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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y 19. 2023

목화솜이불 바느질하던 날

"니는 시어머니가 계신께 이런 솜이불도 쓸라냐?"

작년초 아빠 생신 때 친정에 갔더니 엄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며 보여주신 두꺼운 솜이불 한 채.
목화솜 100%라 엄청 무거워서 시어머님도 이런 이불은 안 덮으실 것 같은데, 아들이 보더니만 깔고 자면 좋겠다고 해서 냉큼 받아온 이불이다.

아들은 아직 잠투정이 심하고, 자면서 온 방안을 굴러다니며 자는 성격이라 침대매트같은 데서 자면 반드시 굴러떨어진다. 그래서 여전히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데 킹사이즈의 도톰한 이불이라 바닥에 깔아두면 마음놓고 잘 수 있을 것 같단다.

커다란 꽃무늬가 촌스럽다 싶은데 남자애라 그런지 촌티 좔좔 디자인엔 무관심이고, 색이 찐해서 때를 잘 안 타니 이불을 개지 않고 바닥에 깔아둔 채로 질겅질겅 밟고도 잘 다녔다. 다른 이불들은 두어 달에 한 번씩 세탁기에 돌려 빨았지만 이 이불은 솜이불이라 엄두가 안 나서 사용한 지 1년이 넘도록 안 빨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아들이 독감에 걸려 땀을 엄청 흘리며 누워있었던지라 소독도 할 겸 한 번 빨아야겠다 싶어 이불홑청을 뜯었다.

이실직고하자면...
처음에 이불홑청을 뜯으려고 이불을 펼쳐놓고 보니, 4면이 모두 바느질되어 있어서 그걸 일일이 다 뜯어낼 엄두가 안 났다. '에잇! 그냥 이불째로 햇빛소독이나 하자~' 하고 베란다에 널어둔 것을 어머님께서 보시곤

"아야~ 이거 이렇게 햇빛바라기만 한다고 되겄냐? 홑청 다 떼어서 빨아야재~"

하시는 것이다.

"이불 홑청 뗄라고 보니 네쪽 다 바느질이 되어 있어서 떼어내기 힘들 것 같아서요..."

"아이고~ 그란다고 이불홑청을 안 빨고 둬야? 내가 해주마!"

하시고는 어머님께서 이불을 가져다 가위질하셔서 홑청을 떼어내주셨다. 어머님 덕분에 빨래를 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이제 이 홑청을 솜이불에 다시 씌우는 일이었다. 4면에 다시 바느질을 해서 씌우고, 중간중간 홑청이 들뜨지않게 큰 바느질도 해줘야 다시 쓸 수 있다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또다시 엄두가 안 났다.

그 무렵 안 그래도 허리디스크가 있는데 허리까지 삐어서 오래 앉아있는 일이 제일 힘들 때였는데, 저 큰 이불을 일일이 다 바느질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앉아서 엉덩짝을 비벼야 하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다 마른 이불홑청을 빨래건조대에 그냥 두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밥 먹여서 아들 학교 보내고, 남편 회사 보내느라 바쁜 시각에 어머님께서 솜이불을 거실에 펴고 청을 씌우는 작업에 돌입하셨다.
손이 빠른 어머님이시라 그 짧은 아침 시간에 4면을 다 바느질하시고, 내가 설거지를 마쳤을 즈음엔 싸악 뒤집어서 원래대로 해놓으셨다. 나는 대바늘로 중간중간 이불홑청이 들뜨지 않게 큰 바느질만 했다.

어머님덕분에 아들이 뽀송뽀송한 이불에서 자게 되어 감사히 여기던 참에 며칠 뒤 아들의 이불을 이리저리 보시던 어머님께서 이불 한가운데가 크게 찢어져서 기워야겠다고 하신다. 자면서 얼마나 난리부르스를 쳤길래 멀쩡하던 이불이 찢어진 건지~

"요런 데는 그냥 홀치기만 해선 안 되고, 천을 덧대서 바느질해야 다시 안 찢어져야. 뭐 덧댈만한 천이 있냐?"

덧대어도 비교적 티가 안 나는 천을 찾다보니 그나마 손수건이 나아보여서 손수건을 갖다 드리니, 찢어진 부위에 맞춰 어머님께서 잘라주시고는 바느질은 나에게 일임을 하셨다.

그래서 평생 처음 천 덧대어서 바느질하기를 했다. "어머님과 사니 이런 일도 해보네요~" 하면서 내가 바느질하는 동안 어머님은 옆에서 지켜보시며 시침핀으로 손수건을 이불에 고정해주신다거나, 바느질한 부분을 손으로 쭉쭉 훑으시며 "중간중간 이렇게 해줘야 덧댄 부분이 안 울어야~" 하셨다. 어머님께서 열다섯에 처음 두루마기를 만드셨던 이야기며, 사촌언니 혼수해갈 바느질까지 맡아서 하던 일들이며, 도란도란 옛날이야기도 나누며 하다보니 시간이 훅 갔다.

솜이불 건사하기가 꽤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고부간에 힘을 보태 버려질 이불 하나 쓸만하게 만들고 추억거리도 쌓으니 이것도 사는 재미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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