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Oct 08. 2022

내 남편은 한때 영구였다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개운하게 씻은 뒤

(그래봐야 세수하고 발 닦는 정도)


"어~ 좋다!"하며

욕실에서 나오니

남편이 머리를 들이밀며 그런다.


"마누라, 여기 뒷머리에 빵꾸 났나 좀 봐줘."


"괜찮은데? 다래가 흰머리 뽑아준다더니

또 영구 됐을까봐 걱정이야?"


"걔가 머리 뽑고 나면 머리가 아포~~ ㅜㅜ"


딸에겐 아빠를 영구 만든 전적이 있다.

지난 4월이던가...

남편이랑 이웃동네 백반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하며 공원에 앉아있었다. 나는 서있고, 남편은 앉아서 식당표 달달구리 자판기커피를 마시며 있던 중이었는데 마침 남편의 윗머리가 보였다.

그런데 이게 왠열?

머리 가운데 큼지막하게 빵꾸가 난 것이었다!


며칠 전 딸이 아빠 흰머리를 뽑는데,

딸은 허리랑 다리 아프다고 징징대고

머리를 맡긴 남편은 식탁 의자에 앉아서

머리통 아프다고 얼굴 찡그리던 기억이 났다.


옆에서 보다 못한 내가 딸에게


"다래야~ 너무 힘들게 뽑지 마. 적당히 뽑아도 돼."


"안돼요! 제 눈에 띈 이상 다 뽑아야 돼요."


딸은 아주 단호박이었다.

아빠 닮아 원칙론자에 완벽주의자인 성격 그대로 자기눈에 흰머리가 띈 이상 다 뽑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래서 결국은...

한 시간여 공들인끝에

아빠 머리를 영구 만들어놨다.


"어쩐지 머리통이 너무 아프더라니..."


"그니까 다음부턴 딸한테 머리 뽑아달라고 하지 마. 걔눈에 띄면 완전박멸할 때까지 뽑고 또 뽑는다니까. 마누라가 가위로 잘 짤라줄게. 흰머리 자꾸 뽑으면 모공이 상해서 머리카락이 더 안 난대."


그 뒤로는 일요일마다 내가 가위로 살살 잘라내주었는데, 이번 개천절연휴 때 친정에 가있던 2박 3일 동안 일요일이 껴있던지라 마누라 올 때까지 못 참고 딸에게 또 흰머리 뽑아달라고 한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연휴 내내 집에서 어머님과 두 아이와 지낸 남편.

내가 함께 있는 연휴라면 어디든 바람 쐬러 갔을 텐데, 밖에도 안 나가고 집에서 이리뒹굴 저리뒹굴만 하는 것 같길래 밖에 좀 다녀오라고, 어머님 모시고 금산인삼축제 다녀오라고 했더니, 딸이 흰머리 뽑아주고 있는데 아프다고 톡이 왔던 게 떠올랐다.


한 주만 참고 그냥 지나가지~,

뭐하러 또 영구 될 각오를 하고 딸한테 맡겼는지..

하여간!

그래놓고 마눌 보니 문득 뒷머리에 빵꾸 났나 걱정됐나 보다. 안심하라고 사진까지 찍어서 보여줬다.


그러게 괜히 머리에 빵꾸날까 봐

전전긍긍 불안에 떨지 말고,

흰머리는 믿을만한 마눌한테 딱 맡기슈~~~



* 사진 올리면 초상권 침해로 소송한다길래

머리통만 보구, 게다가 살짝 나온 얼굴은 모자이크처리했는데 어떻게 아냐고 됐다 그랬습니다.

저 잘했쥬?^^


많이 자랐네. 다행이야~
뒷머리 멀쩡!


이전 03화 마눌이 몸개그를 하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