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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Feb 17. 2021

섬진강변 수월정에 찾아온 봄

광양 매화마을을 거닐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변 19번 국도길과 구불구불한 화개천을 따라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의 초입까지 이어지는 약 5km의 길은 '십리벚꽃길'로 유명하다.

길 양편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벚나무에 꽃이 만개하면 안개를 뿜어 올리듯 뽀얗게 피어난 꽃송이들이 하늘을 덮은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한다. 아직 2월이니 벚꽃 피는 걸 기대하진 못해도, 양산 통도사 홍매가 피어날 정도니 남녘인 구례, 하동도 웬만큼 매화꽃이 피었으려니~ 하는 기대를 안고 하동 쌍계사에 갔건만 너무 이른 철이었는지, 범종각 앞의 백매 한 그루 빼곤 매화구경을 하기 힘들었다. 작년에 봤던 구례 화엄사의 흑매도 3월에 가서 봤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쉬움을 삼키며 쌍계사를 내려오다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다리 건너 광양 매화마을이 지척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침 작년 오늘 글로 비에 젖은 매화마을 매화꽃 사진들이 뜨길래, 광양은 더 남쪽이라 매화가 피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며 화개장터 삼거리에서 남도대교를 건넜다.

지리산 자락 아래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면 매화나무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는 마을이 있다.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 있는 매화마을로 원래는 '섬진마을'로 불렸다. 섬진강에 인접한 백운산 자락에 대규모 매화단지가 조성되어 해마다 3월이면 매화꽃이 만발하며 광양매화문화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매화마을의 농가들은 산과 밭에 곡식 대신 모두 매화나무를 심어 매년 봄이 되면 하얗게 만개한 매화꽃이 마치 하얀 꽃구름이 골짜기에 내려앉은 듯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이곳의 맑고 온화한 강바람과 알맞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매실농사에 적합해서 수확량도 한 부락에서 연간 100톤이 넘는다고 한다. 올매화인 이곳의 매화는 지리산 능선에 잔설이 희끗희끗하게 남아 있는 2월 중순 경부터 꽃망울을 터트리며, 3월에 만개하고, 매실 수확은 지리산 철쭉이 한창 피어나는 6월에 시작된다.


매실은 다른 꽃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꽃이 피고, 여름 벌레들이 극성을 부리기 전에 수확이 되어 농약이 필요 없는 청정과일이라고 한다. 매화나무 집단재배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청매실농원에는 1930년경 율산 김오천선생이 심은 90년생 고목 수백 그루를 포함하여 매화나무 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으며, 매실 식품을 만드는데 쓰이는 전통옹기 2,000 여기가 농원 뒤편 왕대숲과 함께 전통적인 분위기를 돋운다. 왕대숲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고려사 지리지》에 섬진(蟾津)이란 기록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형성된 마을로 추정되는 섬진마을에서는 매화꽃 피는 3월마다 '매화축제'가 열린다. 1995년 3월 청매실 농원이 주관한 제1회 청매실 농원 매화축제를 시작으로 매년 매화축제를 열고 있으며 때문에 매화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단다.

내가 찾은 2020년 2월 13일엔 아쉽게도 아직 매화의 개화율이 낮아서 햇볕이 잘 드는 곳의 매화는 60~70%가량 피었으나, 대부분의 매화나무엔 아직 꽃봉오리만 겨우 올라오거나 꽃봉오리도 아직 올라오지 않은 상태였다. 2주쯤 지나야 마을 전체적으로 매화가 핀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했다. 그래도 잘 정비된 매화산책로를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며 군데군데 피어난 매화꽃에서 퍼져 나오는 향긋한 매향을 맡을 수 있어 좋았다. 매화 가지 사이로 마을 아래 굽이쳐 흘러가는 섬진강과 먼 지리산 능선, 뻥 뚫린 파아란 하늘을 보는 것도 진풍경이었다. 가장 좋았던 곳은 청매실농원 뒤편의 대나무숲과 매화밭 사잇길로 한쪽은 초록이 무성한 대나무숲이고 한쪽은 진분홍빛 매화꽃이 피어있어 색의 대비가 아름다운 길이었다. 이곳까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호젓한 느낌으로 걸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청매실농원 입구에는 오래된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매화나무는 국가지정 매실명인 홍쌍리 여사의 시아버지이신 고 율산 김오천 옹께서 1017년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맨 처음 청매실농원을 시작으로 이 지역은 물론 전국 각지에 매실나무가 보급되어 농가소득 증대와 국민건강 향상에 기여하게 되었고, 세상에서 제일 먼저 아름다운 꽃을 피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청매실농원에서 보호수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나무라고 한다. 아직은 때가 일러서 가지에 꽃봉오리만 자잘하게 매달려있었다.

매화마을(섬진마을)에 가면 매화구경뿐만 아니라 꼭 들러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매화마을로 올라가기 전 왼쪽의 섬진강변에 마련된 커다란 주차장 건너편에 자리한 수월정(水月亭)이다. 이곳에 가면 오래된 문화유산과 유적들을 볼 수 있다. 주차장을 둘러싼 가로수길의 매화나무는 지금 마침 만개해서 매화마을에서 못다 핀 매화꽃을 보며 아쉬웠던 마음을 잠시 달랠 수도 있다.

수월정 주변에는 수월정 유허비(水月亭遺墟碑), 섬진강유래비, 섬진진터 석비좌대(蟾津鎭址石碑座臺)가 있다. 수월정은 조선시대에 나주목사를 지낸 정설이 만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로, 송강 정철과 수은 강항이 이곳의 멋진 풍경과 정자의 아름다움에 반해 수월정기(水月亭記)를 쓴 것으로 전해진다. 섬진강변에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곳에 수월정을 다시 세웠으며, 그 왼쪽에 1971년 정설의 후손들이 세운 수월정유허비가, 오른쪽에는 12m가 넘는 수령 290년의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다.

수월정 주변에 마련된 유래비를 통해 섬진강의 이름에 얽힌 유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본래 이 강의 이름은 모래내, 다사강, 두치강이었던 것이 고려초부터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고려 우왕 11년 (1385)에 왜구가 강하구에 침입했을 때 광양 땅 섬거에 살던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이곳으로 떼지어 몰려와 울부짖자 이에 놀란 왜구들이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자를 붙여 섬진강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어쩐지 매화마을 홍쌍리 매실가 앞에도 두꺼비 석상 한 쌍이 나란히 있고, 공원 한가운데 커다란 금두꺼비가 여인을 업은 조형물이 있을 뿐 아니라 이곳저곳에 두꺼비 석상이 설치되어 있더라니~. 잠시 쉬었다 가라고 마련해둔 돌의자에도 앙증맞은 두꺼비가 매달려있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섬진강이란 이름의 유래에서 비롯된 상징물들이었다.

옛부터 주요 통행로인 섬진나루에는 1705년에 수군진이 설치되어 1895년 진이 폐쇄되기까지 수백 명의 병사와 여러 척의 병선이 주둔하였고, 당시 수로장교였던 별장의 기념비 좌대로 사용했던 돌비 4기가 남아있다. 섬진진터 석비좌대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2호이다.

섬진진터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매복 주둔시킨 곳으로 선조 36년(1603)에는 도청창 이란 창고를 설치하고, 민간인 지원병으로 구성된 모군을 두어 지키게 하였단다. 숙종 31년(1705)에는 진으로 승격시켜 통영에 있던 삼도수군 통제영의 직할진이 되었다가,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 때 폐쇄되었다.

예전에는 석비좌대가 17개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4기만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섬진진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수군별장들의 공적비 좌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좌대의 크기는 길이 173cm, 폭 105cm, 높이 72cm이며 등에는 비신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가로 44cm, 세로 15cm, 깊이 10cm의 홈이 파여져 있다. 석조 두꺼비상은 치아가 빠진 입모양, 간략한 발 모습, 독특한 머리 모양으로 투박한 조선시대 조각기법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3월 매화가 만발한 때 찾으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을 광양 매화마을. 좀 이르게 찾은 덕분에 비록 매화꽃은 많이 못 보았지만 한적하게 즐길 수 있었다. 겨울이 매섭게 추워도, 코로나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기어이 봄은 오고야 만다는 걸 보여준 매화마을에서 일찍 찾아온 봄날을 즐기며 향기로운 매향에 포옥 빠진 멋진 시간이었다.


* 매화마을 소개는 '대한민국 구석구석'과 '두산백과'를 일부 참고했습니다. 표지 사진은 만개한 무렵 섬진강변 매화마을 풍경으로 친구가 찍어 보낸 사진입니다.


* 더 많은 매화꽃을 보고 싶으시면 요기 클릭!

https://brunch.co.kr/@malgmi7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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