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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ul 02. 2022

여름날의 화양연화, 괴산 화양구곡

괴산여행


괴산은 알면 알수록 가볼 곳도 많고,

숨은 이야기도 많은 참 매력적인 지방이다.

여기 화양구곡(華陽九曲)도 단순히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는 아홉구비 계곡으로 맑고 깨끗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부터 여름철 시원한 물놀이까지 즐길 수 있는 명승 110호이다.


여름철 피서지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운영담과 금사담이 어린 아이들이나 어르신 있는 집에서 가족물놀이하기에 적당한 곳이라면, 파곶은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지런한 걸음을 잠시 멈추고 느긋하게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곳이다. 올 여름 시원한 계곡에서 피서를 계획하시는 분에게 화양구곡을 강추한다.


주소 :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입장료는 무료, 주차장 입구에서 주차료 징수

승용차 5000원 경차 2000원 비정기버스 6000원



화양구곡은 괴산군 청천면 소재지로부터 송면리 방향 9km 지점에서 3km에 걸쳐 화양천을 거슬러 올라가며 9개의 절경이 좌우에 산재해 있는 계곡이다. 넓게 펼쳐진 반석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의 울창한 숲이 장관을 이룬다.



조선 중기에 우암 송시열이 산수를 사랑하여 이곳에 은거한 곳으로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화양동에 9곡의 이름을 지었다. 우암 사후 수제자인 수암 권상하가 9곡을 설정하고, 이후 단암 민진원이 9곡의 이름을 바위에 새겼다고 전한다. 이런 이유로 '단양팔경' '관동팔경'처럼 많은 명소들이 8경으로 채워지지만 화양동계곡은 하나가 더 있어 ‘화양9곡’이라 불린다. 또한 ‘괴산 화양구곡’은 다른 곳들과 달리 1곡부터 9곡까지 거의 완벽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화양구곡 입구의 파출소와 119소방대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바로 나오는 경천벽부터 시작해, 주차장과 화양동탐방지원센터를 지나 걷다보면 줄줄이 나오는 운영담·읍궁암·금사담·첨성대·능운대·와룡암·학소대와 마지막에 있는 파곶(파천)이 바로 화양구곡이다. 탐방지원센터에서 파곶까지는 3.7km라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신록이 우거진 산길을 걷기 딱 좋다.



그럼 화양구곡을 1곡부터 차근차근 둘러보자.


경천벽은 화양 제1곡으로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 있어 그 형세가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산 꼭대기까지 암벽이 길게 뻗히고 높이 솟은 것이 마치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하여 경천벽이라 한다. 이 바위에는 '華陽洞門(화양동문)'이라는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화양 제 1곡 경천벽은 주차장 전에 나오기 때문에 모르고 가면 지나치기 쉽다. 나도 주차장 가는 길에 오른쪽으로 멋진 절경이 펼쳐져서 눈을 크게 뜨고 봤으나, 쓰윽 지나쳐버려서 나중에 돌아오는길에 일부러 데크를 걸어내려와 경천벽을 따로 봐야했다. 화양1곡인 경천벽만 탐방지원센터 아래 있으니, 이 점 유의하시길!


화양 제2곡 운영담(雲影潭)은 경천벽에서 약 400m 북쪽의 계곡에 맑은 물이 모여 소를 이루고 있다. 빠르게 흐르던 계곡물이 이곳에서 잠시 머물러 쉬었다 가는데,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트래킹을 하다가 실제로는 처음 본 화양구곡의 절경이다. 벚나무, 느티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걷다 보면 화양2교가 나오면서 시원스레 시야가 뻥 뚫리는데, 이때 왼쪽을 바라보면 이 운영담이 보인다.



화양 제3곡은 읍궁암(泣弓巖)이다. 운영담 남쪽에 희고 둥굴넓적한 바위가 있으니 우암 송시열이 제자였던 임금 효종이 죽자 효종의 기일에 이 바위에 올라 엎드려 통곡하였다 하여 후일 사람들이 읍궁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읍궁암 옆에는 송시열의 유지에 따라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을 해준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만동묘가 있다



화양동계곡이 유명한 것은 화양구곡으로 대표되는 자연경관 덕분만은 아니다. 거기에 화양서원과 만동묘가 있기 때문이다. 화양서원터와 만동묘터를 중심으로 암서재, 읍궁암, 바위각자, 묘소와 신도비 등 송시열과 관련된 사적들로 구성되서사적 제417호로 지정되었다. ​화양서원은 조선 숙종 22년(1696) 송시열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창건되던 해에 사액을 받고 숙종 42년(1716) 어필로 현판을 달았다. 전국의 사액서원 중에서도 가장 이름있고 위세가 당당한 서원이었으나, 제수전 징수로 심한 민폐를 끼쳐 철종 9년(1858)에 복주촌이 폐쇄되고, 논란 속에 고종 7년(1870) 서원이 훼철되었다고 한다.


화양 제4곡 금사담(金沙潭)은 맑은 물 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화양 9곡 중에서 가장 풍광이 아름다운 곳을 꼽자면 4곡인 금사담이다. 읍궁암 동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골짜기를 따라 가면 바로 나오는데, 화양구곡의 중심이며 가족 단위의 물놀이 장소로 안성맞춤이라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는 곳이다.



너럭바위를 만난 물줄기가 하얗게 부서지는 계곡물 건너 절벽에는 송시열이 책을 읽고 음풍농월을 즐겼던 ‘암서재’라는 정자가 자리를 잡고 있다. 암서재는 우암송시열이 만년에 벼슬을 그만둔 후 이 곳화양동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후학들을 가르치던 서실이다.



화양 제5곡은 첨성대이다. 화양 3교를 지나 오른쪽 도명산 기슭에 층암이 얽혀 대를 이룬 모습으로 우뚝 치솟은 높이가 수십 미터라고 한다. 평평한 큰 바위가 첩첩이 겹치어 있어서 그 위에서 별을 관측할 수 있다 하여 첨성대라 불렀다.


화양 제6곡은 능운대(凌雲臺)이다.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능운대 앞으로 난 포장길이 능운대와 계곡 물가를 갈라놓았고, 바로 아래 큰 식당이 있는 탓에 그 이름에 걸맞는 우뚝함을 잃었다.



화양 제7곡은 와룡암(臥龍岩)이다. 첨성대에서 한참 걸어올라가 동남쪽으로 1㎞ 지나면 이 바위가 있다. 계곡 옆으로 비스듬히 뻗어 있는 바위의 생김이 마치 용이 꿈틀 거리는 듯하고, 그 길이가 열길이나 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산책로를 포장하면서 한쪽 가장자리가 길 밑으로 들어간 것이 아쉽다. 길게 누운 바위 위에 솥바닥 같은 둥근 구멍들이 파였고 민진원의 글씨로 ‘臥龍岩’이라는 이름이 적혔다.


화양 제8곡은 학소대(鶴巢臺)로 와룡암에서 산책로 따라 동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나온다. 계곡가에 우뚝 솟은 바위벽, 층암 절벽 곳곳에 소나무가 우거진 곳이다. 바위산 위에 낙락장송이 오랜 성상의 세월을 간직한채 여기저기서 있는데, 옛날에는 청학(푸른 학이 있나?)이 이곳에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운영담에서 학소대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데, 마지막 9곡인 파곶은 1km 정도 떨어져있어서 한참 더 걸어야 한다. 그러나중간에 거북바위를 지나 산길을    따라내려가 파천에 이르면 화양9곡이 지닌 절정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화양 제 9곡인 파곶은 파천이라고도 부른다. 협곡에 티없이 희고 매끄러운 바위가 펼쳐지고 그 위로 물살이 구르는 곳이다. 커다란 계곡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암반위로 솟구치며 휘몰아치는 물길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어놓은것 같다는 파천이야말로 화양구곡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신선들이 술잔을 나누던 곳이라고 할 만큼 맑은 경관을 지녔다.



쏴아아~ 콸콸콸 흐르는 화양천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너럭바위 위에 누워서 푸른 하늘과 둥실 떠다니는 하얀 구름을 보고 있자니 온갖 시름이 다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파곶에서 가진 이 시간은 앞으로 살아갈 긴 인생길에서 두고두고 돌아보는 올 여름 최고의 화양연화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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