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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un 02. 2022

말무덤에 서린 400년을 이어온 의리

강진 양건당 애마지총

우리나라의 동물무덤은 대체로 개, 말, 소가 주인공이에요. 충절과 의로운 죽음, 사찰 불사와 관련된 일화를 가지고 있지요. 대표적인 것이 전북 임실 '오수의 개'예요. 현재 이곳엔 오수 개를 기리는 오수의견비와 오수 펫 추모공원까지 생겼답니다.


동물 무덤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말무덤이 하나 있는데, 경북 예천의 말(言) 무덤은 말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무덤이구요, 오늘 소개할 곳은 강진에 있는 진짜 말(馬)무덤이랍니다.


양건당 애마지총(兩蹇堂愛馬之塚)

주소 : 전남 강진군 작천면 구상길 43.

         척동마을 입구 들판 한가운데 위치

양건당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황대중의 호이구요, 무예에 능해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장군으로 활약을 하게 됐다고 해요.


양건당 애마지총(의마총)에는 다음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와요. 황대중에게는 젊은 시절 우연히 집으로 찾아들어온 말이 있었는데, 훗날 많은 전투현장을 함께 누빈 애마가 되었답니다. 이 말은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장군이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하자 눈물을 흘리며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해요.


정유재란 당시 적탄에 맞은 황대중 장군은 절명 직전 부하 김완에게 자신의 칼을 전해 주며 " 이 칼을 가지고 왜적을 찌르고, 나의 시체를 거두어 내 애마에 실어 주면 집에 가리라"고 했다네요. 그 유언대로 김완 장군이 황장군의 시신을 수습하여 말의 등에 태우자 말은 300리를 달려 고향인 구상마을로 돌아와 가족들이 장군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해요.


애마는 1년 후에 죽었는데(기록에 따라 장군의 장례가 끝나고 3일 뒤에 죽었다고 하기도 하나, 애마지총 앞의 비석에 새겨진 글을 기준으로 함), 말이  숨을 거두자 황대중의 가족들이 말의 충심에 감동하여 주인이 묻힌 묘에서 바라보는 자리에 말무덤을 만들어 지금껏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1795년(정조 19)에 황대중 장군의 충효 정려각이 구상마을에 건립되었는데, 정려각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논 가운데에 애마지총이 있어요. 사람의 무덤도 이렇게 멋지게 만들기가 어려운데 척동마을 푸르른 들판 한가운데 우뚝 솟아오른 말무덤은 한눈에도 관리가 잘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어요.

황대중장군과 그의 애마가 죽은 지 400년이 넘게 지났지만,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말무덤을 보고 있으면 사람과 말의 의리가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느낌이 든답니다.


* 양건당 황대중(黃大中, 1551~1597)은 누구?


양건당의 '건'은 '절다'라는 뜻이니, 양건은 두 다리를 절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두 다리를 절게 된 사연이 놀랍다. 그는 원래 모친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왼쪽 허벅다리 살을 베어 약으로 쓴 이후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러다 1594년 거제도 싸움에서 오른쪽 다리마저 중상을 입어 양다리를 절룩거리게 됐다. 이순신 장군은 그를 보고“과거의 다리는 효건(孝蹇), 지금의 다리는 충건(忠蹇), 두 다리를 함께 절룩거리니 양건(兩蹇)이로다”하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의 호는 양건당(兩蹇堂)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양건당은 장수 황씨 가문 황희 정승의 5대손으로 1551년 한양에서 아버지 윤정과 어머니 진주 강씨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유(萸)였고, 고친 이름이 대중이다. 황대중은 영암군수로 있던 조부 황응을 따라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구상리로 내려왔고, 이후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게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효건(孝蹇)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영민하고 문장에 뛰어나 성장해서는 참봉에 천거되었다.


임진왜란 때 장사로 뽑혀 전투에 참여했으며, 병사 황진(黃進, 1550~1593)을 따라 진주성 전투에 참가했다.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성이 함락될 때 성을 빠져나온 그는 삼도 수군통제사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 활약했다. 이순신의 진중에서 활약하던 중 일본군의 총탄이 오른쪽 다리를 관통하여 다리 일부를 절개했다. 그는 1597년 8월 16일 병마절도사 이복남과 더불어 남원읍성을 사수하다가 전사했다.


* 애마지총 주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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