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by 말그미

"아니, 니가 거기에 왜....?"

두 달 넘게 멈춰있던 도서관이 재가동을 시작하면서 그간 묵혀두었던 책들을 모조리 반납했는데, 다른 책에 묻혀있다가 뒤늦게 발견한 한 권의 책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동네도서관에 2월 희망도서로 넣고, 2월 말 도서관 휴관 직전에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다가

급히 읽고 리뷰 써야 할 다른 책들에 밀려 5월이 되서야 내 눈앞에 짠~ 나타난 책.

아직 반납기한이 남아있어서 부지런히 읽었다.

'나와 세상에 속지 않고 사는 법'이란 부제가 붙은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원제/불광]

스님의 이력은 좀 독특하다.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사람과 인생 모두 혼란스런 와중에 종교학을 전공하면서 불교를 접했는데, 그간의 모든 방황과 실패가 불교를 만나기 위함이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 강의 학점은 D. 그래도 결심했다. 나는 진리를 위해서 살겠노라고

그러다 군 시절 ‘고무신’이었던 착한 여인에게 홍대 앞에서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두들겨 맞는 진리를 경험한 후 출가를 결정했다고 한다. 2006년 해인사로 출가, 도림법전 스님의 제자로 스님이 되었고, 2011년부터 틈틈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수행기를 올리며 많은 반향과 공감을 일으켜 온 글들을 모아 2019년 11월에 책을 내신 것이다.

원제스님의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페친 한 분이 이 분의 북콘서트에 가던 날 올린 포스팅에 묻은 설레임때문이었다. 어떤 분인가 싶어 찾아보니 같은 대학 동문이었고, 살아온 이력을 보니 태어나서 자란 곳이 지금 나의 서식지인 대전이어서 더욱 궁금했다. 거기에다 세계일주까지 마친 스님이라니~ 궁금증 폭발 4종 세트!

책을 읽어볼 수밖에 없었다.

스님이 세계일주를 하시게 된 계기도 재미나다. 선원에서의 수행이 너무 힘들어서, ‘에라 모르겠다, 세계 일주나 가자!’ 하고 떠났다는 것이다. 2012년 9월부터 2년여간 티베트 카일라스를 시작으로 5대륙 45개국 세계 일주를 하셨는데, 수많은 고생을 한 후 수행은 훨씬 수월해졌다고 한다. 이후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는 좌우명으로 적당히 살면서 "새해에도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행복하세요"를 책의 말미에 덕담으로 주시는 분이다.(여기서 적당히는 8분지 정도의 행복과 여유, 2분지 정도의 고뇌와 번민 혹은 자각을 의미한다)


법정스님과 법륜스님 혜민스님의 책을 좋아해서 집의 책장에는 이 스님들의 책이 즐비하다. 그러다보니 원제스님의 책 내용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좀 달랐다. 기존에 내가 잘못 알고 있던 내용들, 스님들의 책에서 익히 들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 내용들을 짚어주는 부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임제스님의 '수처작주'란 말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주인의식과 연관지어 해석하고 받아들여지는데, 본뜻은 '입처개진'과 짝을 이루어 '내가 주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나로서 주인 역할을 한다'라고 해석해야 옳다는 것이다. 주인 역할을 하는 데 따로 고정된 주인이 없고 단지 상황과 조건에 알맞게 내가 주요 역할을 하는 것뿐이니, 내가 그 주인인 것이 아니고 상황이 그러하기에 주요 역할을 행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옳지 않은 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분별심에 대해 다른 차원의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중고나라에서 20대 초반으로 짐작되는 김군에게 15만원을 떼먹히고도, 사기꾼으로 고소하기보다는 오히려 2만원을 더 보내면서 '지금은 잠시동안 자네가 득을 보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자네 스스로 상처를 감당해야 할 날이 오게 될 것이네. 다만 스스로를 너무 해치지 않을 정도까지만 적당히 가면 좋겠네'라며 '날이 추우니 친구랑 설렁탕이라도 사먹으라'는 문자를 보내고 나서 정리하신 일화를 보면 시비를 가리기 보다, 젊은 친구의 앞날을 위해 자비심을 발휘하신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없고 다만 상황이 있을 뿐, 문제는 해결하는 것이지만 상황은 단지 대응하면 그뿐이라는 말씀을 이렇게 실천하신 것이다.

이는 속가의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 "이만하면 됐다"하고도 연결되어 있다.

스님은 대학 1학년 겨울방학때 학교 앞 신호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버스에 치여서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보호자도 없이 혼자 응급실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고 있을 때 경찰관이 찾아와 무슨 서류에 지장을 찍으라고 해서 찍어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 서류에는 버스기사에게 어떤 법적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버스회사와 경찰관이 내통하여 미리 수를 쓴 것이었다. 이때문에 사고치료비와 합의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주변의 걱정을 듣고 화가 났지만, 사고소식을 듣고 대전에서 올라오신 아버지가 "버스기사가 무슨 돈이 있겠냐. 이만하면 됐다." 하시곤 상황을 정리하셨다. 마음 한편으로는 억울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편에서는 아버지의 '이만하면 됐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면서 복잡한 심경이 누그러지고 상황이 정리되어갔다. 덕분에 보통사람보다 두세 배 빠르게 회복되어 석 달은 걸릴 병원생활을 한 달만에 마치고 퇴원했다고 한다.

스님은 그 뒤로 살아가면서 '이만하면 됐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자주 떠올리며 이 말에서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보다 더 큰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보면 시비를 명확하게 가려야 할 때가 있지만 옳고 그름을 칼로 자르듯 분간하는 일이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떠한 상황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려는 태도보다는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게 훨씬 현명하고 원만한 대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불교에서 자주 말하는 비움의 공덕과도 맞닿아있다. 나를 비움으로써 적절히 처신하는 말과 행동 모두가 지혜의 다양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나를 고집하고 나를 내세우면 실로 많은 문제와 갈등 상황이 벌어지지만 나를 고정하지 않고 나에 대한 상을 비운다면 삶은 훨씬 수월하고 편해진다.

이 여유로써 멈출 수 있다. 멈추는 것은 결코 포기가 아니다. 멈춤으로써, 우리는 이전의 시비나 분별로는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양상들이 펼쳐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시비로 보면 갖은 문제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 자비심으로 다가서면 심각성의 힘을 잃고 그냥 지나가는 일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더 지나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문제 삼지 않고 흘러간 것이 정말 잘된 일이구나 싶은 경우가 많다.

시비를 따지는 분별심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내려다보는 지혜와 자비심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생겨난다. 시비라는 분별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다. 멈춤으로써 드러난다. 시비와 분별을 멈추면 전체라는 흐름이 드러나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것들에서 놓인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삶과 수행에서 고통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거기에 고통에 대한 자각은 더욱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 자각이 선행되어야만 자연스레 수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너무는 말고 적당히 고통을 느끼며 살아야 할 이유이다.

걸리면 걸림돌 디디면 디딤돌이라고 한다.

똑같은 돌이라도 걸리면 우리의 앞길을 방해하는 걸림돌일 뿐이지만,

디디면 우리를 한발 한발 나아가게 도와주는 디딤돌이 된다는 것이다.

위기를 잘 활용하면 기회가 될 수 있듯이 내 앞에 닥친 고통을

걸림돌로 받아들일지 디딤돌로 받아들일지는 나의 몫이고 판단이다.

* 책 내용 가운데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 정리 :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자 함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고통을 벗어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사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변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상처를 이용해, 내가 좀 부족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나에게 이런 불우한 과거가 있으니 듣는 당신은 나를 너그럽게 이해해야 한다는 태도가 깔려있다.

그는 고통을 벗어나려하지 않고, 고통을 보내려하지 않는다. 과거의 고통을 드러내는 습관을 반복하여 집착하면서 내가 이렇게 힘든 것은 다 과거의 고통 때문이라고 쉽게 책임을 전가해버릴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고통이라도 현재의 나를 지탱하는 근거가 되면, 그 고통은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다 큰 어른이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을 여전히 소중하게 끌어안듯, 그 고통과 헤어질 수 없다며 소중히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나도 변하고, 상대도 변하고, 관계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데도 나에 대한 고집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면 나에게 선택된 어떤 것은 변화시키지 않겠다는 무의식적 고집이 생긴다. 과거의 기억이 아주 고통스럽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일어난, 지금은 없는 일이다. 그렇기게 그냥 보내주어야 한다. 계속 부여잡고 있어봤자 누구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고통은 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잘 안 되더라도 천천히 조금씩 잘 보내는 연습을 해야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리도 붙들려했던 고통이 자취 없는 무상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런 무상을 깨달을 때 본래 있던 자유가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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