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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un 14. 2021

그래도 텃밭은 자란다

한 달 넘게 왜 글을 못 올렸나면요...


거진 한 달만에 다시 찾은 텃밭.

5월 8일 어버이날 새벽에 상추랑 방울토마토랑 가지 모종을 심어두고, 그날 아침에 갑자기 어머님께서 쓰러지시면서 119 타고 응급실로 가신 뒤부터 텃밭을 찾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나지 않았다.


어머님의 병명은 급성 뇌경색과 뇌출혈.

새벽에 헬스장 가서 친구분과 즐겁게 운동을 마치고 오신 뒤, 어버이날 선물도 받으시고 기분좋게 식사를 끝내실 무렵 갑자기 식은땀 나고 어지럽다고 하셨다. 쉬러 가야겠다고 하셔서, "어서 쉬세요~" 하고 남은 우리는 마저 식사를 하고 있는데, 방으로 들어가시던 어머님이 복도에서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지신 것이다.

급성뇌경색이 와서 갑자기 어지러우셨던 거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시면서 뇌출혈이 왔다고 한다.

전혀 치료법이 반대인 병이 같이 오는 바람에 상황을 봐가면서 그때그때 치료법을 달리해야 해서 의사들이 난감해했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실까지 병원에 계신 시간이 2주, 상태가 좀 나아지셔서 퇴원 뒤 집으로 모셔와서 집에서 간병한 시간이 2주 4일.

처음엔 너무 경황이 없어서, 나중엔 갈 시간이 안 나서 한 달 가까이 못 갔던 텃밭을 어머님께서 저나트륨혈증으로 재입원하신 뒤에야 새벽에 짬을 내서 다녀올 수 있었다.

텃밭 가는 길은 언제나 좋다. 산딸나무 상아빛 꽃이 아직 활짝 피어있고, 호랑이소나무숲 속의 보리수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고,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의 버찌는 까맣게 익어서 후두둑 길가에 떨어져있었다. 텃밭 옆 오솔길엔 고사한 소나무 한 그루가 중동이 끊어진 채 쓰러져 길게 누워있어서 한달 전 어머님이 쓰러지셨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기대와 궁금증과 걱정을 안고 드디어 도착한 텃밭.

풀밭인지 텃밭인지 모르도록 풀은 무성했지만, 그 사이 비가 자주 내려준 덕분에(알게 모르게 텃밭 관리해주신 분이 종종 신경을 써주시기도 했을 테다) 새로 심은 모종들은 안 죽고 잘 자라고 있었다. 방울토마토엔 귀여운 꼬마 방울이들이 줄줄이 달려 있고, 아삭이상추는 딱 보기 좋게 자랐다.


초봄에 씨앗으로 심었던 시금치는 동이 올라서 이제 씨앗을 받을 만큼 무성했고, 같이 심었던 상추도 연한 시기를 지나 키가 쑤욱 자랐다. 지인이 주셔서 30주 가량 심었던 대파는 하나 빼고 다 말라 죽었나 안 보이고, 감자는 풀들과 싸우며 억척스레 버티는 중, 텃밭이웃에게서 나눔받아 심은 토란이 시금치와 상추 그늘 속에서 앙증맞게 자라고 있었다.


우선 방울토마토와 가지 줄기를 지주대와 나일론끈으로 연결해 쓰러지지 않고 자라게 해주고, 호스로 을 주면서 사이사이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대충 뽑아냈다. 텃밭 농기구 보관함에 호미가 한 자루도 보이지 않아 맨손으로 뽑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장마철 지나고 가을 농사 시작할 무렵 호미가 다 사라져서 새로 사다놓곤 했는데 올해는 유난히 호미가 빨리 사라졌다. 시간 날 때 텃밭에서 공동으로 쓸 호미도 사다놔야한다.


아침 일찍 등교하는 아들의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다가와 마음이 급한 와중에도 잘 자란 아삭이 상추를 뜯어왔다.

겨우 12주 심었는데도 수확량이 꽤 되어서 나중에 이웃과 나눔했다. 뜯어온 상추를 씻어서 아침식탁에 샐러드와 쌈으로 놓고 먹었는데 정말 건강을 먹는 기분이었다. 주인이 정신없어 한동안 돌보지 못했음에도 이렇게 잘 자라준 텃밭 초록이들에 무한감사를 보낸다.

어제부터 무척 더워진 날씨에 당분간 비소식이 없으니 오늘도 글을 마치는대로 텃밭으로 달려가 물을 주고 와야겠다. 무럭무럭 자라 빨갛게 익어갈 방울토마토가 기다려진다. 어머님 퇴원하실 때쯤엔 텃밭에서 수확한 상추와 방울토마토로 식사를 준비할 수 있겠지?^^


산딸나무꽃
버찌가 익어가는 벚나무
보리수열매
새벽 텃밭 들어서던 순간
풀밭인지 텃밭인지~~~
나오면서 돌아본 텃밭 전경
텃밭관리인께서 예쁘게 꾸미신 텃밭 입구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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