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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Mar 04. 2021

진짜 이야기

진짜로 내가 하는 이야기 사실은 아님

어느 하늘 푸른 날, 문득 산책을 나가고 싶었다. 슬리퍼를 끌고 뒷산을 어슬렁거렸다. 이것도 산행이라 숨이 차고 목이 마르니 잠시 낙엽 위에 앉아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무와 풀과 꽃을 보며 삶이란 참 신비하다고 생각했다. 쓰러진 나무에 새로 가지가 돋고, 고목의 틈새엔 풀이 자라고 그 끝에 하얀 꽃이 피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매 한 마리가 산 능선을 돌았다. 뭘 먹을까 고민을 하는지,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릴 적 뒷동산은 정말 동산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온 뒷산은 산이다. 산의 키는 줄었고 내 몸은 늘었을 건데 동산은 산이 되고 말았다. 내 마음이 쪼그라들었나 보다. 휴대전화에선 고고한 팝송이 흘렀다. 귀를 스치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는 음만 흥얼거릴 뿐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호텔에 온 걸 환영한다는데 홀로? 아니면 같이? 그렇군. 역시 모르는 거였어.

큰 쉼 호흡 소리와 함께 발걸음 하나가 꼬부랑 숲길을 올랐다. 발만 보이더니 이내 몸이, 곧 얼굴이 보였다. 앳된 숙녀가 긴 머리를 날리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뒷산이라 나처럼 방심했나. 흰 면티에 청바지. 역시 산을 오를 옷차림은 아니었다. 퍼지고 앉은 내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물 있나요?
-있긴 한데 입을 대고 마셨는데요.
-그래도 조금 막 마셔도 되나요?
난 반쯤 생수병을 건넸다. 그녀가 입가에 물병을 가져가 마시려는데 물이 왈칵 쏟아져 반은 입으로 반은 목을 타고 쏟아졌다. 물이 코로 들어갔는지 재채기를 해댔다.
-괜찮아예?
콜록거리며 그녀는 눈을 흘겼다.
-왜 그리 빨리 가요? 슬리퍼 신고. 따라오느라 힘들었단 말이에요.
-예? 뭐예?
무슨 말인지 영문도 모른 채 엉겹결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잘 가이소. 전 인자 내리 갈랍니다.
-같이 가요.
-어딜예?
-가는 길에.
-오데로 가는데예?
-저야 모르죠.
희안한 일이지만, 난 그렇게 말하는 그녀가 낯설지 않았다.
-Have we met before??
-아니요.
그렇게 우린 뒷산 오솔길을 걸어 내려왔다. 동네 어귀에 다다르고, 난 뒤를 돌아봤다.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거참. 귀신을 만났나? 털래털래 집으로 돌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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