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는 고개를 숙이고 자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자연스레 입이 크게 벌어졌다. 무료하던 참에 장난끼가 도진 학생이 슬쩍 손가락 하나를 아줌마 입에 넣었다 뺐다.
그랬더니 바로 옆에 있던 아저씨가 씨익 웃는 것이었다. 혼낼 줄 알았던 아저씨가 오히려 웃자 용기를 낸 학생은 다음에는 손가락 두 개를 넣었다 뺐다. 아저씨가 이를 드러내며 더 크게 웃었다. 그러자 더욱 용기를 낸 학생은 이번엔 주먹까지 넣었다가 뺐다. 아저씨는 지하철 안이라 소리는 못 내고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큭큭큭 웃더니만, 학생에게 손따봉을 날렸다. 학생은 아주 의기양양 신이 났다.
그런데 다음 정류장을 알리는 지하철 안내방송이 퍼지자, 아저씨가 벌떡 일어서며 옆에서 자던 아줌마를 깨웠다.
"여보~ 그만 자~ 내려야지."
허거덩~
그 아줌마는 아저씨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처음 이 이야길 듣고,
허리를 붙잡고 깔깔깔 웃던 나는
"이거 실화야? 진짜임?"하고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부부가 중년이 되면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구나~ 우리도 나이 들면 진짜 그렇게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중년이 되고 보니,
딱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 목도했다.
2022년 8월 25일의 일이다.
몇 년 전 구입해서 잘 쓰던 에어프라이어가 맛이 살짝 가서 새로 오븐형 에어프라이어를 샀더니, 그게 로티세리 통닭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안내문에 써진 걸 남편이 보았다. 그때부터 남편은 언제 로티세리 통닭 만들어주냐고 생각나면 한 번씩 얘기를 하길래 말복 지난 뒤에 장을 봐다가 손질한 통닭을 에어프라이로 굽고 있었다. 통닭이 꼬치에 꿰인 채 뱅글뱅글 돌아가며 익어야 하는데 돌아가다 말고 돌아가다 말고 그러는 것이었다. 그래서 손을 넣어 꼬치를 손보다가, 익숙치 않은 오븐형 에어프라이에 손꾸락을 데이고 말았다.
"앗, 뜨거!"
하면서 찬물에 손 담그려고 싱크대로 급히 뛰어가려는데, 마침 일찍 퇴근한 남편이 어떻게 만드나 구경하느라 옆에 서있지 뭔가. 그래 남편을 비키려다가 그만 우당탕탕 미끄러져 식탁 아래에 대자로 넘어지면서 오른쪽 팔꿈치에 정통으로 몸무게가 실리고 말았다.
대충 이런 포즈?
어찌나 아프던지 눈물이 찔끔 나고, 식탁 아래 누워서 "아야아야~ 아포아포~"를 연발하고 있으니 남편이 팔을 주물러주네 어쩌네 하는데 건들기만 해도 아파서 그냥 두라고 하고는 한참만에 일어났다. 팔꿈치 부분이 부러지진 않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심한 충격으로 인해 인대가 늘어난 듯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황당해하던 남편이 호~ 해주고, 약 발라주고, 찜질도 해주고, 덕지덕지 파스도 붙여줬는데 아무리 해도 더이상 좋아지지 않았다. 다음날이 시어머니 생신날이라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조심조심 생신상에 놓일 음식준비를 하고, 아침을 차린 뒤 병원 가서 엑스레이 찍고 물리치료 받고 약을 타와서 먹었다. (병원에서 한 2주는 갈 거라고 그랬는데, 한 달이 다 되가는 지금도 여전히 아프다. 팔을 안 써야 낫는다는데, 가정주부에 텃밭인이 오른팔을 안 쓸수가 있나...ㅜㅜ)
그날 저녁 때 퇴근한 남편이 내 상태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하길,
"어제는 니가 너무 아파해서 말 못했는데...,
사실 나, 마눌이 몸개그하는 줄 알고 너무 웃겼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종잇장처럼 넘어질 수가 있지? ㅋㅋㅋ"
사고당시엔 마누라가 아프다고 징징대니 그땐 대놓고 웃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웃다가 다음날 병원 다녀오니 이실직고를 하는 것이었다. 마눌이 자기 앞에서 너무도 황당하게 넘어지던 장면이 머리속에서 수시로 리플레이되는 바람에 회사에서도 혼자 실실 웃었다는~
마누라의 불운이 남편에겐 큰 즐거움이 됐다 이거지?그래~ 싸랑하는 남편을 위해서 살신성인한 셈 치지 뭐! 하고는 말해줬다.
"앞으로 힘들 때마다 그거 떠올리며 씨익 웃고는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은 거 날려버려~ 아라쮜?"
"ㅎㅎㅎ, 그랴~^^"
* 로티세리 통닭구이는 어케 됐냐구요?
꼬치에 꿰어져있던 통닭은 고이 내려와 딸이 가위로 먹기좋게 잘라서 오븐구이로 만들어 냠냠 먹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