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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r 29. 2021

우리 모두의 임계장 이야기

최저시급 임시계약직의 삶에 대하여

임계장은 성은 임씨, 직위가 계장인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38년간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 2016년 퇴직한 뒤 4년째 임시 계약직으로 일하는 63세 노인의 노동일지가 바로 이 책이다.

그가 비정규직으로 거쳐온 일들은 버스 회사 배차 계장, 아파트 경비원, 빌딩 주차관리원 겸 경비원, 버스터미널 보안요원이었고, 이 일을 하다 척수염으로 쓰러져 해고되었다. 이 글은 그가 일터에서 틈틈이 메모한 수첩의 내용을 바탕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7개월간 초고를 다듬은 것이다. 그는 지금 주상복합건물에서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공기업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으니, 모아둔 돈도 있고 연금도 있지 않느냐? 고 묻는다면 퇴직 당시 그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어엿한 내 집을 갖고 살다, 5년 앞둔 해에 광역시로 발령을 받아 집을 구하려니 은행에서 대출받고, 직장인 신용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또 두 자녀의 대학 학자금 대출을 직장에서 받았는데, 퇴직하자마자 대출금들을 갚으라는 독촉이 빗발쳐 적금과 보험을 해약해 대출금을 갚아야 했다. 거기다 대학 졸업 후 취업예정이던 아들이 3년 과정의 로스쿨에 진학하려는 계획을 세우면서 퇴직 후에도 3년 이상 고액의 교육비를 감당하며 부양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삶에는 비상구가 있기 마련이고, 살고자 하면 살아남는 법'이라는 낙관적 믿음을 가지고 살아온 그는 노후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퇴직하자마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보이지 않는 비상구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취업전선에 다시 나서게 되었다. 처음엔 유력한 친척의 도움으로 중소 광고회사에 들어갔지만 나이 든 자신을 상사는 부려먹기 어려워하고, 젊은이들은 "아버님" "어르신"하며 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얼마 다니지 않고 그만두게 된다.

날마다 생활정보지의 구인광고를 들여다보다 자신이 그나마 할 수 있다고 여긴 단순노무직도 '근골격이 좋으신 분'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찾고 찾은 끝에 동명고속의 배차 계장에 지원하면서 그의 임시계약직 인생이 시작된다. 그러나 세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이 하도록 하게 하자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전임자 대신 뽑힌 자리였기 때문에 그는 도저히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을 의욕과 열심만으로 하다 결국 다쳐서 석 달을 채우지 못하고 해고된다. 업무상 재해이니 회사가 치료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해고부터 하는 회사를 보며 억울함이 컸지만 달리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갖은 꼬투리를 찾아내서 언제든 짜르는 일들이 다음에 구한 직장에서도 연달아 일어난다.

이런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기 위해 자리만 났다 하면 이력서를 들고 면접 보러 오는 노인들이 줄을 서있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선 사람 구하기가 쉬우니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해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비정규직이라 법의 적용을 받는 일도 없고, 설사 있다 하드래도 고무줄 조항이라 얼마든지 회사 편의대로 해석해서 적용할 수 있다는 함정이 있었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고다자'로 불리기도 하는 임계장들이 우리나라엔 얼마나 많이 있을까. 우리나라 노동자의 상당수가 60세 이상의 단기 비정규직이란 사실을 떠올리면, 임계장은 우리들 부모님의 이름일 수도, 퇴직을 앞둔 분들의 은퇴 후 얻게 될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분들의 치열한 삶과 불공정하고 열악한 삶터를 알지 못했다. 이 책의 미덕은 그 현장을 간접체험하면서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없나 돌아보게 하고, 잘못된 것들을 개선해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90%라는 오늘날의 한국에서 비정규직이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세상이 바뀌는 데 이 책이 한몫을 하리라 예상한다.


책 속 이 문장이 마음 속에 오래 남는다.  

"나도 젊을 때 같으면 이런 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지금은 견뎌 낸다.
육체적 고단함도, 정신적 학대도 나이를 먹으니 견딜 수 있게 됐다. 나이에는 그런 힘이 있다."

우리 모두의 임계장들이 육체적 고단함도, 정신적 학대도 너무 많이 견디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 임계장 이야기 / 조정진 / 후마니타스

* 표지 사진은 연합뉴스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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