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옥자는 여전히 눈을 말똥거리고 있었다.
이불을 감고 있는 장딴지 피부 아래가 간지러웠다. 옥자는 깊은 밤 감은 눈을 말똥거리고 있었다. 밤새 뒤척일 요량인 듯 보였다. 옥자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당장 내일 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약간의 흥분과 편안함과 불안이 뒤섞였다.
아침에 부은 눈을 보며 김해로 향하던 장면이 스쳤다. 가는 길이 어땠는지 가물거릴 정도로 멍한 상태였다. 뒷골은 뻐근했다. 김해 활천동에 도착하여 낯선 이들과의 조우도 냉랭했다. 설렘은 얼굴 아래 숨었고, 어색한 웃음만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창업 과정 수업이 중간을 내달릴 때, 옥자는 흥분되었다. 고독을 즐길 시간이 내일이란 사실을 떠올랐다. 내일이 고독이라면 오늘은 틀림없이 북적임이라 생각했지만, 북적임보다는 차분함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에 옥자 스스로 놀랐다. 비빔밥 한 그릇으로 간밤의 숙취를 때우고야 옥자는 오후 과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 불어오는 이른 여름의 바람이 시원했다. 오후도 그렇게 무심히 흘러갔다.
"오늘 참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네, 모두 수고했습니다."
참여자들과 강사와의 짧은 인사가 끝나고, 옥자는 오늘 배운 것을 바로 써먹을 요량을 피웠다.
'배움은 어차피 써먹지 않으면 쓰레기에 불과하다니까.'
옥자는 불어오는 바람에 쓴소리를 날려 보냈다. 아침에 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갔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자신의 게으름에 분노가 치밀었다. 국도의 여유로움도 잊고, 빠르게만 살아가야 하는 자신이 한심했는지도 모른다. 옥자는 천천히 국도변을 달리며 담배를 물었다. 매캐한 담배 냄새가 차 안에서 맴돌았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담배 연기는 제 자리를 잃고 이리저리 흩날렸다.
생각보다 집에 일찍 도착했다. 최근 들어 몸에 힘이 부쩍 빠졌다는 생각이 스쳤다.
'쉬고 싶다.'
그러 바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낮게 중얼거렸다. 옥자는 다시 식구들을 태우고 진동의 어느 한적한 숲에 숨어있는 누군가를 찾아갔다.
"잘 지내십니까?"
"어이쿠, 오세요."
옥자와 낯선 이는 어색한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누었다.
"어떻게 하실렵니까? 저희도 마냥 기다릴 순 없어요."
"제가 가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교통사고 후 일도 하지 못하고, 아들도 잠시 일을 쉬어 요즘은 생활비도 보내주지 않네요."
"그러시군요."
"제가 주식이 있는데 주식이라도 드릴까요?"
"어떤?"
"장외 주식인데 가치가 얼마가 될지 모르는 법입니다. 지금은 한 주에 60,000원 정도 한다고 하더군요."
옥자는 조용히 주식을 검색했다. 휴지 조각보다 못한 그 주식의 존재하지 않는 존재. 예전엔 종이라도 받았지만, 이젠 숫자 정도로만 나열되는 세상에서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아니 자신이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놀랐을지도 모른다.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전화기가 고장 나서 전화가 잘 안됩니다. 손에 들고 있지 않으면 전화가 오는지 몰라요."
옥자는 황당했지만, 웃으며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함께 온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바라만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새 어둠이 내렸고, 옥자의 마음에도 어둠이 내렸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라도 있는가? 나는 여태껏 깨끗했는가?'
다시 지난날을 돌아보며 되새김질을 했다. 문득 몇몇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집에 들어와 씻고 하루를 정리하려 누웠다. 여전히 이불을 감은 장딴지가 가려웠다. 얼굴에는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듯, 몇 번이고 얼굴을 훔쳐냈다. 옥자는 깊은 밤 눈을 감고 말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