 놀다보면 피곤하기도 하니까.
서피랑을 그냥 돌아 나오려다, 99계단을 둘러보기로 결정. 아내가 '언제 다시 오겠노?'라고 하니 나도 모르게 발길이 돌아갔다.
서피랑 공작소에 계시는 이장원님을 뵙고 싶었으나, 안 계신듯 하여 그냥 길을 올랐다. 뒤에 알게 됐지만 방안에 있었다는. 삶이란 무엇일까? 나는 언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까? 지금 하는 일은 마음에 쏙 드는가? 마음에 쏙 들어야 할 것인가? 온갖 잡념만 안고 99계단을 오른다.
우스운 사진 한 장. 설정을 하기로 했으나 진짜도 동생의 궁뎅이를 때려버리는 놈. ㅋㅋ
똥침은 이렇게 아푸다.
그렇게 짧은 무작정 여행은 끝났다. 이야기를 끝을 맺기에 어제 날린 글자들이 아쉽고, 오늘 시간이 모자란다.
아쉽지만 여기서 그만 해야겠다. 다음에 또 놀러 다녀오면 글을 남겨 보도록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