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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an 28. 2022

하나의 불빛과 호랑이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은 산기슭의 작은 마을에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초롱이나 양초를 팔았습니다.

어느날 밤 한 소몰이꾼이 우리 집에서 초롱과 양초를 샀습니다


"아가, 미안한데 양초에 불 붙여주지 않으련?"

소몰이꾼이 내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성냥을 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성냥개비의 끄트머리를 잡고 성냥을 그었습니다. 그러자 성냥개비 머리에서 파란 불꽃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그 불을 양초에 옮겨 붙여주었습니다.


"아이고 고맙구나."

그리 말한 소몰이꾼은 불 켠 초롱을 소 옆구리에 걸고 떠났습니다. 나는 혼자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붙여준 불은 어디까지 갈까?

저 소몰이꾼은 산 너머에 사는 사람이니까 저 불도 산을 넘어갈 거야. 소몰이꾼은 산을 넘다 다른 마을로 가는 또 다른 여행자와 만날지도 몰라. 그럼 그 여행자는


"죄송한데, 그 불 좀 빌려주실 수 없을까요?"

라며 소몰이꾼의 불을 자기 초롱에 옮겨 붙일 거야. 그리고 밤새 산길을 걸어가겠지?


길을 가다 보면 여행자는 북하고 징을 든 사람들을 만날지도 몰라. 그 사람들은


"우리 마을의 애 하나가 여우한테 홀렸는지 마을로 돌아오질 않아요. 그래 가지고 우리가 찾으러 나선 겁니다. 미안하지만 초롱에 붙일 불 좀 빌려주시구려."


그러면서 여행자에게서 불을 얻어 자신들의 초롱에 불을 붙이겠지. 기다란 초롱이나 둥그런 초봉에 불을 붙이겠지. 그리고 그 사람들은 북을 치고 장을 울리면서 산과 계곡을 찾아 돌겠지.


나는 지금도 그때 내가 소몰이꾼에게 붙여주었던 불이 계속해서 옮겨져 어딘가에 켜져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니이미 난키치 / 하나의 불빛

(좋은생각 2021.12. 이달의 단편)


이 글이 실린 쪽의 아래엔

다음의 명문이 소개되어 있다.


사소한 일이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볼 때 나는 사소한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 브루스 바튼

좋은생각 편집자와 달리,

난  이 글을 읽고 어머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호랑이가 아기 물어간 이야기.

어머님 어릴 적 살던 강진의 한 산골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네 아낙이 아기를 품에 안고 자고 있었는데 어슬렁어슬렁 먹이를 찾아 마을까지 내려온 호랑이가 아낙의 품에서 아기만 쏘옥 빼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 아기가 없어진 사실을 안 엄마가 혼비백산해서 동네사람들과 아기를 찾아나섰는데, 밤새도록 횃불을 들고 아기를 찾아 헤매다

마을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드디어 찾았는데...


호랑이가 아기를 물고 이리저리 치대면서 먹어치운 흔적만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옷은 갈기갈기 찢어진 채...


'하나의 불빛'에 나온 북하고 징을 든 사람들이 마을의 애 하나가 여우한테 홀렸는지 마을로 돌아오질 않아 찾아나선 것처럼 강진 월출산 아래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횃불을 밝히고 징을 두드리며 호랑이한테 물려간 아이를 찾아나섰으리라. 여우한테 홀린 아이는 찾았을지 모르지만, 그 아이는 끝내 뼈조각 하나도 찾지 못하고 어지러히 널린 옷가지만 수습해서 가져올 수 있었으리라.


몇 시간 전까지 내 품에서 고이 자던 아기가 그렇게 갈기갈기 찢어진 옷만 남긴 채 돌아왔을 때 그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열 셋을 낳아, 그 가운데 넷을 어릴 때 잃은 우리 할머니는 아기를 묻은 돌무덤이 집근처 나무 아래 있었는데 해지고 저녁 어스름이 깔릴 때면 아기혼불이 나무 주위를 맴돌며 엄마~ 엄마 ~ 하고 부르다가 꺄르륵 웃어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고 하셨다.


호랑이에게 물려갔던 아이는

어느 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을까...

엄마~ 하고 부르지도 못한

그 가엾은 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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