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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Oct 21. 2021

북극성처럼 빛나는

가족에 대해

이슬아 작가의 세바시 강연 중에 소개한 김서현 학생의 글이다. 자기 남동생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걸 보고, 남동생이 있는 애들은 다 저럴까? 우리집 딸은 어떨까? 싶어서 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딸아, 너에게 남동생은 어떤 의미니?"

"으음... 글쎄요~ 세상에서 가장 싫은 사람 5위쯤?"

"왜 하필 5위야?"

"아주아주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라서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그 정도일 것 같아요."

생각같아선 그럼 싫은 사람 5위에 둘 게 아니라 좋은 사람 5위쯤으로 서열을 정해도 돼지 않겠냐고 반문하고 싶었으나, 딸이 저리 말하는 거 보면 동생이 싫긴 싫은가보다~ 싶었다.

둘만의 비밀도 있고, 동생이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선뜻 만들어주기도 하고, 동생에게 그림공부를 시켜주기도 하는 딸이기에 제법 좋게 여기는 줄 알았는데... 그건 겉보기등급이었나 보다.

나는 딸에게 나의 형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각각 두 살 터울인 사남매 사이에서 장녀로 자랐다. 어릴 때 동생들은 나를 무서워했다. 내가 유명짜한 군기반장이었기 때문이다. 크게 다투거나 싸운 기억도 없다. 동생들은 내 앞에서 늘 바짝 긴장했고, 때론 부모님보다 더 어려운 존재였다.(고 한다, 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다들 40대가 된 지금도 동생들은 나를 여전히 어려워한다. 내가 30여년 전에 고등학교를 큰 도시로 유학오면서 쭉 떨어져 지냈기에 청소년기에 한지붕아래 살면서 지지고 볶고 할 틈이 없기도 했고, 어릴 때 나에게 너무도 잘 조련(?)된 탓일 게다.

바로 아래 남동생은 나와 중고등 시기, 사회인 시기 몇 년을 친척집과 자취방에서 심지어 나의 신혼집에서도 함께 살아서 가장 친한 편이다. 보통은 같은 성을 지닌 형제나 남매끼리 더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우리는 같이 지낸 시간이 긴 남매들끼리 좀더 친하다. 딸 아들 딸 아들, 이런 식이라 위로 둘 아래로 둘이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그래도 결정적인 때는 자매끼리 형제끼리 뭉치게 됨을 보게 된다. 이래서 동성인 형제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가끔 타고난 성이 다른 남매보다는 성이 같은 형제거나 자매였음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서로 공유할 게 많아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선 딸도 키워보고 아들도 키워보며 '남자사람 여자사람'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알아가는 배움이 있음에 감사하는 때가 많다.

가족간의 애증은 비단 형제나 자매, 남매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의 이름으로 맺어진 모든 관계는 나희덕의 시에서처럼 가까이 가보면 똥밭이지만, 그럼에도 결국 돌아가게 만드는, 서로 부대끼고 견디며 살아야 할 외딴 섬인지 모른다. 허나 그곳에서 살을 비비며 체온을 나누면서 함께 지낼 수 있음을 고마워하는 존재들. 그래서 뒤돌아 보면 북극성처럼 빛나는 그런 것이 가족이 아닌가 생각한다.

< 북극성처럼 빛나는 / 나희덕 >

멀리 보이는 흰 바위섬,

가마우지떼가 겨울을 나는 섬이라 한다 

가까이 가보니 새들의 분뇨로 뒤덮여 있다

수많은 바위섬을 두고

그 바위에만 날아와 앉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마우지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 사는 것은

서로 사랑해서가 아니다

포식자의 눈과 발톱을 피하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떼를 지어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이 바위를 희게 만들었다

절벽 위에서 서로를 견디며

분뇨 위에서 뒹굴고 싸우고 구애하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지상의 집들 또한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지 않은가

가파른 절벽 위에 뒤엉킨 채 

말라붙은 기억, 화석처럼 찍힌 발톱자국, 

일렁이는 파도에도 씻기지 않는

그 상처를 덮으러 다시 돌아올 가마우지떼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힘은 

파도 위의 북극성처럼 빛나는 저 분뇨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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