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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Sep 02. 2024

하루를 정리하며, 차에서 내리기 전에

욕 한 바가지 눈물 한 바가지

 - 장진석-

시를 쓰는 사람은 아닌데,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문득 솟구치는 순간이 많다

특히나 라디오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시인이 나와서 시를 낭독해주면 더 그런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시를 잘 쓰는 사람도 아닌데,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문득 솟구친다

그렇게 욕망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다 현실의 땅을 천천히 걸으면서 하루를 돌아본다

오늘은 통영에 갔다 항남1번가 오행당 골목이라 불렸던 곳인데 어릴 적에 한 두번 가본 기억이 있다

근대문화유산 거리로 살려보겠다고 한다는데 어떻게 되살아날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볼 요량이었다

<통영 미식회>를 통해 음식과 사람과 문학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다시 그때의 번성을 누리고 싶단다

친구가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고 나는 그 곳에서 사람과 문학과 음식과 공간을 풀어내는 역할이다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그냥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고 차근히 준비해보겠다고 했다

초정 김상옥 선생이나 이중섭 선생의 이야기도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추억과 꿈도 담아야한다

혼자서 머리를 굴리다 엄마에게 들렀다 치매가 꽤나 깊은 엄마는 91살이다 이제 영 기운이 없으시다

엄마께 밥을 조금 차려드렸는데도 영 드시지 않는다 지어간 한약은 "약을 한 재 지어왔나?"하시며 잘 드셨다

매일 잘 드시고 기운을 차리시면 너무도 좋겠다는 바람만 남겨두고 헤어짐의 불편함에 다시 익숙해졌다

"갈 때는 뒤돌아보지 말고 가거라" 엄마는 그렇게 나를 마루에 앉아 배웅했다 걷은 게 힘드시니 다 귀찮으시다

1970, 80년대 시골 생활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골 일은 언제나 어른들이 하는 것을 눈치껏 보고 배웠다

그러다 잘 못하면 욕을 한 바가지씩 먹었다 그때는 욕 한 바가지에 눈물 한 바가지씩 흘리면서 토라지곤 했다

그러다 청년이 된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고 나서는 엄마를 보기만 해도 눈물 한 바가지가 저절로 흘렀다

그때는 절대로 몰랐던 욕 한 바가지는 아들이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가게 하려는 엄마의 사랑의 매였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경남도민일보에 들러 지면평가위원회에 참가했다 이런저런 사회 문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을 먹잔다

나는 "어제가 제 생일인데, 오늘 생일밥 차렸다고 해서 집에 가서 먹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집에 오니 나의 오늘이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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