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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pr 28. 2023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해남군 산이면 구멍가게

작년 가을,
이미경 작가의 책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에 나온 해남군 산이면 미륵사 옆 오르막길에 있다는 그 구멍가게를 찾아나섰다.



책이 처음 나온 2017년에도 한 번 찾아나섰는데, 그땐 미륵사를  미황사로 잘못 알고 엉뚱하게 해남군 송지면의 미황사 아래 마을을 찾아갔다가 허탕을 쳤다. 김미경 작가의 글에 '해남 땅끝마을을 찾았다가...'라는 부분때문에 비롯된 착각이었던 듯하다. 땅끝마을은 송지면에 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나루를 뒷좌석에 태우고 미황사 앞마을을 참 열심히도 헤집고 다니며 그림 속 구멍가게를 찾았으나, 미황사가 아닌 미륵사 앞마을이었으니 아무리 열심히 찾아봐야 뭔 소용? 이래서 번지수를 잘 짚어야 한다.
세상 어떤 일에서든 번지수 잘 찾아서 열심을 하든 분투를 하든 성심성의껏 해야 함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기도 하다.

2022년 10월에 산이면 미륵사(전남 해남군 산이면 산이로 1037. 송천리 152-5)를 내비에 찍고 찾았을 땐 구멍가게는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근근이 이어가던 시골마을 가게가 코로나로 사람들 발길이 뜸해지며 더이상 운영하기 힘들어졌거나 주인에게 무슨 변고가 생겼는지 모를 일이었다.

책에 나온 때처럼 해가 저물녘에 맞춰 갔지만 구멍가게는 어둠 속에 잠긴 채 하늘에 뜬 반달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쇠락한 가게에서만 볼 수 있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 아래는 책'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에 소개된 산이면 슈퍼의 내용이다.



해남 땅끝마을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려 해남군 산이면 806번 국도 미륵사 옆 오르막을 오르던 중 구멍가게를 하나 만났다. 시대의 애환을 등에 지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어둑어둑한 초저녁 하늘 아래 조용히 앉아 있는 구멍가게에는 내가 찾아다니며 그리는 가게의 이미지가 모두 담겨 있었다. 숨죽여 한참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불빛에도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청자색 어둠이 깔리고 가게 등 뒤로 빼곡한 나무들이 병풍처럼 당당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묵묵히 서서 현실을 직시하는 듯하였다. 가게 옆에 선 가로등 빛과 가게 안에서 번져 나오는 주광색 조명은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성인의 밝은 눈빛 같았다. 밤의 그늘과 등불이 만나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쇠락하는 가게에서만 볼 수 있는 처연한 아름다움이다. 내 작품의 모티브가 이곳에 응축되어 있었다. -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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