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Mar 15. 2021

풍경이 삶이 되는 곳

구례 산수유마을

바야흐로 노오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산수유꽃의 계절이 찾아왔다. 양지바른 곳이라면 노란 더듬이를 쫑쫑 세운 산수유꽃들이 앞다퉈 피면서, "내가 왔노라! 봄이 왔노라!"하고 외치는 듯하다.

산수유하면 구례 산동마을을 최고로 친다. 매년 산수유축제가 열렸는데, 작년부터 코로나로 축제는 중단되었지만 여전히 산수유꽃은 핀다. 그래서 3월 중순, 산수유꽃이 만개했을 시기를 손꼽아 기다려 새벽 일찍 다녀왔다.(3월 13일 토요일에 다녀온 따끈따끈한 꽃소식입니다^^)


대전 출발시각이 새벽 4시 반, 구례 산동마을 도착시각은 7시 조금 전이었다. 예상 시간은 2시간이 안 되었지만, 곳곳에 안개가 짙게 끼어서 조심운전을 하느라 예상보다 더 걸렸다. 산수유마을에 도착했을 무렵 그곳은 이제야 안개가 깔리기 시작해서, 산밑에서부터 하얀 안개가 슬금슬금 올라와 퍼지는 멋진 풍경까지 즐길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마을 위로 올라가다 중간중간 내려 구경하면서 꼭대기에 있는 산유정까지 갔다. 산유정이 있는 곳은 산수유마을의 가장 윗동네인 상위마을이고, 서시천이 흐르는 각시계곡의 멋진 경관을 볼 수 있는 전망데크는 하위마을에 있다.


하위마을은 정유재란을 피하여 홍씨, 구씨, 정씨 3성이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설촌 당시에는 “새터'라 불렀으나 상위의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하여 하위로 개칭하였다. 마을에 유별나게 돌이 많아 담장도 전부 돌담으로 되어 있으며 산수유 나무가 집집마다 번성하고 있다. 산수유마을엔 산수유나무가 집 주변, 돌담, 개울 등 곳곳에 심어져있는데, 산동네로 불리는 산동면은 산지가 많고 논과 밭이 적은 지역이다. 그래서 생계유지에 필요한 식량작물을 재배할 땅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부족한 경작지를 피해 집 주변, 돌담, 개울 등에 산수유를 심게 되었다고 한다. 산수유열매는 약재로 쓰이기때문에 산동마을의 생계에 큰 도움을 주는 주요수입원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마을과 어우러지는 독특한 농업경관을 갖추게 된 것이다. 산동처녀는 어릴 때부터 산수유열매의 씨앗을 겨울내내 앞니로 까느라 앞니가 닳아서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였다고 한다.(이에 관한 이야기는 아래 자세히)

산수유마을엔 '구례 산수유길'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대 산수유 군락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주민들의 생활 속에 스며든 산수유농업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탐방로이다. 산동면 곳곳의 마을길에 길이 지닌 풍경과 이야기를 담아 총 5코스 12.4km로 조성되었으며,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천 년의 세월을 거쳐 형성된 독특하고 아름다운 구례 산수유마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1코스와 3코스를 걸었는데, 안개 피해서 올라가느라 순서상 3코스를 먼저 걸은 뒤 내려와서 1코스를 걸었다.


3코스 풍경길은 상위마을과 하위마을 둘러보는 길이다. 산동에서 가장 높은 마을이자 산수유나무가 가장 많은 상위마을의 풍경길은 주민생활 속에 스며든 산수유농업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이다.

상위마을에 있는 각시계곡은 하얗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어 계곡 주변으로 심어진 산수유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다. 산수유 군락지 내 돌담은 경작지를 개간하면서 쌓은 것으로 산수유나무와 밭의 경계 표시를 해주며, 토양속 수분 증발을 억제해주면서 강한 태풍에도 잘 견딜 수 있는 지지대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래되어 초록 이끼가 낀 돌담길 풍경이 노란 산수유꽃과 어우러지며 멋진 풍경을 연출하다보니, 아침 일찍 출사 나온 큰 카메라 드신 분들이 상위마을 주차장 입구의 돌담길 앞에 미리부터 자리를 잡고 계셨다. 해가 떠서 산수유꽃을 쫘악 비치는 장면을 찍기 위함같았는데, 마침 운좋게 시간을 맞춘 덕에 나도 얼떨결에 몇 장 찍었다.^^


1코스는 꽃담길과 꽃길로 다시 나뉜다. 이 길은 노랗게 만개한 산수유꽃과 지리산에서 산수유마을로 흘러온 물줄기가 만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경관을 볼 수 있는 산수유길 대표 탐방코스이다. 꽃담길이 조성된 반곡마을은 조선 숙종 10년경 남양홍씨가 정착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설촌당시 "서만" 이라 불러오다가 골짜기 밑에 소반 같은 평야지대에다 마을을 형성하였다하여 반곡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반곡마을엔 꽃담길뿐만 아니라 이곳 출신의 시인인 홍준경님의 시를 그림과 함께 담벼락에 그린 벽화도 구경할 수 있다. 이 코스엔 높은 곳에서 산수유 핀 마을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산수유 사랑공원과 산수유에 대한 전시 및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산수유 문화관도 위치하고 있어 아름다운 풍경도 만끽하고, 산수유에 대한 정보도 얻어 갈 수 있다.


산수유의 꽃말인 '영원불멸의 사랑'을 주제로 조성한 산수유 사랑공원은 산동면 산수유마을 일대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 위치해 있고, 산수유꽃 모양의 노란 조형물이 밤에도 빛을 내며 주변을 환히 밝힌다. 2월 말, 여수 다녀오는 길에 산수유가 어느 정도 피었나 궁금해서 잠시 산수유마을을 들렀는데, 늦은 밤이었는데도 언덕 위에서 노랗게 빛나는 조형물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산수유 문화관은 사랑공원의 입구에 마련된 산수유를 테마로 한 전시 공간이다. 산동마을의 산수유 농업은 천 년의 역사와 문화, 주민의 삶과 어우러진 농업경관, 전통농법의 유지와 전승, 자연생태계 보호 등의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4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이 문화관에서는 산수유를 가꾸어 온 주민들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으며, 산수유마을 및 구례여행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마침 건물 앞에 120년 수령의 매화나무가 곱게 꽃을 피워 향긋한 매향을 느끼며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061-783-5422 산수유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시면 요기로 전화해보셔요~)


산수유축제는 취소되었지만 산수유꽃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다보니, 주말에만 마을을 잇는 도로를 통제해서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을 일방통행로로 만들어 노란 조끼 입은 사람들이 차량안내를 하고 있었다. 비어있는 반대편 차선은 거리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코스를 잘못잡으면 지척에 목적지를 두고도 차를 뱅~ 돌려서 와야 하니 이 점 유의하시길!


그리고 이번에 가보진 못했지만 산수유마을에 가신다면 꼭 가봐야 할 곳 하나 더 추가!!

산동면 계척마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나무(시목)로 알려진 '할머니 나무'가 있다. 약 1,000년 전에 중국 산동성의 한 처녀가 구례 산동으로 시집을 오면서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산수유나무를 가져와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산수유축제가 열리는 곳과 뚝 떨어진 반대편에 있다보니 부러 찾지 않는 한 지나치기 쉽다. 남도여행을 하며 그간 이 마을 앞을 수없이 지나쳤더랬다. 마을 근처 도로에 '산수유 시목지'라고 쓰인 표지판을 매번 봤음에도 '산수유 묘목을 키우는 곳인가?' 하고 별생각없이 그냥 지나쳤는데, 알고보니 천 년이나 된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운전하며 가다보니 이번에도 마을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치고 나서야 '앗!' 하고 말았다. 차를 돌려서 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 마을 입구 진입로를 지나치면 다시 가기가 어려워 포기했다. 나중에 구례 계척마을 근처를 가게 되면 수령 천년의 산수유 시목인 '할머니 나무'를 꼭 보고야 말테다.(남편은 진즉 '시목'이 천 년 된 나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말하면 마누라가 가보겠다고 할꺼라 구찮아서 말 안 했단다. 우띠~ 이 숭악한! -_-+++)


* 옛날 구례 산동면에서는 처녀들이 입에 산수유 열매를 넣고 앞니로 씨와 과육을 분리하였는데(제핵과정), 어릴 때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이 작업을 반복하다보니 앞니가 많이 닳아 있어 다른 지역에서도 산동 처녀는 쉽게 알아보았다고 한다.

정력강화, 시력, 당뇨 등에 좋다는 산수유를 평생 입으로 씨를 분리해온 산동 처녀와 입 맞추는 것은 보약을 먹는 것보다 이롭다고 알려져 근처의 남원, 순천 등지에서는 산동처녀를 며느리로 들이려는 경쟁이 매우 치열하였다고 있다. 또한, 구례의 젊은 사람들은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산수유꽃과 열매를 연인에게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산수유 시목. 수령 천 년의 할머니 나무. 펌사진
이전 02화 만개한 매화마을 구경하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