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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an 01. 2023

2023년 새해 인사 올립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는 새벽형 인간이라 새해 첫 날도

새벽 3시 16분에 시작했답니다.


새벽 하늘 쳐다보고,

음양탕 한 모금 마시고,

쌓여있는 집안일 사부작사부작 마친 뒤,

오설록 스페셜티 시리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스윗부케향 티를 우려낸 다음,

'오늘의 시' 한 편을 필사할 준비를 마친 시각이 새벽 4시 44분.


작년까지 매일 글쓰기 천일(2022.4.13)과

팔굽혀펴기 하루 100개 천일(2022.11.20)을

달성했기에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던 참에

친애하는 페친 정희용님의 추천으로

시 필사 천일 쓰기에 도전하게 되었어요.


2022년 12월 31일이

딱 10일째 되던 날이어서,

2023년 1월 1일은

11일째 되는 날이네요.


1111!^0^

와우~ 1이 무려 네 개나!


뭔가 기분 좋은 시작의

느낌이 드는 수입니다.

이런 의미 깊은 날 필사한 시는

제가 오래전부터 추앙해오던 안도현 시인의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 초판 2008년 1월 21일)에서 59쪽에서 61쪽에 걸쳐 나오는 '예천 태평추'입니다.


바로 이 시의 끝부분에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간절하게 참 철없이"란

구절이 나오지요.



시집을 다시 한 번 쭉 읽어보고,

새해 첫날 필사하기에 이보다 더 맞춤한 시가 없겠구나 싶어서 골랐답니다.


여러분도 2023년 새해엔

바라시는 일 모두 이루시길,

남의 눈엔 철없어 보이더라도

간절하게... 간절하게... 간절하게...

소망하시고 결국 그 바람을 이루시는 한 해 되시길 두 손 모아 빌겠습니다.^^*


울산 간절곶에 떠오른 2023년 첫 태양
포항 호미곶
강릉 강문해변
인천 소래습지생태공원
동해 일출
부산 광안리


※ 예천 태평추 ※


어릴 적 예천 외갓집에서 겨울에만 먹던 태평추라는 음식이 있었다

객지를 떠돌면서 나는 태평추를 잊지 않았으나 때로 식당에서 메밀묵무침 같은 게 나오면 머리로 떠올려보기는 했으나 삼십년이 넘도록 입에 대보지 못하였다


태평추는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데 눈 많이 오는 추운 날 점심때쯤 먹으면 더할 수 없이 맛이 좋았다 입가에 묻은 김가루를 혀끝으로 떼어먹으며 한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며 갯내를 혼자 상상해본 것도 그 수더분하고 매끄러운 음식을 먹을 때였다


저 쌀쌀맞던 80년대에 눈이 내리면, 저 눈발은 누구를 묶으려고 땅에 저리 오랏줄을 내리는가? 하고 붉은 적의의 눈으로 겨울을 보내던 때에, 나는 태평추가 혹시 귀한 궁중음식이라는 탕평채가 변해서 생겨난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허나 세상은 줄곧 탕탕평평하지 않았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탕평해야 태평인 것인데, 세상은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기울기 일쑤였고 그리하여 탕평채도 태평추도 먹어보지 못하고 나는 젊은 날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술집을 찾아 예천 어느 골목을 삼경(三更)에 쏘다니다가 태평추, 라는 세 글자가 적힌 식당의 유리문을 보고 와락 눈시울이 뜨거워진 적 있었던 것인데, 그 앞에서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다가 대신에 때마침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말았던 것인데,


그날밤 하느님이 고맙게도 채썰어서 내려보내주시는 굵은 눈발을 툭툭 잘라 태평추나 한 그릇 먹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간절하게 참 철없이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 안도현  / 간절하게 참 철없이  中



* 태평추



메밀묵이나 도토리묵, 돼지고기, 묵은 김치를 넣어 끓인 전골류의 음식으로 경상북도 예천의 향토음식이다. 태평채, 태평초, 묵두루치기라고도 한다. 주로 겨울철에 먹던 음식으로 밥에 얹어 말아 먹거나 술안주로도 즐겨 먹었다. 이 지역의 일설에 따르면 궁중음식인 탕평채가 경상북도에 전해지면서 서민들이 먹는 태평추가 되었다고 전한다.


부드러운 묵의 식감과 아삭한 김치, 쫀득한 돼지고기가 한데 어우러져 다양한 식감을 지니고 칼칼하면서도 깊은 국물맛을 낸다. 주재료인 묵은 재료에 따라 메밀묵, 도토리묵, 녹두묵 등으로 하며 묵은 그대로 간장 양념만 얹어 먹어도 맛이 좋으며, 무침이나 볶음, 묵사발 등으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태평추를 만들어 먹을 때는 묵을 맨 마지막에 넣어야, 묵이 풀어지지 않으며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다.


(두산 백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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