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노는 법이 따로 있나?
아침 7시, 아직은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애들을 깨우러 가니 벌써 씻고 텔레비전 삼매경이다. 뭐 딱히 할 말도 없기에 그냥 돌아 나와서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는 장모님이 애들 아침을 준비 중이셨다. 나는 바깥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 화장실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떼웠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더니, 사람의 생체시계는 태양과 맞물려 정확하게도 잘 돌아간다는 믿음을 확인했다. 밤이 길어지면, 애들의 잠도 깊어지고 늘어난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애들의 잠자리 드는 시간은 늦어지지만, 기상시간은 당겨진다. 신기한 일이다. 아니 그냥 자연의 이치이리라. 나의 어린 시절도 그랬다. 논두렁에 앉아 엄마와 잠시 이야기를 하다
"엄마. 배 고프다. 집에 가자."
"그래, 벌써 열 두시가 다 되었구나."
나의 배꼽 시계는 언제나 정확했다. 들판에서 집에 도착하면 꼭 열 두시 반이었던 가물한 기억이.
그렇게 아침은 지났다. 햇살이 제법 좋은 날이다. 1인창조기업에 들러 출근부 도장 콱. 그리고 동중으로 향했다. 시간이 남아도 너무 남았다. 이런저런 전화상담을 시간을 보냈다. 차 안에 앉아 조용히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들었다. <삶의 정도>. 삶의 정도가 따로 있을까? 내가 가는 길이 정도라 믿으며, 내가 정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책을 쓴 저자들은 참 글을 잘 적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문학이나 철학책이 더 재미있는 이유는 오롯이 자신의 생각을 담아냈기에 더욱 마음이 가는 지도 모르겠다. 1시간을 중학교 1학년들과 놀다가 도서관에 오니 다시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일은 없으나 일을 만들어야 성질이 풀리니 몇몇 곳에 응모를 했다. 뭐! 잘 되라고 하지만, 늘 결과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늘 새로운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아이들이 하나둘 온다. 거북이를 사 먹고 싶다고 오백원을 달라는 둘째.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아이들에게 마저 쓰지 못한 편지를 작성하게 했다. 가족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를 완성해서 우편으로 보내버렸다. 읽어볼 필요가 없다. 아이들의 생각은 어른의 생각보다 참신하고 즐거우며 깊다. 표현이 조금 서툴 뿐이다. 그리고 한 편의 시를 적는 시간을 가졌다.
"왜 자꾸 이런 걸 시켜요?"
"내가 언제 너희들보고 글 잘 쓰라 하더나? 글씨나 정성껏 쓰라하지.하하."
"그런데 왜 자꾸 글을 쓰요?"
"생각을 키우는 거지.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생각을 키우는 거. 너희들이 쓴 글을 내가 읽어보진 않을꺼야."
"그런데 어디 보내잖아요."
"이왕 쓴 거 보내보면 좋지. 답을 찾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당선되면 기분은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