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만난 인생

세상 일이 그리 만만하기야 하겠냐만 그래도 살아갈 낙이 있는 그런 세상

by 말글손

골목에서 만나는 인생

늦은 아침에 든든한 배를 부여잡고 창동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른 가을의 따가운 햇살이지만, 부는 바람에 기분은 상쾌하다. 낡은 시멘트 담장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는 담 넘어 세상이 궁금한 모양이다. 한 여름내 더위에 아랑곳없이 기어오르는 담쟁이와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 소설가의 제목처럼 마당 깊은 집이 나온다. 밖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가정집이지만 커피를 파는 집. 가꾼 듯 가꾸지 않은 정원이 있는 마당 깊은 집을 지나면 이번에는 서각서각 소리가 들린다. 언제부터인가 원도심 재생 사업으로 하나둘 늘어난 공예작업실. 투박한 작가의 손바닥처럼 작은 서각 공예실에서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한 참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맞은편 서점 후문의 철문이 올라간다. 그 철문이 올라가고 여닫이문이 열리면 나의 아침 산보도 끝난다. 발걸음으로 시작한 육체의 산보는 끝나지만 또 다른 산보, 사유의 산보는 그 때야 비로소 시작된다.

마산에 살기 시작하면서, 골목길이 참 좋아졌다. 고향의 골목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냐마는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골목길이 이리 정겨울 수가. 골목을 돌다보면 동네서점 학문당이 나온다. 이 책 저 책 구경을 한다. 그 중에서 새로 나온 신간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발한 제목의 책. 독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듯 화려하게 치장한 표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종합 베스트 코너에 진열된 책들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하는 것도 재미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자기개발서, 경제관련 서적들이 진열되고 사회가 각박해지면 심리치유서가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수많은 책 중에 으뜸은 문학이라. 이런저런 자기 개발서에 밀려 자리를 내어 놓았지만, 창작의 고통을 안은 책. 작가의 상상과 아픔을 안고 집필된 문학서적을 보는 즐거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베스트 코너에 몇 권의 문학 책이 그나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반갑긴 하지만 여전히 아쉽다. 베스트셀러 코너의 주인은 외국문학 작품이 된 듯하다. 예전에 자주 보이던 우리나라 문학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게 줄어든 모양이다. 그나마 각종 언론에 노출되어 많이 알려진 작가 위주의 작품. 인기 작가의 소설류와 인터넷 카툰을 모방한 작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왠지 씁쓸한 입맛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면, 군살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깡마른 시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시론이니 시의 이해이니, 그런 복잡한 것은 모르겠다. 한 줄을 읽고 잠시 하늘을 보아도 그 느낌이 살아있는, 한 편을 읽고 그냥 내려놓아도 진한 여운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런 시집에 정이 가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진경산수화를 닮은 풍만한 글도 좋지만, 세한도를 닮은 시 한 구절 또한 좋다.

사실 이런 행복한 나만의 산보는 오랜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책과는 다소 거리가 있던 학창 시절에 읽은 한 권의 시집이 마음을 흔들었다. 청춘의 열정을 살짝 버무린 시집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이기도 했다. 청춘들의 만남의 광장, 창동. 그리고 약속의 장소, 학문당. 친구를 기다리다 만난 고향 친구. 그 친구는 학문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읽게 된 소설책 한 권이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었다는 친구. 사회 초년병 시절 읽고 싶은 책을 마음 것 읽을 욕심에 학문당 서점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일하는 틈틈이 관심 가는 책들을 보아두었다가 월급날 그 책을 산다는 친구. 가끔은 사장님의 배려로 철학서적, 예술서적 같은 고가의 책도을 빌려서 보는 특권도 누릴 수 있다는 친구가 부러웠다. 책을 고르는 안목도, 그런 독서이력도 없었던 터라 절반은 읽지도 않을 책을 사는 나에겐 친구는 작은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하릴없이 학문당을 찾으면, 친구는 괜찮은 책을 추천해 주었다. 그렇게 학문당과 인연은 조금씩 깊어갔다. 세월이 흘러 나도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결혼이란 것을 꿈꾸던 어느 날이었다. 예비 색시를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인연도 이런 인연이! 학문당에서 일했던 친구는 예비 색시를 보았다고 했다. 학문당 서점에 들러 “아제!”하면서 사장님을 찾던 꼬마 소녀-비록 나이는 두 살 차이지만-를 안다고 했다. 그리고 장인어른과 함께 일했다는 친구. 지금은 나 역시 학문당 서점 사장을 ‘아제’라고 부른다. 우스운 일이 되버렸지만.

그런 젊은 날의 초상이 스며있는 학문당 서점도 요즘은 힘들어 하는 모양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서 동네 서점들이 죽어나간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우리지역을 대표하는 서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다. 전국의 오래된 지역 서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2대째 가업을 계승한 학문당 서점이 가장 오래된 서점이 되었단다. 2대 50년 넘게 해오던 가업을 3대째에는 물려주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한 집안의 가업이야 문을 닫던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점은 단순한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문화를 반영하고, 만들고,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이다. 그런 공간이 사라진 세상, 인터넷 공간에서 각종 서평과, 리뷰에 따라 책을 고르고 선택할 우리들을 생각해보면 서글퍼진다. 적어도 내 아이들 만큼은 책 냄새 폴폴 나는 진짜 서점에서 이 책 저 책 뒤적이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손에 들고 집으로 오길 바란다. 시간이 흐른 어느 먼 훗 날, 이른 가을 햇살 받으며 담을 넘은 담쟁이 벽을 지나, 마당 깊은 집을 지나, 나무 깎는 소리 들으며, 산보길 끝에 여전히 서있는 동네 서점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길 꿈꾼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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