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만 해도 집에서 키우는 개가 강아지를 낳으면 경사였다. 강아지만 시장에 데려가서 팔아도 돈이 생겼고, 잘 키워서 중개 이상 되면 돌아다니는 개장수나 장터의 보신탕집이나 집 지키는 용으로 값을 받고 팔 수 있었는데 그땐 개값이 제법 괜찮았다. 가만 앉아서 돈을 버는 일이었으니 개가 새끼를 낳으면 집안경사일 수밖에. 그런데 지금은 개는 넘쳐나는데, 보신탕 수요도 줄었고, 키우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개가 새끼를 낳으면 이걸 어떻게 할지 난감한 문제가 돼버렸다.
집 지키는 용도로 늘 두 마리 이상씩 개를 키우시는 시골집에서는 암캐는 안 키우고 수캐만 키우신 지 한참 됐다고 한다. 그런데 몇 달 전 작은집에서 개 한 마리를 갖다놓고 가셨는데, 그게 하필 암캐였고 집에 단단히 묶어두었음에도 돌아다니던 수캐에 의해 새끼를 배고 말았다.
이번에 내려가보니 태어난 지 한 달 된 똥강아지들이 귀여운 얼굴로 쪼르르 달려나오는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게 똥강아지라고 여긴다. 오죽하면 사람도 제 자식이 너무너무 이쁘면 똥강아지라 부르겠는가. 그런데, 이 귀여운 녀석들이 하나도 아니고 다섯씩이나 볼볼볼 와서 반기니 나와 애들은 좋아서 헤벌레~ 하건만 엄마 아빠는 저 녀석들을 어떻게 치울 것인지 고민이 한가득이셨다.
두 남동생네 조카들이 모두 여섯인데 아직 어려서 강아지를 환장하게 좋아한다. 큰동생네 조카들은 자기들이 용돈 모아서 사료값 댈 테니 제발 어디 주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는데, 강아지가 사료값만 있다고 크는 게 아니잖은가. 시간 맞춰 밥줘야 하고, 어디 나갈 때도 신경 쓰이고, 집을 마음대로 비울 수도 없고. 결국 엄마 아빠가 신경을 쓰셔야 하는 일이니 지금 있는 두 마리 개로도 충분히 쓰는 신경을 더 쓰고 싶진 않으셔서 '어찌께 하끄나~' 고민이 깊어지셨다.
결국엔 숫놈은 남겨두고 암놈만 다른 사람 주기로 손주들과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강아지를 가져가겠단 사람은 두 마리만 달라는데 암놈은 세 마리. 또 '어찌께 하끄나~' 하시다가 한 놈은 해남장날 사람들 통행이 많은 버스정류장에 두면 누가 가져가지 않을까~ 생각을 하시곤 해남장 가시는 길에 한 마리를 박스에 잘 넣어서 버스정류장에 두고 가셨다고 한다.장 보고 오시는 길에 그때까지도 있으면 다시 가져오고, 누가 가져갔으면 만세!고~
세 시간쯤 뒤에 장을 다 보고 버스정류장에 들르니 마침 어떤 등산복 차림의 젊은이가 강아지 박스를 주섬주섬 정류장 의자 뒤로 챙기길래 저 사람이 가져갈라나부다~ 하시곤 쾌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셨다.
이웃동네에 어떤 사람이 보리밭을 크게 재배해서 작년에 보리밭축제를 했는데 볼만했다시며 올해는 코로나때문에 축제는 안 하지만 보리밭은 볼만할 거라고 하셔서 구경을 나갔다. 가슴이 뻥 뚫리는듯한 너른 청보리밭을 잘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빠가 등산복 입은 사람이 직접 가지고 간 것을 본 것은 아니라서 좀 찜찜하니 이렇게 나온 김에 확인해보자는 것이었다. 혹시나 강아지가 아직 있으면 데리고 오자고.
엄마는
"아까 그 사람이 가져갔을 것이요~ 그냥 갑시다!" 하시는데,
아빠는
"아따, 이 사람아! 안 가져갔으믄 어짜꺼시여? 아직 쬐깐한 강아지라 지 혼자 어디 가도 못하고 있다가 그대로 굶어죽은당께. 산 목숨을 그라고 내비두면 죄받어~"
나는 아빠랑 같은 입장이어서 운전대 잡은 내가 버스정류장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가보았다.
그런데 세상에나!
강아지 박스가 정류장 앞에 그대로 있었다.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원래 박스 두었던 자리도 아니고,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놔둔 자리도 아니란다. 그 사이 몇 사람이 들고 갈까말까 하다가 둔 건지, 강아지가 혹시 박스 밖으로 나와 지나가는 차에 치일까봐 누가 그 자리에 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한 달 된 강아지가 박스 안에서 혼자 달달 떨고 있다가 내가 데리러 가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에구... 저리 좋아하는 녀석을 그냥 두었음 어쨌을꼬!
아침 7시 좀 넘어 나가서 오후 5시까지 무려 10시간을 차들이 쌩쌩 다니는 길에서 낯선 사람, 낯선 풍경에 어리벙벙해하며, 물 한 모금 어미 젖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그러고 있었으니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냈을까. 짠한 마음에 강아지 박스를 얼른 들어서 차 트렁크에 넣고 집으로 왔다.
아침까지 다섯 마리였다가 두 마리만 남은 강아지들이랑 어미개가 풀이 죽었다가, 돌아온 한 마리 강아지에 눈빛이 살아났다. 귀환한 강아지를 박스에서 내놓았더니 좋다고 바로 어미개한테 달려가 젖부터 문다. 아빠는 혀를 끌끌 차시며 똥강아지옆에 물그릇을 들이밀어주셨다.
엄마 쭈쭈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달려간 똥강아지
"이렇게 좋아라 하는디 안 데려오고 그냥 놔뒀으믄 어짰을 뻔 했냐? 죄 받을 일이재~"
우여곡절끝에 집으로 돌아온 똥강아지는 다음날 아침 보니 어미 먹으라고 준 생선까시를 지가 먹겠다고 입에다 물고 아구아구 갉아먹고 있었다.
아구아구~ 마시쪄요?^^
"니가 이는 났냐? 그걸 먹을라고 하게?"
하고 찬찬히 살펴보니 위아래 앙증맞은 이가 벌써 네 개쯤 났다. 빨리 크는구나!
"힘들게 돌아왔으니 잘 먹고 잘 크거라~"
알아들으려나 모르겠지만 한참을 앉아서
조근조근 덕담을 늘어놓고는 일어섰다.
- 2020년 5월에 있었던 일인데 어제 '강아지만 열 마리' 글 쓰다보니 떠올라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