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에 출간되었고, 지난 10여 년간 일상과 사회, 학교와 학생, 영화와 독서 사이에서 그가 근심하고 애정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가운데 제일 첫 번째 이야기를 필사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저자는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고 하지 않았을까?
문득 떠오르는 라틴어 구절이 있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이 문장을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개선행진에서 이 말을 외치게 한 것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우리는 마치 천년 만년 살 것처럼 굴지만
사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을 늘 예비한 채 살아간다.
그러므로
"삶이 곧 죽음이라면, 그리하여 이미 죽어 있다면, 여생은 그저 덤이다."고 한 저자의 말처럼 오늘 펼쳐질 나의 삶은 덤이다. 아낀다고 금덩이 안 된다. 아끼느라 묵히면 그저 사라지고 말뿐.
'오늘 하루도 아낌없이,
후회없이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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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6시 14분.
이토록 부질없는 생인데도 불구하고, 아니 부질없는 생이기에, 우리는 평생 욕망으로 몸부림친다. 루크레티우스Tinus Lucretius Canus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는 말했다.
“우리는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무시한다. ・・・・・・삶은 그런 식으로 소진되며, 죽음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덧없는 욕망으로 인해 삶이 소진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헛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가? 선학들은 말했다. 죽은 자에게 찬사는 아무 가치가 없다고. 그렇다. 죽은 자는 아무 말도 들을 수 없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기에 사후의 명성 따위는 당사자에게 가치가 없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우리는 죽음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죽은 자신에 대해 슬퍼할 자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다. 평생 원했으나 가질 수 없었던 명예에 대한 아쉬움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면 영원히 살 것처럼 굴기를 멈출 것이다. 소소한 근심에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행성이 충돌하는데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삶이 곧 죽음이라면, 그리하여 이미 죽어 있다면, 여생은 그저 덤이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