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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Dec 11. 2021

보령해저터널 건너 추억을 돌아보다

"그랑께 고것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해저터널이라고 하던디 맞냐?"


12월 1일에 개통한 보령해저터널 뉴스를 들으신 어머님께서 그날 저녁 드시며 꺼내신 말씀이다.


"어머 오늘 개통했대요?"


안면도에서 원산도를 잇는 원산안면대교는 2년 전 개통해서 몇 번 가봤지만, 원산도에서 바로 바다 건너 맞은편에 있는 보령 대천항은 지척에 있어도 차로 1시간 반을 돌아가야 해서 원산안면대교 갈 때마다 아쉽던 참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11년만에 해저터널공사가 다 끝나서 개통을 했다니 어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오늘 뉴스에서 다 그 얘기만 하더라. 개통식에 국무총리도 오고 충남도지사도 나오고 함서, 얼마나 뻑쩍지근하게 떠들어대든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겄든만."


"뉴스 안 봐서 몰랐네요. 한 번 가봐야겠어요. 어머님도 같이 가실래요?"


"그라까? 언제 갈래?"


"이번 토요일엔 아범이 밤샘야근을 해야해서 이번 주말엔 힘들 것 같고, 빠르면 다음 주쯤 될 것 같은데요. 그때 같이 가셔서 구경해요~"


"그라자 그람. 아범 시간에 맞춰야재."   

 

그렇게 다음 주에 갈 계획을 세웠는데

남편이 토요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더니만 보령해저터널 다녀오자고 그런다. 일찌감치 다녀와서 오후에 쉬었다가 출근하면 될 것 같다고. 그래서 아침을 평소보다 빠른 7시 전에 먹고 어머님 모시고 다녀오게 되었다.


집에서 보령해저터널까지는 무료도로로 두 시간.

보령해저터널은 국내 최장 해저터널인데도 은혜롭게 따로 입장료를 받지 않아 중간에 매표소나 안내소 같은 게 없다. 보령 대천항 쪽에서 연결된 도로로 멈춤 없이 쓰윽 터널입구로 들어가다 보니 아주 평범해서 해저터널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총 연장 6.9km 시속 70km의 속도로 거침없이 달리니, 7분만에 터널을 빠져나왔다. 해저터널이라 중간에 유리로 된 천정벽을 통해 바다를 볼 수 있으려나~ 하고 기대했건만 모든 구간이 다 튼튼한 시멘트와 타일로 마감을 해놓아서 바닷속 구경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빙 돌아 90분 걸리던 거리를 10분만에 갈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었다.


원산도쪽 터널 출구로 나와서 최종목적지를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으로 해서 갔다. 이 해저터널이 없었다면 안면도 남쪽 끝에 있는 꽃지해수욕장까지 가려면 4시간 안팎이 걸리는 거리인데 2시간 반만에 도착했다.


집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하늘이 맑아서 오늘 여행 끝내주겠구나 했건만 보령에 다가갈수록 하늘이 흐려지더니, 안면도 꽃지에 도착했을 때는 온통 하늘이 잿빛구름 투성이였다.

어머님께서는 안면도에 몇 번 오시긴 했지만 그때마다 밀물 때라 바다 건너 할매섬 할배섬을 직접 가보시진 못했다고 하셨다.


"한 번은 관광버스 안에서 창문으로 쳐다만 보고, 한 번은 이 근처에 사람들이랑 1박 2일로 놀러왔을 땐디 물이 차있길래 물이 안 들치는 곳에다 솥단지 걸어놓고 해물탕 끓여먹고 조개 삶아먹고 그랬지야~"


할매섬 할배섬이 보이는 곳은 최근 새롭게 분수도 만들고, 작은 연못 비슷한 것도 조성을 해서 입구가 많이 바뀌었는데, 섬 들어가는 길목에 줄지어선 노점상들을 단속하느라 꽤 어수선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해오신 분들은 단속나온 공무원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소리를 높이면서도 철거를 강행하는 공무원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장사를 접으셔야 했다. 주인을 따라나와 오토바이를 지키던 반려견 한 마리가 이 모습을 내내 지켜보다 짐정리해서 떠나는 주인 뒤를 따라가는 모습이 짠했다.

보기엔 다소 안 좋을지 몰라도 이분들에겐 여기가 수십 년간 생계를 이어온 삶터인데, 관광객들 보기 좋으라고 강제철거시키는 건 아니다 싶고, 꽃지에 오면 만나게 되는 나름 정겨운 풍경이었는데 그 분들 떠나고 삭막한 구조물들만 남아있는 모습도 보기에 썩 좋지 않았다.  


바닷가이고, 하늘에 구름도 많아서 바람이 쌩쌩 제법 불어 날씨가 꽤 추웠다. 늘 입던 점퍼를 입지 않고 다른 점퍼로 바꿔입고 오다보니 모자가 달리지 않아 귀가 시려웠다. 어머님께서 나를 보시더니,


"이런 데는 모자 달린 옷을 입고 와야 하는디, 너 춥겄다. 내 모자라도 쓸라냐?"


"아이~ 괜찮아요. 장갑낀 손으로 이렇게 귀 막고 있음 돼요~ 아범 곁에 꼭 붙어서 감시롱~^^"



남편을 바람막이삼아 두 손은 귀를 막고 그렇게 할매섬 할배섬을 다니며 구경하고 어머님이랑 사진 찍고는 차로 돌아왔다. 날도 춥고 아침을 일찍 먹은지라 이제 11시였지만 점심을 먹으러 가야 했다. 안면도 오면서 맛집 검색을 해보니, 서해안 별미인 게국지를 잘 한다는 원조게국지집이 근처에 있다고 떠서 이번엔 어머님도 모시고 가니 게국지를 먹어볼까 했는데, 이가 안 좋으신 어머님은 그닥 땡기시지 않아 하셨다. 그래서 그 집에서 바지락칼국수도 하니 꽃지에선 칼국수 먹고, 요즘 방어철이니 집근처 회 잘하는 곳에서 대방어회를 사다 먹기로 했다.


꽃지에서 차로 1분 거리에 있는 원조게국지집은 네이버예약을 하고 가면 음료서비스를 주셔서 예약을 한 뒤 도착했다. 칼국수만 먹기엔 그래도 아쉬워서 왕새우튀김 한 접시를 더 시켜서 먹었는데 모두 맛이 괜찮았다. 바닷바람에 잔뜩 쫄았던 몸과 마음이 따스한 칼국수 국물과 바삭한 새우튀김에 보들보들 풀어졌다.

밥이 맛있는 집은 대체로 커피도 맛있다.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들고 차로 돌아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다시 보령해저터널.


가는 길에 건너는 원산안면대교를, 날이 좋으면 직접 걸어보련만 비도 내리고 워낙 바람이 차서 영목항으로 내려가 다리구경하고 인증샷 찍는 것으로 대신했다.

어머님께서 원산도해수욕장에서도 2박 3일 친구분들과 놀다 오신 적이 있다고 하셔서 그 추억을 되살리고자 원산도해수욕장에도 들러서 어머님 추억의 현장들을 살짝 둘러봤다. 역시 비가 뜨문뜨문 내려서 오래 있지는 못했다.


"쩌그 산모퉁이 있는 데 고 앞에서 친구들이랑 조개도 잡고, 물놀이도 하고 그랬는갑다. 저 산 보니까 알겄다."



처음 원산도해수욕장 모래사장에 들어서서 바다를 보실 땐 어디가 어딘가 싶으시다가,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이 익숙해서 천천히 살피다보니 예전 기억이 떠오르셨다고 한다.


그렇게 어머님의 추억을 짚어본 뒤 보령해저터널로 발길을 재촉했다. 벌써 오후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원산도해수욕장을 나와 보령해저터널로 가는 길에는 해저터널을 빠져나온 차들이 안면도를 향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행선은 2차로라 정체없이 달리지만 상행선은 1차로라 길이 막혀서 차랑정체가 있었다. 안 막히는 하행선을 달려서 다행이다 여기며 해저터널에 가까워질수록 빗방울이 거세어지더니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똑같은 방식으로 해저터널 입구 지나 해저시작, 해저 80m 지점, 해저종점을 거쳐 출구로 빠져나가니 비는 거의 안 내리는데, 맞은편에 해저터널 들어오겠다고 나래비 선 차들이 1km도 넘게 줄을 잇고 있었다. 일찍 왔기 망정이지 늦게 왔음 우리도 저렇게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겠구나~ 싶었다.

집까지는 내가 운전하고 남편은 조수석에서 잠이 들었다. 아직 다 낫지 않으신 어머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길이라 내려올 때도 그랬지만 중간중간 어머님 괜찮으신지 상태를 체크하며 다녔다. 평소에도 멀미가 있으셔서 오래 차를 못 타시는데 이번엔 다행히 멀미하지 않으시고 집까지 무탈하게 돌아오셨다. 그만큼 체력이 회복되신 것 같아 저으기 안심이 됐다.


밤샘야근이 잡혀있음에도 서둘러준 남편덕분에 어머님까지 모시고 보령해저터널 건너 옛 추억을 되새기며 즐거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우리가 어디 여행 갈 때마다 어머님께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 같이 가시자고 하면, 안 간다고 도리질을 치시는 게 대부분인데 이번 여행은 어머님께서 먼저 말을 꺼내셨고, 가자고 말씀드리니 바로 오케이해주셔서 참 기뻤다.


게국지는 못 먹었지만 맛있는 바지락칼국수와 새우튀김을 먹었고, 오늘은 드디어 대방어회를 떠다가 먹을 계획이다. 방어회를 먹으며 우리는 또다시 보령해저터널과 꽃지해수욕장 할매섬 할배섬, 원산도해수욕장을 도마에 올리고 수다를 떨리라. 이렇게 차곡차곡 어머님과 여행의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어 행복하다.

보령해저터널
영목항에서 바라본 원산안면대교
전망대 공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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