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로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도로가 예뻐서 출사족들이 자주 찾는 우리나라 3대 재가 있으니,
단양 보발재, 함양 지안재(오도재), 보은 말티재이다.
(아래는 모두 펌사진)
보발재
지안재
말티재
세 곳 가운데 보은 말티재가 가장 가까워서 자주 찾는다. 여행기를 보니, 내가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건 작년 2월부터였다. 남편은 그 전부터 자주 말티재를 찾곤 했는데, 2019년부터 전망대를 새로 짓고 있어서 2020년 2월에 개장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와 함께 갔더랬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로 477 에 위치한 말티재 전망대는 높이 20m이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말티고개는 숲과 도로가 어우러진 풍광이 멋지다. 말티재는 자전거, 바이크 동호인들 사이에서 12굽이 와인딩 코스로 유명한 곳으로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세조가 속리산 행차 때 앏은 돌을 깔아 길을 냈다고 전해진다. 2020년 2월엔 전망대는 완공했으나 코로나때문인지 문을 열지 않아서 올라가보지 못했더랬다. 그래서 새로 생긴 꼬부랑길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 뒤로도 말티재 전망대 오르려고 몇 번을 갔으나 그때마다 문이 잠겨 헛탕을 치다가 드디어 202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당당하게 올라갔다.
문제는 그날이 너무 바람이 세고 추운 날이어서 기온계는 영하 9도였으나 실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쯤 되었다는 것.
전망대에 올라가서 사진 찍으려고 주머니에서 손을 꺼낸 순간 바로 동상 걸릴 것처럼 손이 찌릿하면서 아렸다. 요 몇 년 간 이렇게 추운 날이 또 있었나 싶게 추운 날이었다.
그래도 왔으니 인증샷을 찍어야지!
전망대 3층 끝에 서쪽으로 돌출된 데크까지 나가서 사진 찍고 후다닥 내려왔다. 크리스마스에 토요일이라 말티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날이 추워서 전망대 꼭대기엔 사람이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와도 우리처럼 사진만 찍고 내려가느라 머무는 시간이 짧았다.
몇 번을 헛걸음하다 드디어 올라가게 됐는데 날이 너무 추워서 여유롭게 머물며 풍경을 즐기지 못해 아쉬웠다. 날 풀려서 좀 따스해지면 조만간 또 찾아가야겠다.
오늘 한 해 마지막 날이라 해넘이 보러 서쪽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가실 텐데 말티재 전망대도 해넘이 보기 좋은 곳으로 추천!
말티재 해넘이 펌사진
말티재만 다녀오긴 아쉬워서 근처에 있는 속리산 법주사 앞의 정이품송도 보러 갔다. 오래 전 서쪽 가지가 눈더미에 꺾인 뒤로 점점 풍채가 줄어드는 듯한 정이품송이 추위 속에서도 꿋꿋하게 서서 우리를 맞이했다. 표지판의 사진처럼 온전한 가지가 양쪽으로 쭉 뻗고 있었다면 훨씬 더 멋진 모습이었을 텐데...
도로정비를 끝낸 삼가저수지를 한 바퀴 빙 돌며 호수 위에 뜬 쨍한 겨울 해를 일별하고 새로 생긴 주차장에 잠시 차를 대고 주변을 살폈다. 여긴 풍경이 참 좋은데 찾는 이가 거의 없어서 언제 와도 한적해서 좋다.
마지막으로 서원리 정이품송 부인소나무를 둘러보았다. 법주사 앞의 정이품송이 점점 쭈그러드는 것에 비해 서원리 소나무는 더더욱 풍채가 좋아지고 있다. 한겨울인데도 초록잎들이 무성한 소나무 모습이 보기 좋았다.
* 이 정부인소나무에 대한 설명과 말티재의 자세한 이야기는 작년에 썼던아래글로 대신한다.
정이품송의 외줄기로 곧게 자란 모습이 남성적이라면, 서원리 소나무는 우산모양으로 퍼진 모습이 치마폭 같아서 여성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정이품송과는 부부사이라 하여 정부인소나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전국 산야에 자라는 늘푸른 침엽수이다. 암수동주라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피어나므로 은행나무처럼 암나무 수나무의 구별이 따로 없음에도 정이품송과 서원리소나무는 7km 떨어져있어 거리가 가깝고, 수형이 비교가 되서 이렇게 부부사이가 된 것이다.
나무의 높이는 15.2m 가슴높이 줄기 둘레가 각 3.04m와 3.76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가 24.9m, 남북이 23.9m이다. 줄기가 아래에서 70cm 높이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며 가지가 서로 얽히면서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오랜 고목들 대부분이 치료를 위해 여기저기 땜질되어있거나 큰 가지가 부러진 경우가 많은데(정이품송도 한쪽 가지가 눈의 무게를 못이겨 부러짐), 서원리소나무는 전체적으로 병들거나 부러진 곳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서 보기에 좋았다. 이곳 마을사람들은 매년 정월 초이튿날 이 서낭나무 아래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있다.
서원리소나무를 지나 맑은 햇살이 내리비치는 비룡(삼가)저수지, 충북알프스자연휴양림을 지나 허위허위 오르막길을 오르면 드디어 말티재에 도착한다.
말티재는 속리산 길목 해발 430m에 위치한 열두 굽이 재로 보은읍 장재리와 속리산면 갈목리를연결하는 고개이다. 백두대간 속리산의 관문이라고도 하며 , 지명은 한자로 '마현(馬峴)' 또는 '마치(馬峙)'로 기록되어있다.
말티재는 서기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조사가 인도를 다녀오는 길에 법주사를 창건하기 위해 흰나귀 위에 불경을 싣고 넘어간 이래 1467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자비를 깨치기 위해 이 고개를 넘어 법주사로 갔다. 고개 위에 얇은 돌이 3~4리 정도 깔려 있는데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 거동했을 적에 닦은 어로(御路)'라고 한다. 그뿐이랴?
조선 태조 이성계는 왕이 되기 전 법주사에 100일 기도를 하러가며 이 고개를 넘었고, 태종은 심신을 다스리기 위해, 세종은 훈민정음의 주역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해, 임진왜란 때는 법주사에 승병들이 모이기 위해 다녔던 길이 바로 말티재다.
원래는 한두 사람이 겨우 다니던 오솔길이었으나 법주사가 세워진 뒤로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자연스레 길이 넓어졌다. 1924년 신작로를 내었고, 현재와 같은 상하행 각각 1차선 도로는 1966년 확, 포장되었다고 한다.
말티재 정상은 한남금북정맥으로 고갯마루 동쪽은 남한강, 서쪽은 금강 수계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속리산 둘레길 가운데 보은길2가 말티재 정상을 넘는 길이며, 순환구간인 꼬부랑길과의 만남은 말티재 정상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구간이다. 난 정상까지 올라갈 엄두는 내지 못하고, 말티재 위에 새로 생긴 '꼬부랑길 카페'에서 카푸치노와 캬라멜마끼아또를 마시며 주변 경치를 구경하다 내려왔다.
최근 말티재 아래 속리산 숲체험휴양마을이 조성되어서 한옥마을, 통나무마을, 황토초가와 황토너와집을 둘러보았다. 근처에는 물놀이장과 3월 개장예정인 중부권 최대 짚라인, 2021년 3월 개장예정인 하늘열차(모노레일), 지금 개장중인 솔향공원이 있다. 공원 안에는 소나무홍보전시관(사료관), 소나무 체험및 영상관, 하늘자전거(스카이바이크), 자생식물원, 연꽃단지가 있어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지금은 겨울 끝자락이라 날이 추운데다 갑자기 늘어난 코로나환자들로 인해 꼬부랑길카페 외의 곳에선 사람을 마주치지 못했지만, 날이 따스해지고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면 천혜의 자연경관과 맑은 공기, 안락한 휴양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복작복작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