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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r 29. 2022

전설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옛길

문경 토끼비리와 진남성, 진남교반

"토끼비리가 뭐야?"

"토끼가 비리를 저지른 곳이지."


"엥, 진짜?"


"그 별주부전에 보면 용왕이 아픈데 토끼간이 특효라고 해서 자라가 토끼간을 구하러 갔다가, 토끼한테 속아서 용궁까지 잡아온 토끼를 그냥 놔주잖아? 토끼가 자기 간은 소중하니까 산속 깊은 옹달샘 속에다 잘 간수해뒀다고 거짓말해서 말이야."


"그랬지. 근데 자라가 아니고 거북이야."


"거북이었나? 암튼 그때 토끼가 거짓말한 비리를 저지른 곳이 바로 거기야. 그래서 토끼비리야~."


이 남자가 또 나를 곯려먹으려고 거짓말을 술술 잘도 하는구만!


"피~ 내가 또 속을 줄 알고?"


"마눌, 이번엔 안 속네^^"


"내가 만날천날 속을 줄 아나~ 그 정도 눈치는 있다궁~~"


남편이랑 이런 대화를 나누며 올랐던 경북 문경의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산길이 '토끼비리'랍니다.

‘비리’란 강이나 바닷가의 위험한 낭떠러지를 말하는 ‘벼루’의 사투리로, 927년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할 때 이곳에 이르러 길이 없어졌는데 마침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는 것을 보고 따라가 길을 내게 되었다 하여 ‘토천(兎遷)’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고 해요.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산41번지에 있는 토끼비리는 명승 제31호로 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명승지에 이름을 올린 곳이에요.

토리비리는 문경 가은에서 내려오는 영강이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조령천과 합류되는 곳에서부터 산간 협곡을 S자 모양으로 돌아 흐르면서 생성된 벼랑에 난, 길이 500m 정도의 천도(하천변의 절벽에 건설한 길)랍니다. 소개문에 따르면 천년된 잔도(절벽으로 막힌길을 나무로 이어만든 작은 오솔길)라고도 해요.

문경 마성면의 석현성 진남문 아래 성벽을 따라 가다보면 이 길을 만날 수 있는데, 겨우 한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험해요. 관갑천잔도(串岬遷棧道:관갑의 사다리길)라고도 하는 이 길은 조선시대 주요 도로 중 하나였던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험난한 길로 알려져 있답니다. 지금은 안전하게 데크가 설치되어 있지만 중간중간 옛날길 그대로 아무 보호장치도 없이 맨땅과 바위 그대로 드러난 길이 있어 잠시 헛발을 디디면 저 아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 스릴이 넘치는 길이에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의 발길에 닳아 바위마저도 반들반들해진 옛길을 따라 걷다보면 영강 주변의 풍경과 그 너머 진남역이 있는 마을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수 있답니다. 북쪽으로는 고모산성이 우뚝 솟은 모습과 경북팔경의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진남교반(鎭南橋畔)은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에 있는 관광지로 처음 지명을 들었을 땐 무슨 한식 이름인 줄 알았는데, 교반이 '다리의 근처'라는 뜻이더군요.^^;;

강 위로 철교·구교·신교 이렇게 3개의 교량이 나란히 놓여있는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나 봅니다.

진남교반 일원은 1933년 대구일보사가 주최한 경북팔경 선정에서 일경으로 꼽힐 만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에요. 특히 옛길의 1번지답게  2007년 명승 31호로 지정된 토끼비리 옛 길이 있으며, 길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주막, 길손들의 안녕을 빌었던 성황당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답니다. 이 지역은 지형상의 특성 때문에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서 5세기 신라가 북진정책을 펼치면서 쌓은 고모산성과 고부산성, 조선시대의 관성인 석현성 등의 성곽유적과 6~7세기 고분군이 남아 있기도 해요. 한 지역에 이렇게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곳은 국내에서 유일한 곳이라며 문경시의 자부심이 대단한 곳입니다.

문경은 경상북도 북쪽의 울타리 역할을 해서 태백산에서 이어진 대미산, 주흘산, 희양산 같은 고봉들이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요. 진남교반은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이어지고, 낙동강 지류인 가은천과 조령천이 영강에 합류하였다가 돌아나가는 지점으로, 강 위로 철교·구교·신교 3개의 다리가 나란히 놓여 있어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풍경을 보여줍니다. 아름드리 노송이 우거진 진남숲 앞으로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 벚꽃이 절경을 이루어 문경의 '소금강'으로도 불린다고 해요.

4월 벚꽃 필 때. 펌사진

진남휴게소 폭포 왼쪽 암벽 위에는 경북팔경지일(慶北八景之一)이라 새겨진 돌비가 세워져 있다는데 그쪽으로는 올라가지 않아 직접 살피지 못했네요. 진남교반은 휴게소 주변으로 주차장과 캠핑장, 폐광을 활용한 오미자터널, 폐선로를 활용한 레일바이크 등이 마련되어 있어 즐길거리가 많은 곳이더군요. 그래서인지 휴게소 시설도 아주 멋지고, 음식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으며, 합리적인 가격에 맛도 좋았어요.

진남휴게소 뒤쪽 오정산에는 총 둘레 1,270m, 너비 4m에 이르는 장방형의 고모산성이 있답니다. 천하장사 고모노구와 마고노구가 경쟁하여 하룻밤만에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곳이지만, 실제는 삼국시대에 쌓은 신라의 성으로 군사방어용 석성이랍니다.

산성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주흘산 이남이 한눈에 보이며, 남쪽으로는 불정 지역 외에는 다른 곳으로 길을 만들 수 없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길목에 있어요. 그래서 삼국시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으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동학 농민 운동, 한말 의병항쟁, 한국전쟁 때에도 역사에 등장하지요.(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소개)

성벽의 높이가 낮은 곳은 1m, 높은 곳은 11m에 이르는데, 최근에는 산성주변으로 야간경관조명과 포토존을 마련해 색다른 모습을 사진에 담아볼 수 있어요. 토끼와 달을 활용한 조명, 영강을 가로지르는 구교를 꾸민 조명, 곳곳에 설치된 야간조명들이 있어 야경도 참 멋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답니다.

고모산성은 진남휴게소 주차장에서 150m만 가면 볼 수 있는 곳이라 가볍게 오르기 좋답니다.(휴게소 입구 주유소 아래 표지판엔 500m로 나와있는데, 이는 고모산성 정상까지의 거리같아요) 진남문을 거쳐 성곽을 따라 산성을 오르면 탁트인 풍경이 펼쳐지며 영강을 휘돌아나가는 진남교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소예요.

진남문에서 왼쪽의 성곽을 따라 오솔길로 이동하면 앞에서 소개한 토끼비리가 나온답니다. 진남문 북쪽으로는 예천으로 이어진 꿀떡고개(돌고개)가 나오며 주막촌과 성황당이 자리하고 있어요.

커다란 노거수를 중심으로 앞에는 성황당이라 쓰야진 작은 집과 주변에 돌을 쌓아올리고 금줄을 쳐놓은 모습이 정말 유서깊은 성황당이라 여겨지는 곳인데, 그 성황당 앞에서 마주친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옛날에는 이 고개를 넘어 예천 용궁까지 걸어다니시곤 했다네요. (음, 토끼와 용궁이라... 남편이 지어낸 이야기인데도 왠지 연결고리가 느껴지네요^^)

성황당 뒤에는 작은 주차장과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고, 성황당 앞에는 '돌고개 주막거리'라고 해서 주막촌을 재현해놨어요. 예로부터 주막(酒幕)은 오고가는 길손들의 휴식처로서 술과 식당 여관을 겸한 곳으로, 여기는 영남대로 구간 중 가장 통행이 빈번해 오래전부터 주막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해요.

주막을 복원하고자 문경시에서는 2003년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2006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복원된 건물 중 윗편의 건물은 문경에 남아 있는 마지막 주막인 영순주막을 아래편은 예천지역에 남아 있는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을 원형그대로 복원하였다네요. 왜 예천의 삼강주막을 본땄을까 했는데,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지역적으로 아주 근접한 곳이라 그랬나 봅니다. 실제로도 토끼비리 끝머리에 위치한 병풍바위에 올라서 동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예천 삼강주막 가는 길이 보인답니다. 토끼비리의 절벽을 넘어 길 가던 사람들이 목을 축이거나 허기를 채우거나 다리를 쉬며 머물렀던 곳이라 생각하니 주막의 토방에 걸터앉아 그 느낌을 헤아려보고 싶어지는 곳이었어요.


영남대로 옛길은 고모산성과 토끼비리가 중심축으로  소원과 집념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 고모산성의 역사


고모산성은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고모산(姑母山)에 있는 포곡식 산성으로 본성 1,256m, 익성 390m를 합해 총 1,646m에 달한다. 성벽높이 2~5m, 너비 4~7m 정도이다. 서벽은 사방에서 침입하는 적을 모두 방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옛 성벽은 현재 대부분 허물어지고 남문지와 북문지, 동쪽 성벽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


신라가 5세기경 문경에 진출한 이후 축조한 거점 성곽으로, 이곳은 고구려의 남진을 방어하고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소백산맥 이남에 설치한 전진 기지였다고 해요. (축조연대는 156년 이후, 2세기 말경으로 추정되기도 하나, 출토 유물로 보아 470년경에 처음 축조한 것으로 짐작되며, 이후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반복하였다) 서쪽과 남쪽은 영강이 감싸고 있고 동쪽에는 조정산(810m)에서 뻗어내린 험한 산등성이가 있다. 따라서 서쪽은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만 쌓는 편축식(片築式)으로, 나머지 삼면은 지세에 따라 성벽 안팎을 쌓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성벽을 쌓았다. '경북팔경' 중의 하나인 진남교반을 사이에 두고 어룡산과 마주보고 있는 천연 요새이며 전략적 요충지다.


또 중원문화재연구원의 조사보고에 따르면 서문지에서 3.8m 간격으로 설치된 배수구와 배수로 2개소를 발견했다고 한다. 배수로는 바닥에 돌을 촘촘히 깔고 양쪽에 돌을 쌓아 올린 것으로 전체길이 10.8m 정도 된다. 또 서문지 부근 지하에는 약 1,500여 년 전의 요새로 짐작되는 목조 건축물과 유물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목조 건축물은 남북 길이 12.3m, 동서 길이 6.6~6.9m, 높이 4.5m 규모의 3층 구조(상층 2.1m, 중층 1m, 하층 1.4m)로, 창고나 지하 요새, 저수지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고모산성은 군사상 교통상, 전략상 요충지에 위치해 숱한 전란의 역사를 함께 했으며, 이 지역의 중요성은 이 산성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징비록'에 의하면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왜병이 몇 번의 정찰 후 지키는 군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춤추며 노래하고 지나갔다는 안타까운 기록이 전해져 온다.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 때 신필정이 정희량을 막았고, 1896년 을미사변 때  운강 이강년 선생이 의병을 일으켜 격전을 치른 곳이며, 6·25전쟁 때에도 중요한 방어 거점이었다. 고모산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고부산성, 마고산성, 희양산성, 조령산성 등 많은 산성이 위치하고 있으며, 연이어 있는 영남대로의 험로인 토끼비리와 함께 자주 이야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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