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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Feb 05. 2022

갑곶돈대와 강화전쟁박물관 그리고 갑곶순교성지

강화도 한 바퀴 5

강화나들길 제 2코스 호국돈대길의 처음 출발지인 갑곶돈대에 드디어 도착했다. 초지진에서부터 거꾸로 오다보니 마지막으로 발자국을 찍었다.

갑곶돈(甲串墩)은 사적 제306호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 1366번길 18(갑곳리 1040)에 있다. 조선 시대 강화도에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5개의 진과 7개의 보, 53개의 돈대가 섬 전체를 에워싼 모양으로 설치되었다. 갑곶돈대는 숙종 5년(1679) 5월에 완성된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망해돈대, 제승돈대, 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의 관할하에 있었다.


이곳은 예로부터 외부에서 강화도로 들어 오는 길목이어서 고종 3년(1866) 9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함대가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기도 했다. 그때 허물어진 갑곶돈대를 1977년 옛터에 옛 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하였다.  


갑곶돈대 내엔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역사의 고비 때마다 국방상 요충지 역할을 수행하며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강화의 호국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강화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주제로 각종 유물을 전시, 연구, 보존, 수집하기 위해 설립된 '강화전쟁박물관'이 함께 있다. (2015년 4월 17일 개관하였으며 기존의 '강화역사관'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함)

휴관일도 따로 없이 연중무휴로 운영된다는데, 우리가 간 날은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해 문이 닫혀있어 건물 외관과 주변만 볼 수 있었다. 만약 문을 열었다면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라고 한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 건축 총면적 993㎡, 부지면적 3,475㎡의 규모로, 300점 이상의 전쟁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1층에는 제1~2전시실, 2층에는 제3~4전시실이 있으며,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강화의 전쟁사 관련 유물을 시대순으로 볼 수 있도록 전시하였다. 또한 로비를 활용하여 강화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 및 사진을 다루는 기획 전시를 진행하기도 한다.


주요 소장품으로는 1871년 신미양요 때 강화도 수비대장이었던 순무중군(巡撫中軍) 어재연이 사용했던 군기(軍旗)인 수자기(帥字旗)가 있다. 당시 미군이 노획하여 미국 해군사관학교박물관에 보관하던 것을 2007년 장기대여 형식으로 반환하여 보관 중이다. 사실 이 수자기를 직접 보고 싶어서 강화전쟁박물관을 찾은 것인데 문이 닫혔으니 아쉬움이 컸다.

강화 갑곶돈에는 박물관 외에도 각종 비석군과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 이섭정, 천연기념물 제78호인 탱자나무가 있다.


비석군은 조선시대 선정을 베푼유수·관·경력·군수의 영세불망비 및 선정비와 자연보호의 일환으로 세운 금표(禁標), 삼충신(三忠臣)을 기리는 삼충사적비 등 총67기 비석이 모여 있다. 조상들의 자연보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표석인 금표는 1733년(영조 9) 강화유수부(고려궁지) 앞 등지에 세웠던 것으로 “가축을 놓아 기르는 자는 곤장 100대, 재나 쓰레기를 버리는 자는 곤장 80대를 친다" 라는 경고문이 적혀있다.

갑곶돈대 입구에 세워진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한 고려인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좀 뜬금없다 싶은데 강화도가 13세기 금속활자 인쇄술을 중흥 발전시킨 고장이라는 자긍심이 묻어나는 기념비라고 보여진다.


이섭정(利涉亭)은 1398년(태조 7) 강화부사 이성(李晟)이 세웠으나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가 1976년 강화 국방유적 복원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갑곶돈대 안에 팔각의 2층 정자를 세워 이섭정이라 현판을 걸었다.

이섭정 아래로 내려가면 바다 위로 삐죽 튀어나온 돈대 안에 두 개의 포대가 전시되어 있고, 그곳에서 강화대교가 왼쪽으로 보인다.

이섭정 위로 조금 올라가면 하나의 대포가 전시된 전각이 있다. 이 전각에 따로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진품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라고 한다.

강화전쟁박물관과 이섭정 사이에 갑곶리 탱자나무가 있다. 강화에 탱자나무를 심게 된 이유는 성벽 밑에 심어 철조망과 같은 역할을 하여 외적의 접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듯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심은 국토방위의 유물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한계 선인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 78로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현재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되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 4m, 지상부의 줄기둘레 1m이다.

40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탱자나무도 좋았지만, 탱자나무 앞에 넓게 펼쳐진 정원에서 살금살금 뛰어노는 토깽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그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과 토끼를 따라다니며 오종종  걷는 꼬마를 보는 즐거움도 컸다.

토끼 찾아 보세요^^

그리고 강화전쟁박물관 뒤에는 갑곶순교성지가 있는 성당도 있으니, 성지순례에 관심 있으신 분은 뒤쪽의 도로로 가셔서 성지를 돌아보셔도 좋겠다.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삼아 1871년 군함을 앞세우고 강화도 해역을 침범한 신미양요가 일어난 후 대원군은 더욱 심하게 천주교를 박해하였다. 미국 군함이 물러간 후 고종은 철저하게 천주교인을 잡아 처벌하라는 교서를 내리게 되는데 이때 미국 함대에 왕래했던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 등이 제일 먼저 잡혀 갑곶진두(갑곶나루터)에서 목이 잘려 효수되었다. 천주교 인천교구는 문헌상에 나와 있던 갑곶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그 터를 매입한 후 2000년에 순교성지로 조성하였고, 갑곶순교성지는 순교자묘역과 박순집의 묘, 성당, 야외제대, 십자가의 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강화도 한 바퀴 4

https://brunch.co.kr/@malgmi7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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