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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Sep 15. 2022

피를 나누지 않아도

순례주택 집중탐구 2

지난 번 순례주택의 주인 김순례 여사의 집중탐구에 이어, 이번 순례주택 2편은 오수림과 가족들이다.

이 책은 피를 나누고 한 집에 같이 산다고 해서 다 가족인 게 아니며,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면 오수림부터 탐구해보자.

순례주택의 화자인 오수림은 올해 16세로 거북중학교 3학년이다. 집안에서 가장 막내이지만 스스로 제 살 길을 마련하고 올곧게 살아가려는 심지를 가진 가장 어른다운 청소년이다. 서른 두 살에 첫 책을 내고, 수림이가 살아온 시간만큼인 16년동안 작가로 살아오면서 그동안 만난 독자들이 지금쯤 얼마나 자랐을까 상상하곤 한다는 유은실 작가는 그 독자들을 떠올리며 수림이를 창조했단다.


순례씨의 최측근이라 자부하는 오수림은 사실 순례씨의 친손녀도 아니고, 외손녀도 아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순례씨랑 사귀다 죽은 전남친의 외손녀이다. 오수림은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와 사는 집(거북동 원도 그랜디움 아파트 103동 1504호)은 행정상 거주지이고, 자신을 아기 때부터 키워준 순례씨가 있는 순례주택을 진짜 자기집이라고 여긴다. 행정상 주소는 늘 다른 곳이었지만 자신의 마음은 순례주택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순례주택에 사는 친구 진하가 아주 부러워하는 이중주거자 오수림은 학교 끝나고 집에 갈 때면 '오늘은 어느 집으로  갈까?' 행복한 고민을 한다.


무남독녀 외동딸이 맡긴 아기를 받아안고 어떻게 할 줄 모르던 외할아버지 대신, 돈 한 푼 안 받고 자신을 키워준 순례씨에게 외할머니이상으로 각별한 정을 느끼는 수림이는 원더 그랜디움에 거주하는 생물학적 가족인 엄마, 아빠, 언니를 1군들이라 칭하고, 자신은 1군들 사이에 어색하게 낀 2군 후보 선수라고 선을 긋는다.


1군들이 사는 원더 그랜디움은 거북산 아래 산세권, 거북역 근처 역세권, 거북공원 옆 팍세권, 단지내에 초등학교가 있는 학세권 아파트인데 실상 엄마와 아빠가 은근슬쩍 외할아버지에게 빼앗은 집이다. 향년 75세 외할아버지 박승갑은 멀쩡한 자기집을 두고도, 같은 거북동 순례주택의 14평짜리 201호에서 월세를 내며 살아야 했다. 17년에 걸쳐 딸에게 4억 2730만원을 생활비로 따로 보내주면서도. 이에 관한 모든 증거자료는 '할아버지 장부'에 있는데 수림이가 발견하고 모두 폰카로 찍어서 저장해두었다. 심각한 상황이 닥치면 1군들에게 확 까보이면서 결정타를 날리려고.


수림이가 아는 최장수연애커플인 순례씨와 승갑씨는 거북마을에서 오랫동안 전파사를 해온 승갑씨의 성실하고 수줍은 모습에 반한 순례씨가 홀아비 승갑씨에게 작업을 걸어서 20년을 연애했다. 사실 재혼을 할 수도 있었지만, 동거도 안 하고 각자 사는데도 순례씨를 '동거녀'라고 비아냥대는 수림이 엄마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승갑씨는 17년 전에 전파사를 닫고 인테리어 현장에서 전기공사 일을 했는데 그의 손을 거치면 대부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순례씨와 사귄 뒤부터 순례주택의 관리를 도맡아 해왔다. 그래서 길동씨가 공짜로 주택관리 맡기려고 정략연애한 거 아니냐고 순례씨를 놀리면, 승갑씨는 자기 같은 사람하고 무슨 정략연애냐, 순례씨가 손해다 하면서 정색을 하곤 했다. 순례씨가 나이 들어 아플 때면 간병해주고 싶다며 순례씨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승갑씨의 꿈이었지만, 그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공사현장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올해로 47세 대학시간강사인 아빠 오민택은 대학원 후배인 엄마와 서른 살에 결혼했는데, 전임교수가 될 때까지만 도와달라고 하면서 신혼집은 장인에게 얹혀 사는 것으로, 부족한 돈은 부모형제(부모, 장인, 네 명의 누나)에게 받아쓰는 것으로 해결했다.


얹혀사는 딸 부부가 불편해서 외할아버지는 두 달을 못 버티고 본인 집에서 나왔다. 그러다 외할아버지의 거북주공아파트가 재건축으로 새 아파트 '원더 그랜디움'이 되자, 집주인인 외할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딸부부가 낼름 들어가 주인 행세를 하며 지금까지 쭉 살았다. 외할아버지는 '내 집을 무단점거한 사위랑 딸 때문에 속이 터져 죽을 것만 같다'고 말하곤 했다. 외할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그 집에서 단 하룻밤도 자보지 못했다.


교수가 되려고 15수를 하고 있는 아빠가 수림이의 성적이 한심하다고 말할 때면 "아빠야말로 한심한 장기무단점거자로 살잖아~" 라고 되받아치고 싶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하고 싸우기 싫어서 속으로만 중얼거리는 오수림을 보면 누가 진짜 더 어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박영지씨는 43세 전업주부로 입덧을 엄청 심하게 오래 하는 체질이어서 첫째인 언니 오미림을 낳고 녹초가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잔병치레 많은 아기를 키우느라 힘든 때에 바로 둘째인 오수림이 생겼다. 지독한 입덧을 하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낙태를 권했으나 "죽어도 낳을 거야. 실수로 생긴 애라도 내 자식이잖아."하고 단호하게 말하며 엄마는 수림이를 낳았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이 된 엄마는 첫째는 친가로, 둘째는 외가로 보내 얼마간 떨어져 지내야했다.


이때 외할머니도 없이 혼자 지내던 외할아버지는 일을 그만두고 수림이를 키울 형편이 아니어서, 세신사 일을 막 그만두고 '즐거운 은퇴생활'을 준비하고 있던 여친 순례씨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엄마가 순례씨를 '때밀이 아줌마', '동거녀'라 부르며 무례하게 굴어왔기에 외할아버지는 미안하고 부끄러웠으나 순례씨는 수림을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엄마가 조금 회복하자, 친가에 보내진 언니가 밤마다 엄마를 찾고 울었기 때문에 언니는 바로 데려왔지만, 수림은 순례씨와 할아버지 품에서 잔병치레도 없이 잘 지내기에 그냥 맡겨두었다. 때탑(순례주택) 너른 마당에서 걸음마를 시작해, 그곳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며 성장하던 수림을 엄마 아빠는 함부로 뽑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가끔 외할아버지가 수림이를 데리고 엄마 아빠에게 가면 악을 쓰고 울었기 때문이다. "하부지, 순례씨한테 갈 거야."하면서.


여섯 살이 되어서야 엄마 아빠를 보고도 울지 않았고, 일 년에 몇 번씩 친척 만나듯 1군들에게 갔지만 언니는 장난감에 손도 못 대게 하고, 밤이 되면 순례씨가 너무도 보고 싶어서 무척 불편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1군들과 합류했다.


엄마는 수림이와 친해지려고 나름 애를 썼지만 수림이는 마음은 순례주택에 놓고, 몸만 온 애처럼 굴었다. 엄마는 수림이가 남의 자식 같아진 게 서럽다고 울고, 어려서 딸을 떼어 놓은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때로 안타깝지만 수림이는 목숨 걸고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좋아하진 않아도 깊이 감사하게 여긴다.


언니인 17세 오미림은 거북고등학교 1학년이다. 거북중에서 종종 전교 1등을 했지만 외고입시에서 떨어진 저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자매애는 1도 없고, 라면도 끓일 줄 모르고, 사과 배는 깎아먹을 줄 몰라서 귤만 까먹는다. 태어난 해와 별자리까지 같은 '지구환경 보호용사' 그레타 툰베리와 반대로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날마다 드라이클리닝 냄새가 가시지 않은 옷을 입고 BMW mini를 타고 출근하는 20대'가 되는 게 꿈인 오미림과 대화가 길어지면 싸움이 된다. 역시나 친하지 않은 사람과 싸우기 싫은 오수림은 무기력증을 선보이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한다.


웬수같은 언니 오미림을 폰에 '은인'으로 저장해두고 세 가지 은혜를 잊지 않으려 애쓴다는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옮겨본다.


첫째, 오미림은 밤마다 우는 아기가 되어 주었다. 친할머니가 키울 수 없을 만큼 울어서 부모에게 가고, 더 어린 내가 밀려났다. 덕분에 나는 순례씨 품에서 자랄 수 있었다. 순례씨 품은 부모보다 훨씬 넓다.


둘째,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엄마가 나에게 잘해 주는 꼴을 못 봤다. 덕분에 나는 거의 날마다 순례 주택에 갔다. 오미림이 괴롭히지 않았으면 엄마가 허락하지 않았을 거다.


셋째, 오미림은 부모의 기대를 채워 주었다. 부모의 스케줄대로 움직여주고, 공부도 잘했다. 학원비도 많이 썼다. 덕분에 나는 스케줄 밖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렸다.


캬아~~~, 이런 이유로 오미림을 은인으로 생각하다니 오수림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이런 오수림을 집에서는 유일한 골칫덩어리 문제아로 보지만, 학교생활통지표에 중 2때 담임 선생님이 써 준 글은 다음과 같다.


[낙천적이고 성숙합니다. 생활지능이 높은 학생으로, 세상을 잘 헤쳐 나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수림이는 이 두 줄 덕분에, 사는 게 더 행복해졌는데 엄마의 반응은 달랐다. "생활지능이 뭔 소리야. 신형 가전제품에 탑재된 기능이야? 13등에 만족하니 발전이 있겠어? 문제 없는 집이 없다더니, 우리 집은 저거 하나가 문제야."

집에서 자기 말고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엄마의 말에 수림은 "하, 진짜 어이없다. 고개를 못 들고 다니게 사고를 쳐놓고!"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1군들이 한꺼번에 수림이를 '중 2병으로 감정 조절이 안 되는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이라고 공격했다.


그런 때 수림의 반응은?

'이 사람들은 내 친척이다, 친척이다. 사고를 친 건 먼친척 짓이다. 친척 짓이다.' 하면서 1군들에게 열 받을 때면 되뇌는 말로 마음을 다스렸다. 뭐가 부끄러운지 모르는 사람들과 가족으로 사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그게 부모라면 더욱 그렇다는  수림에게 일어난 어이없는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자, 여기부터는 책을 읽어보시라!

다 얘기해주면 재미 없으니까^^

이 책은 직접 읽으면서 읽는 재미를 느껴야 한다.

청소년 전문 도서인 비룡소의 블루픽션 81권인 '순례주택'은 한국어린이도서상, IBBY 어너리스트 수상작가인 유은실의 신작 청소년 소설이다. 유은실은 장편동화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으로 혜성같이 등장하여 지난 16여 년 동안 동화, 청소년 소설, 그림책 등 여러 장르를 꾸준히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들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가다.


『만국기 소년』,『마지막 이벤트』,『일수의 탄생』,『드림 하우스』,『우리 집에 온 마고 할미』,『나도 편식할 거야』,『멀쩡한 이유정』,『내 머리에 햇살 냄새』,『우리 동네 미자 씨』와 같은 동화에서는 현실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움에, 작가 특유의 유머 넘치는 풍자를 장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다. 그 결과 재미와 감동, 메시지까지 3박자를 모두 갖춘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후 권정생 문학상을 받은 『변두리』, 아픈 몸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아낸 『2미터 그리고 48시간』과 같은 청소년소설로도 장르를 확장해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약 3년 만에 발표되는 새 청소년 소설에서도 독특한 캐릭터, 유머, 촌철살인의 진한 메시지까지 작가 특유의 끼를 보여 준다.(알라딘 작가소개 참고)


아동청소년의 경계를 훌쩍 넘으며 모든 세대의 지지를 이끌어 내온 ‘유은실 월드’의 또 하나의 성취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순례주택'은 한 번 책을 집어든 순간, 훅 빨려들고 만다. 그러니 일단 책을 구해보심이 어떨른지~ 난 동네도서관에 예약해두었다가 겨우 받아 읽었는데, 다 읽고나니 사서 소장하고 싶어졌다. 주택의 외관인 벽돌문양 하드커버도 꽤 이쁘다.


* 순례주택 리뷰 1편이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malgmi73/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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