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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pr 26. 2021

여보게 위양못 마실 가세!

밀양 위양못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를 알게 된 것은 2020년이었다. 성탄절 연휴 동안 달성여행을 신나게 하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남평 문씨 세거지였는데, 바로 그곳이 드라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을 찍은 촬영지 중 하나였다. 입구에 있는 드라마 촬영지 표지판을 보고서야 그 드라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뒤늦게 정주행하면서 가수가 아닌 연기자 아이유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난 '나의 아저씨'에 나온 명대사를 주제로 한 글도 쓰고,

https://brunch.co.kr/@malgmi73/10

이어서 '호텔 델루나'까지 정주행한 뒤, 여기저기 수소문해 겨우겨우 삼도천터널로 나온 제천 한 산골의 터널을 알아내서 거기도 다녀왔다.

 https://brunch.co.kr/@malgmi73/46

그렇게 아이유 팬이 된 내가 뒤늦게 '달의 연인'이란 드라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안 볼 수가 있나? 마침 남동생덕분에 넷플릭스를 볼 수 있게 되어 바로 검색해서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무려 2016년에 찍은 드라마였지만 역시나 아이유 보는 재미에 20부작 드라마를 한달음에 완주했다.


'달의 연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개기일식이 일어나던 어느 날, 남자친구와 절친에게 배신당하고 우울해하던 하진(아이유)는 소주를 들이키며 신세한탄을 하다가 공원 호숫가에서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본인이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내가 죽은건가?'하고 눈 떠보니 낯선 세계!

하진은 1,0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려시대의 해수라는 소녀의 몸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해수라는 이름과 신분으로 고려생활 적응기는 시작되고, 당시 황제였던 태조 왕건의 8명의 아들들과 깊은 우정과 사랑을 맺게 된다.


드라마 초반 그들의 유쾌하고 다정한 우정이 고려시대 개방적이고 화사한 색감이 살아나는 의상과 멋진 배경에 어울려 아름답게 펼쳐진다. 게다가 지금이라면 다시 모이기 불가능할 것만 같은 8황자의 캐스팅조합을 보는 재미도 끝내준다. 순수하고 발랄했던 해수가 점차 8황자들 사이의 흑막을 알게 되고, 왕소(이준기)와 왕욱(강하늘) 사이에서 사랑의 아픔을 알며 성숙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도 참 좋았다.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영상미 넘치는 촬영장소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 된 촬영지는 부여의 백제문화단지, 수원 효원공원 내의 월화원, 하얀 설원이 인상적인 강릉 선교장, 용인 한택식물원의 암석원, 달성 남평 문씨 세거지의 한옥들과 밀양 위양못 등이다.


달의 연인 촬영지로 가장 많은 포스팅이 올라오고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은 경기도 수원 효원공원의 중국식 정원으로 유명한 월화원이지만 요기는 사람이 너무 많을 거라 피하기로 하고, 봄이 되고 이팝꽃이 필 때면 꼭 가보리라 했던 곳이 바로 밀양 위양못이다.


밀양은 오래전 만어사를 가느라 한 번 갔던 곳인데, 이번엔 위양못을 가기위해 길을 나섰다. 먼 길이라 집에서 출발한 시각은 새벽 5시였지만, 중간중간 김천과 창녕을 들르느라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차량의 줄이 길게 늘어서서 정체된 풍경을 거의 보지 못했건만, 작년 가을 거창 감악산에 보라색 감국 보러 산에 올라가는 길에서 정체를 겪은 이후 두 번째로 차량통행이 힘들었다. 알고보니 밀양시와 시의회, 부북면행정복지센터에서 후원하는 '여보게 위양못 마실 가세!'라는 행사가 4월 24일 토요일 저녁 19:30~20:40까지 예정되어 있었는데, 내가 딱 그날에 그곳을 찾았고 그때문에 그 행사까지 더해져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들이 줄을 잇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위양못을 내려다보는 마을 위쪽 한적한 곳에 차를 대고, 위양못까지 부지런히 걸어내려갔다. 못에  이르는 길 옆으론 청보리밭이 초록빛으로 넘실대고 있어, 한창 자라나는 봄을 느낄 수 있었다.


위양못은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동쪽에 있는 62,790㎡ 규모의 저수지이다. 위양못(일명 양지)은 신라시대에 축조된, 제방 둘레가 4.5리에 달하는 저수지였으나 현재는 수리구역의 제방으로 바뀌어 제방 길이와 규모가 줄어들어 실제로 보면 아담한 크기다. '이렇게 작은 저수지가 왜 이리 인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은 위양못에 도착하면 바로 풀린다. 위양못의 둘레길을 걷다보면, 구불구불한 줄기와 연초록 잎을 드리운 왕버들나무와 소나무 이팝나무 참나무 등의 각종 나무들과 저수지 가운데 위치한 정자의 모습에 매료되고 만다.


위양못은 매년 5월이면 못 가운데 있는 정자와 눈이 내려앉은 듯 활짝 핀 이팝나무 꽃이 어우러지면서 절경을 이룬다.(이팝나무는 꽃이 필 때 이밥=쌀밥처럼 보인다 하여 이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뒤에 이팝나무로 변했다고 한다. 또 꽃이 여름 길목인 입하에 핀다고 입하목으로 불리다가 ‘이파나무', '이팝 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저수지 물로 아래쪽 들판에 농사를 짓고, 제방에는 각종 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꿨다. '위양'은 양민 곧 백성을 위한다는 뜻이다.


본래 못 가운데 다섯 개의 섬이 있었고 둘레도 1km를 넘었으며, 이 저수지의 물로 아래쪽에 있는 넓은 들판에 물을 대어 농사를 짓고, 제방 위에는 각종 나무를 심어 인위적으로 풍치를 가꾼 명소였다고 한다. <밀주구지(密州舊識)> <위양동 조(位良洞 條)>에 의하면 인조12년(1634년)에 임진왜란으로 훼손된 제방을 밀양부사 이유달이 다시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경상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167호이다.


완재정(宛在亭)은 안동 권씨 위양 종중의 입향조인 학산 권삼변 (1577-1645)을 추모하기 위해 1900년 후손들이 위양못에 세운 정자이다. 권삼변은 경관이 빼어난 위양못 가운데 있는 섬에 정자를 세우고 싶어 '완재'라는 이름까지 지어놓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뜻을 받들어 250여 년이 지난 뒤 후손들이 비로소 완재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배로 출입했으나 후대에 다리를 놓아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완재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에 팔작지붕 건물로 온돌방과 대청을 두었는데, 방은 필요에 따라 문을 여닫아 공간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게 하였다. 5월에는 눈처럼 피어나는 이팝나무 꽃이 위양못에 잔잔하게 내려앉아 파란 하늘과 어우러지면서 완재정의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다. 경상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633호이다.


● 입향조: 마음에 처음으로 정착한 각 성씨의 조상

● 완재: 중국시경(詩經)에 나오는 표현으로 '완연하게 있다'라는 뜻


위양못 입구에서 밀양시청과 부북면 직원들이 발열체크와 출입자확인을 거친 뒤 손목팔찌를 두른 뒤에야 들어갈 수 있게 했는데, 아마도 이 날이 행사날이라 그렇게 했고 평상시엔 이런 과정 없이 돌아볼 수 있으리라 여긴다.


완재정으로 들어가 고졸한 정자의 모습을 둘러본 뒤, 다리를 건너 천천히 위양못을 걸으며 보니 못가엔 돗자리와 먹을거리를 들고 소풍나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토요일 오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둘레길이  이중으로 되어 있어 그냥 걷기만 할 사람들은 위에 있는 길로 걸으면 되고, 돗자리를 깔거나 좀더 가까이에서 위양못의 풍경을 보고자 하면 그 아래 물가쪽으로 내려가면 된다.


'여보게 위양못 마실 가세!'는 올해로 11회를 맞이하는 지역행사이다. 해마다 4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열리며 다양한 공예체험과 판매, 지역농산물 판매, 지역예술가들의 작품전시, 지역민의 솜씨로 만들어진 다채로운 공예를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시대에 줄줄이 취소되는 지역축제들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려는 점은 가상하지만 너무 많은 인원이 몰리는 탓에 좀 걱정스럽기도 했다. 주차장시설을 위양못 입구에 마련해놓은 것 같긴 한데, 아직 그곳이 이용불가인지 그곳은 텅텅 비어있고, 도로를 쭉 따라 차를 주차해야 해서 더 교통난이 가중된 듯했다. 11회째나 이어져온 축제라면서 기반시설이 제대로 준비되어있지 않은 점은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또 정자에서 보기로 오른쪽 맞은편 산아래 부분은 고인 물이 썩었는지, 산책로에서 안좋은 냄새가 나기도 해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주변 농지에서 뿌린 거름냄새인지도 모르겠으나,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 빼면 위양못을 천천히 걸으며 바라본 이팝꽃이 핀 완재정과 푸른 저수지가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이팝꽃은 이제 피어나기 시작해, 위양못의 대표사진으로 꼽히는 아래와 같은 이팝꽃 만발한 모습이 나오려면 다음주쯤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달의 연인'에서  해수와 왕소(광종)의 사랑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그리고 비극으로 끝난 그들의 사랑이 뒤늦게 존재를 알게된 딸과의 만남으로 다시금 아름답게 기억된 곳이 바로 이곳 밀양 위양못 둘레길이다. 못에 반영된 하늘과 나무와 산과 완재정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해수와 왕소의 행복했던 한때를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시골의 작은 저수지를 전국의 연인들이 그토록 많이 찾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지 않을까?

이팝꽃 만발한 위양못 완재정 by 프리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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