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모종 심던 날

칠월 텃밭일기 1

by 말그미

장마도 이제 끝물이라는데

6월부터 심으려고 벼르던 들깨모종을

7월 중순 막바지에 심었다.

잘 키워서 들깨를 얻으려는 건 아니고(설마~^^;;)

가을까지 텃밭에서 깻잎을 계속 공급받으려는 심사다. 텃밭 작물 가운데 가장 힘 덜 들이면서 키울 수 있고, 막상 사먹으려면 비싼 작물이 깻잎이다.


중순 턱걸이인 7월 19일 월요일.

전날인 일요일 저녁 때 갑자기 내린

소나기 양이 제법 많아서, 텃밭이 안전한지

새벽에 운동 겸 둘러보러 나갔다.


물 주러 가는 날이면 시간여유가 없어, 아침 시간 맞춰서 오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하지만 물 안 주는 날이면 여유가 있다. 그래서 관평천을 끼고 묵마을을 거쳐서 가는 빙~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요즘은 아침해가 일찍 뜨는지라

집에서 5시 반에 출발해 관평천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떠서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새로 아파트를 짓고 있는 공사장에선

이 새벽에 벌써부터 일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뚝딱뚝딱 망치질 소리, 챙~ 치잉~ 따앙 퉁~하는 쇠막대 부딪히는 소리, "어이~ 여기 여기!" 하는 인부들 목소리.


이 시간에 일하시려면 도대체 집에서 몇 시에 나오시는 걸까? 평소엔 시끄럽게만 들리던 공사장 소음이 오늘따라 생동하는 삶의 활력으로 느껴진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학원이 있는 시내로 나가면 하루가 다르게 높이 높이 올라가는 철골구조물 옆을 지나치곤 했다. 어마무시하게 커다란 구조물을 보면서 인간의 힘이 지닌 위대함에 경탄하곤 했다. 종종 구조물 어디쯤 매달려서 작업중인 사람들이 눈에 띄면 저 작은 체구의 인간이 근면과 성실로 무장한 채 공구와 기술만으로 저렇게 높은 건물을 세워올린다는 게 인간승리처럼 여겨졌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이 무참히 개발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산책로 주변에서 꾸준히 올라가는 건물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어쩌면 그때부터 마음 속에 자리한 인간에 대한 경탄인지도 모르겠다.

주황 안전막이 처진 아파트 사이로 눈부신 햇빛이 쏟아지는 풍경을 찍고는 부지런히 텃밭으로 향했다.


텃밭에 도착해 나와 함께 텃밭을 일구시는 다른 분들 밭부터 살피다보니, 나와 반대인 맨 끝에서 하시는 분 밭에 들깨모종이 빽빽히 난 것이 보였다. 아니 이게 웬 들깨모종이란 말이냐~~~ 심 봤다!!!


신탄진 모종가게에 모종 사러 간다간다 하면서 짬을 못 내 여지껏 들깨를 못 심었는데, 요 밭에서 솎아내는 들깨모종을 좀 얻어다 심으면 되겠거니 싶어 사진을 찍어왔다. 이따가 톡으로 부탁드려봐야지~


내 밭으로 돌아와 주말동안 내리쬐인 태양에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들을 따고, 장마철 전에 옮겨심은 고구마순이랑 장마철 중간에 이식한 대파의 안녕을 살핀 뒤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오후 늦게서야

'아차! 들깨 모종 물어봐야지~'

생각이 나서 톡을 드리니 얼마 뒤에 답을 주셨다.


"안녕하세요, 들깨모종은 저희 친정엄마 작품이라서요. 엄마가 한 번 와보시더니 빈곳에 깨를 심으시더라고요. 엄마께 여쭤보니 필요하신만큼 솎아가시라네요. 늘 주변 살피주시느냐 고생많으세요. 감사해요. 잘 심으시길 바래요"


이야~~~ 바로 오케이해주시네!

살뜰하고 부지런하신 그분 친정어머님 덕분에 꽁으로 들깨모종을 얻게 되었다.


오후 늦게 갈까, 내일 새벽에 갈까 하다가

저녁 먹을 무렵에 소나기가 한소끔 내리고 지나가길래 저녁 먹고 바로 다녀오기로 결정. 아들도 도와준다고 해서 함께 나섰다. 아들이 딱히 할 일은 없지만 오고가는 길에 이야기도 하고 운동도 하면 좋겠다 싶어서.


빈 땅이 그닥 넓진 않아서 20모 정도 솎아다 심으면 되겠거니 하고 솎다보니, 옆으로 쓰러지는 녀석도 있고 자잘한 녀석들은 같이 딸려와서 처음 계획보단 좀 더 솎아다 심게 됐다.


아들은 쉼터에서 있다가 심심하다며

밭으로 찾아와선,

"뭐 할까요?"하길래

"들깨 모종 심어놓은 거라도 찍어볼래?"했더니

가방에 넣어둔 내 폰을 꺼내선 밭도 찍고 일하는 내 모습도 찍고 그러다 모기 문다며 다시 쉼터쪽으로 내려갔다.

아들 내려가고 얼마 뒤 모종 다 심고 나서 마지막으로 인증샷 찍으며 띄엄띄엄 자리잡은 들깨모종들에게 잘 자라라고 얘기해주고 텃밭을 나왔다. 수돗가에서 손 씻고 아들이랑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들이 그런다.


"엄마 폰 보시면 엄마가 좋아할 만한 사진도 몇 장 더 찍었어요."


"구래? 뭘까?"

하고 들여다보니, 저녁놀 지는 풍경이다.

안 그래도 모종 옮겨심으며 저녁놀이 이뻐서 저거 좀 찍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더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일을 마쳐야 했고, 흙손이라 엄두를 못 냈는데 아들이 내 마음을 읽었다. 덕분에 소나기 내린 뒤 노을풍경 사진도 몇 장 건졌다.

아들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소 같으면 바깥에 불이 환히 켜졌을 카페렌토와 풍경사진관의 꼬마외등이 꺼져있다. 아까 소나기가 내려서 바깥에 전구를 일부러 켜지 않은 모양이다. 저녁 때 보면 꽤나 멋진 풍경이라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못 보여줘서 아쉬웠다. 풍경사진관에서 키우는 진돗개도 오늘따라 안 보였다. 몇 년 전 아들이 그 개가 귀엽다며 데리고 놀다가 정강이를 앙~ 물린 적이 있는 녀석인데 아무리 불러도 안 나와본다. 비가 와서 어디 비 안 들치는 데로 깊이 들어갔나보다. 아들은 그때 물려서 피까지 났음에도 그 개가 보고 싶었던지 한동안 개를 불렀다.


워리워리 멍멍~~ 개야~~ 개야~~~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견공이여~~!!!

원래는 이렇게 불을 밝히고 손님을 맞는 카페렌토(7/20 찍음)

집 근처 다 와서 길가에 커다란 개가 주인이랑 산책을 나왔는데, 입마개를 하지 않아서 좀 위험해보였다. 근데 옆에서 보던 아들은 개가 귀엽단다. 껴안고 자면 딱 좋겠다고~


헐~ 저게 귀엽다고? 껴안고 자긴 커녕

니가 저 개한테 깔려서 살려라고 바둥대기 딱이다!


이렇게 다른 관점의 차이라니~

역시 십대 아들의 머리속은 가늠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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