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Oct 25. 2021

금목서향에 취해~

가을의 미동산수목원

일요일 오후 늦게 잠시 다녀올 곳을 고르다가

초여름에 찾아가서 반했던 청주 미동산수목원으로 향했다.

버찌가 바닥에 까맣게 떨어지던 유월에도 아름다웠는데, 초록이 노랑 빨강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은 또 어떨까? 궁금함과 기대감으로 오후 4시 반쯤 도착한 미동산수목원은 늦은 오후인데도 주차장이 북적일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이들이 일요일 낮을 수목원에서 즐기고 내려와 집으로 돌아갈 차비들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처럼 늦게 들어가는 이들도 꾸준히 이어졌다.


입구에서 방문체크콜을 하고 체온을 잰 뒤 줄 서서 입장하는데, 코로나 2차 백신을 맞은 남편은

체온이 31.5도. 으잉, 저체온?

그럼에도 체온계는 당당하게

"정상체온입니다!"를 외쳤다.

헐~ 믿을 수가 없으.


수목원 안내센터를 나서니

2022년 1월부터는 수목원 이용료를 부과한다는 현수막이 눈에 띄게 서있었다. 입장료를 내고도 들어갈 만큼 잘 정비된 곳이고,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가 풍부한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공짜일 때 한 번이라도 더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엔 꼼꼼히 둘러보지 못했던 중앙광장과 공사 중이라 막혀있었던 산속 오솔길을 거쳐 수국담채원, 난대식물원, 목공예체험관, 분수연못까지 돌고 산에 난 열린마음 나눔길을 따라 슬슬 내려오는 짤막한 코스로 돌았다.


이번 수목원 나들이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난대식물원에서 오랫동안 소원했던 금목서향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온실로 꾸며진 난대식물원 입구에 들어서니 은목서향이랑 비슷한 좋은 향이 나서 코를 킁킁거리며 온실 주변을 둘러봤는데 처음엔 잘 보이지 않았다. 관람코스대로 입구에서 시계방향으로 돌며 구경하다가 동선을 따라 입구로 가니, 입구 들어오는 방향에서 오른쪽에 바로 금목서 나무가 있었다.

올봄 양산 통도사에서 금목서 나무를 보긴 했지만, 꽃이 안 핀 나무로만 봤기에 꽃향기를 맡을 수 없었는데 가을이 되니 주황빛으로 자잘하게 피어난 꽃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금목서향을 드디어 맡을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은목서향보다 조금 더 강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지만 천연의 고급향수목인 금목서향은 맡아도 맡아도 질리지가 않았다. 한참 그 밑에서 향을 맡으며 사진을 찍었음에도 수목원을 돌아본 뒤 나오는 길에 한 번 더 들어가서 금목서향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금목서 나무 아래쪽엔 구골나무라는 나무에 하얗고 자잘한 꽃들이 피었는데 은목서꽃과 비슷한 구골꽃에서도 은목서향과 비슷한 향이 났다. 내년 가을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미동산수목원에 가서 금목서향과 구골꽃향을 맡아봐야지.


짧은 해가 서서히 져가며 붉게 물들어가는 수목원에서 금목서향에 취해 일요일 오후 짧은 나들이를 즐기고 돌아왔다. 차로 1시간 안 되는 거리에 이렇게 향기롭고 아름다운 숲이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당실 병풍바위 위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