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심어서 올해로 36년이 된 고목에서 피어나는 탓이기도 하다.(2015년 법보신문에 소개된 바로는 35년 전 어느날 영신각 뒤 암벽에 피어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고 하니 이에 따르면 41년이 됐고, 내가 처음 이 탑사 능소화를 알게 된 작년엔 45년 된 나무로 소개되었더랬다. 무엇이 맞는 것일까?)
작년부터 직접 보기를
벼르고 벼르던 탑사 능소화를
7월 11일 초복날 새벽에 드디어 보았다!
초복이라 어머님 몸보신용으로 전복삼계탕 만들 준비를 마친 뒤 새벽 4시에 부리나케 진안을 향해 길을 나섰다. 진안은 보통 용담호를 끼고 드라이브하는 맛이 있어 국도를 달리는 편이지만, 빨리 다녀와야 해서 한 시간 이상 단축되는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무료도로는 2시간 반, 고속도로로 가면 1시간 10분 가량 걸린다.
가다가 배에서 신호가 오는 바람에 마이산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는데, 덕분에 휴게소 뒤편 동산에 마련된 마이정에서 구름에 싸인 마이산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마이산 풍경에 취해있다가, 아차차! 얼른 다녀와야지~ 하구선 다시 출발. 마이산 나들목으로 나와서 마이산 입구로 가는데 밤새 내린 비로 세상 말끔하다. 어제 진안은 비가 많이 왔다고 한다. 부지런히 서두른 덕분에 탑사 앞 호수 '탑영제'에 해가 뜨는 장면을 포착했다.
"어서 가야지~"
재촉하는 남편을 따라 차 타고 탑사까지 올라가며 보니(일반적으론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올라가야 하지만, 8시 매표하기 전 이른 시간엔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여기저기 비가 많이 내린 흔적들이 보인다. 계곡물길을 따라 데크를 만드느라 공사중인 모습도 보이고.
드디어 탑사 도착!
우리보다 먼저 탑사에 오신 분들이 절마당 이곳저곳에 드문드문 서서 영신각 뒤의 암벽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를 구경하고 있었다.
비가 많이 내려 능소화가 많이 떨어졌다니 만개한 풍경을 못 봐 좀 아쉽긴 했으나 그래도 활짝 핀 주홍빛 능소화를 실컷 볼 수 있었다. 벼랑에선 여전히 비가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데, 숲사이로 해가 비치면서 파란 하늘이 드러나는 모습도 가히 장관이었다.
아름다우면서도 독을 지니고 있어 눈을 멀게 하여 문학작품에서 아픈 사랑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능소화를 소재로 한 소설도 있고, 시는 참 많다.)
금등화(金藤花), 어사화라고도 불리는 능소화는 옛날 장원급제를 하면 금의환향할 때 머리 위 관모에 크게 장식했다. 그만큼 선비들에게 인기가 많은 능소화는 반가의 꽃이라 해서, 양반들만이 이 꽃을 집에 기를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잣집 담장 위에서만 피었다는 능소화.
달성 남평 문씨 본리 세거 지 담장에 핀 능소화
오늘은 시 한 편을 탑사 능소화 사진과 함께 올려본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의 시.
< 능소화 >
- 정호승
동백도 아니면서
너는 꼭 내가 헤어질때만
피어나 동백처럼 툭 떨어지더라
너는 꼭 내가 배고플때만
피어나 붉은 모가지만 잘린채
땅에 툭툭 떨어져 흐느끼더라
낮이 밤이 되기를 싫어하고
밤이 아침이 되기를 싫어하는
모든 인생은 점점 짧아지는데
너는 내가 꼭 넘어질때만 떨어져
발아래 자꾸 밝히더라
내가 꼭 죽고나면
다시 피어나
나를 사랑하더라
by 초이글씨 초이쌤
* 마이산 탑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바로 올립니다. 함초롬하게 빗물에 젖은 탑사 능소화 구경하세요~^^ (표지사진은 늘해랑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