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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Oct 20. 2020

세 개의 정자를 품은 갈계숲

거창 북상 3경

거창하면 포도(20년 전 지인이 거창에 귀향해 포도농사를 지으시는데 정말 맛있다)와 거창고(1953년에 개교한 개방형 사립고. 약칭 '거고' 명성에 걸맞게 독특한 학교이념과 운영방식으로 유명하며 거창고만의 독특한 문화가 많이 자리잡고 있다) 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 지난 주말은 거창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여행은 인생과도 같아서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하는 여행보다 예상치 못한 여정에서 더욱 멋진 것들을 볼 수 있음을 보여준 시간이기도 했다.  


거창군은 경상남도 최서북부에 위치하며, 소백산맥의 준령을 경계로 경상북도·전라북도와 접경하고 있. 우리 나라 남부지방에서는 유일한 고원지대인 진안고원에 연속된 산지지대의 일부여서 덕유산, 남덕유산, 황매산, 금원산, 감악산, 우두산 등풍처럼 두르고 다. 이들 산지에 둘러싸인 산간분지가 중심부를 이루며, 분지 안에도 금귀산, 보해산 등 비교적 높은 산들이 있다. 동쪽은 합천군, 서쪽은 함양군, 남쪽은 산청군, 북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전라북도 무주군에 접한다.(한민족대백과, 두산백과 참고)


거창군의 서부에 위치한 북상면은 덕유산을 깃점으로 흥덕산, 못봉, 무룡산, 남덕유산 등 1200m급 이상의 고봉으로 둘려 쌓여 물 좋은 곡이 많고, 북상 13경을 따로 정할 정도로 가볼만한 곳과 문화재가 많다. ‘북상 13경’은 1998년 북상 번영회에서 면민들의 뜻을 모아 관내 곳곳에 위치명소들 가운데, 으뜸이 될 만한 곳을 선정한 것이다.(참고 1)


북상 13경 가운데 오늘 소개할 곳은 제 3경인 갈계숲이다. 갈계리(葛溪里)에 있는 마을숲으 왜가리 도래지로도 알려져 있다.


이 곳도 보물인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을 찾아가는 길에 지나치다가 들르게 된 곳으로 단풍이 들기 시작한 멋진 나무들 가득한 숲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북상면사무소와 북상초등학교 100m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갈계숲은 덕유산에서 발원한 물이 송계사계곡과 소정천을 이루며 흘러내리다가 갈계마을에 이르러 동서로 나뉘면서 자연섬을 형성며 만들어진 약 2만m²의 숲이다. 평균 수고 20여m, 수령 200~300년 된 멋드러진 소나무·물오리나무·느티나무·느릅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1982년 11월 23일 거창군 천연보호림 제2호로 지정되었다.


갈계숲의 본래 이름은 은사()의 정원을 이르는 ‘임정()’이며, 숲 안에 가선정(駕仙亭)이라는 정자가 있어 가선림이라고도 부른다. '치내마을'(갈계마을의 다른 이름. 치매마을이 아녀요~)의 숲이라 하여 치내숲이라고 한다. 또 소정천을 가로지르는 청학교가 놓인 뒤로는 청학숲이라고도 부른다.


숲을 들어서니 2014년부터 사업비 3천만 원을 들여 조성한 약 8만 본의 꽃무릇들이 피었다 진 흔적들이 남아있었는데, 9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는 꽃무릇이 만개했을 때는 정말 장관이었겠다 싶었다. 상초등학교 앞에서 따끈따끈 팥듬뿍 붕어빵과 어묵을 파시는 분께 여쭤보니 꽃무릇이 한창 피었을 때는 사람들이 관광버스까지 타고 와서 보는 꽃무릇 명소라고 한다. 꽃무릇을 못 본 건 아쉽지만 사람들 바글바글 몰릴 때를 피해서 다행이란 마음이 더 컸다. 꽃무릇은 전국적으로 명소가 많고, 올해는 남해 앵강다숲길에서 만난 꽃무릇이 인상적이었다.


꽃무릇은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어 꽃과 잎이 한번도 만나지 못한다 하여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지녔고, 같은 속성을 지닌 상사화(분홍색)와 많이들 헷갈려서 '붉은 상사화'라 불리기도 한다.


갈계숲은 조선 명종 때 6현신(六賢臣)의 한 사람인 임훈이 노닐던 숲으로, 갈계숲과 갈계리라는 명칭 모두 임훈의 호인 갈천(葛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숲에는 임훈과 그의 형제들 관련된 세 개의 정자가 있다.  정자들은 각각 다른 모양이어서 비교하며 즐기는 맛이 있다. 는 세 정자 중에서 가운데 있는 도계정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남편과 한참동안 머물러 있다 내려왔다.


청학교를 건너 제일 처음 나오는 가선정은 임훈의 덕망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934년 숲 속에 건립한 정자이다. 정면 2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누각이다.

그 다음 나오는 정자는 임훈의 첫째 아우인 도계 임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도계정(道溪亭)으로, 정면 3칸·측면 2칸의 누각 건물 가운데 칸에 방을 들이고 계자난간을 둘렀다. 로 이 방이 우리 부부의 살짝꿍 데이트 장소가 되어주었다. 동서남북 네 방향 모두에 문이 달려 있고, 한여름에는 문을 들어올려 시원하게 바람이 들게 해주는 구조인데 문을 닫으면 아무도 볼 수 없는 비밀의 공간이 된다. 이 방 안에 앉아서 갈계숲과 앞에 있는 가선정을 보는 맛도 일품이다. 도계정 바로 뒤에는 임영을 기리는 경모재가 있다.


담장 너머 숲의 제일 끝에는 정면 1칸·측면 1칸의 병암정(屛巖亭) 있다. 병암정은 예천에 있는 정자가 유명한데, 이름만 같고 풍취는 전혀 다르다. (조만간 예천 병암정에 관한 글 올릴게요~)


갈계숲을 끼고 있는 갈계마을에는 임훈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둘째아우 임운(林芸)과 함께 건립한 갈천서당, 임훈이 살던 집인 갈계리 임씨고가를 비롯해 1564년 임훈이 생전에 받은 효자정려, 사당 등의 유적이 즐비하다.


갈계숲은 거창군민들이 여름 휴가와 야유회를 위해 즐겨 찾는 곳으로, 체력단련기구와 벤치 등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가 간 날은 토요일 볕좋은 가을날이라 다들 추수하시느라 바쁘신지 들녘엔 분주한 일손을 놀리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으나, 숲은 한적했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나온 할머니 한 분과 나처럼 여행 온 가족 한 팀, 정자 답사를 오신 듯한 세 분 외엔 없었고 그나마 우리가 정자에 머문 동안에는 아무하고도 마주치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더욱 아름답게 색동옷을 입을 갈계숲, 거창을 지나치실 일이 있으시면 꼭 들러보시길!


참고1)


- 북상 13경
북상 초입 강정모리에 위치한 제1경 (용암정), 제2경(행기숲), 제3경(갈계숲), 제4경(강선대), 제5경(분설담), 제6경(장군바위), 제7경(월성숲), 제8경(내계폭포), 제9경(사선대), 제10경(빙기실계곡), 제11경(마학동계곡), 제12경(송계사 계곡), 제13경(수리덤)이 바로 북상 13경이다.


- 북상면 문화재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 1436호), 갈계리 3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7), 갈천서당(경남유형문화재 295), 거창 갈계리 임씨고가(居昌葛溪里林氏古家:경남민속자료 9), 용암정(龍巖亭:경남문화재자료 253), 병암정(屛岩亭), 가선정(駕仙亭), 도계정(道溪亭), 정한용 유적비(鄭韓庸遺蹟碑), 거창 농산리 사지(寺址), 월성의거 사적비(月星義擧史蹟碑), 모리재(某里齋) 가 있다.

도계정 누각 위의 방에 앉아서 본 가선정 풍경


북상초 앞 붕어빵집. 친절하시고 맛나다.

꽃무릇 피었을 때의 갈계숲. 네이버 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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