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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ug 17. 2023

초등저학년 문해력 격차를 따라잡을 골든타임

EBS 당신의 문해력 1

미국에서는 1976년 이후 '교육적 의료사고'라는 학교 책임에 대한 소송이 계속 있었는데, 2020년 초 미국 교육계에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2020년 처음으로 법원이 학교의 책무 이행 부족을 인정한 것이다.


디트로이트시와 캘리포니아주의 일부 학생들이 학교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교육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 주요 이슈가 '문해력'이었다. 학교를 졸업했지만 그에 부합하 는 적절한 읽기와 쓰기 능력을 갖추지 못해 졸업 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 원고 측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반드시 학생들이 교육 과정에서 적절히 교육받아야 하는 헌법적 권리"라고 언급하며, 문해력을 생존에 필수적인 역량으로 판단한 것이다.


지금, 당신의 문해력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지원PD가 '문해력'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했을 때 지인이 "나, 요즘 책이 예전만큼 안 읽히는데, 그거 왜 그런 걸까? 문해력이랑 관계있는거야?"하고 물었단다. 많은 사람이 "예전보다 잘 안 읽히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단순한 느낌이면 좋겠지만 사실일 확률이 크다.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다'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문해력은 자신의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일부를 제외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말을 할 수 있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읽고 쓰는 것은 문자가 만들어진 이후에 인간에게 벌어진 일로, 후천적으로 배우고 익혀서 갖게 된 능력이다. 뇌를 봐도 이는 드러나는데, 태생적으로 뇌에는 읽고 쓰는 기능이 없다. 때문에 읽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 읽지 않으면 퇴화한다. 동시에 꾸준히 계속 읽으면 그 능력이 키워진다.


우리나라의 문해력 수준이 전반적으로 저하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읽기'와 '읽기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잘 읽는 뇌를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히 반복해서 읽는 연습이 필요하다. 매리언 울프 교수도 강조했듯이 "종이책은 읽는 도중 생각의 지도를 만들어줄 수 있는 우수한 매체"이다. 읽기 능력을 키우고 문해력 수준을 높이려면 종이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면 다른 방식의 글 읽기 연습을 해도 된다. 어떤 글이든 계속 읽으려는 노력이 중요하고 그런 지속적인 읽기 훈련을 통해 문해력은 향상된다.


이 책의 3장 < 학령기, 문해력 격차를 따라잡을 골든타임 >에 나오는 핵심 내용으로 왜 초등 저학년이 문해력을 따라잡을 골든타임인지 소개한다.


1. 알림장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2학년 수찬이


수찬이는 자음과 모음의 소릿값을 정확히 알고 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낱말을 그림처럼 통째로 외우고 그것을 기반으로 책에 나온 그림 등 상황을 파악해 추측하며 글을 읽었다. 이에 대해 조병영 교수는 "수찬이가 쓰고 있는, 책에 있는 그림을 단서로 해서 의미를 파악하는 전략은 좋은 읽기 전략이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글자 수가 많아지고 내용도 복잡해지면 그림만으로 의미를 파악하는 게 어려워진다. 긴 글을 읽으려면 우선 글자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2. 글자는 읽을 줄 알지만 의미는 모르는 6학년 수호


초등학교 6학년 수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싫은 과목은 첫 번째 가 영어이고, 두 번째가 수학이고, 세 번째가 체육 빼고 전부"라고 말할 정도로 공부를 싫어한다. 수학 단원평가가 있는 날에도 낑낑대며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국 주위를 둘러보며 먼산을 보다가 연필을 내려놓았다.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으로 보였다. 예상했듯이 수학 시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15개 문제 중에서 10개 이상을 맞혔지만, 수호는 3개밖에 맞히지 못했다.


수호의 수학 시험지를 살펴보니 문제를 풀어보려고 애쓴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문제를 풀려고 시도했고 노력하지 않은 문제는 없었다. 수호의 수학 시험지를 채점한 선생님은 "수호는 식이 틀린 거지 계산이 틀리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즉 기본적인 계산 능력은 있지만, 어떤 수학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할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수학 문제의 의미를 파악하고 어떤 답을 요구하는지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이다.


시험이 끝나고 이어진 수업 시간을 관찰한 결과 수호는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했다. 교과서도 엉뚱한 곳을 펼쳐놓고 있어서 선생님이 짚어줘야 했다. 선생님이 문제를 읽어보라고 하자 빠르게 교과서 내용을 읽었다. 특이한 점은 '끊어 읽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끊어 읽는다는 것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며 읽는다는 것이다. 수호가 끊어 읽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읽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담임인 진영준 교사는 "수호가 글 읽는 모습을 보면 끊어 읽기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 읽는다. 읽고 나서 문장의 의미를 물어보면 모르는 경우가 꽤 많다. 수호한테는 '빠르게 읽으면 잘 읽는 것'이라는 읽기에 대한 오개념이 많이 생긴 것 같다"라고 수호의 문제점을 조심스럽게 짚었다.


수학 시간이 끝나고 3교시 국어 시간이 되었는데, 자기 생각과 느낌을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하는 수업이 진행되었다. 단번에 생각을 써 내려가는 아이들과 달리 수호는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어떻게 써야 되지?"라고 혼잣말을 하며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이 어떤 점이 어려웠냐고 묻자 "머릿 속에 떠오르지도 않고 그냥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글자는 읽을 줄 알지만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수호는 수업 시간에 무언가 막힐 때마다 선생님에게 질문하며 겨우 버텼다. 수호는 계속해서 "선생님, 이렇게 쓰면 돼요?",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야 돼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온라인 수업을 할 때는 거의 매번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선생님이 "오늘은 전화를 받지 말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수호는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전화를 했다. 초기 문해력 진단평가 결과 초등학교 6학년인 수호의 문해력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였다. 선생님은 수호가 혼자 힘으로는 6학년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다행인 것은 수호가 매우 성실하고, 문제를 끝까지 해결해보려는 의지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3. 문해력 발달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되는 이유


문해력에 대해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초등학교 2학년을 문해력 발달의 골든타임으로 본다. 물론 문해력은 나이가 들어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읽고 쓰는 연습을 통해 계속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이 문해력 발달의 골든타임을 초등학교 2학년으로 보는 이유는 3학년부터 본격적인 학습을 위한 읽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교과목 수가 부쩍 늘어나는 데다 내용도 어려워지면서 고급 어휘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따라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문해력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놓지 않으면 3학년부터는 문해력 격차이든 학습 격차이든 따라잡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문해력은 가장 기본적인 학습 도구이기 때문에 문해력 발달이 뒤처지는 아이들을 그대로 두면 학교생활에 적신호가 켜지게 된다. 또래 친구들이 문제를 읽고 이해하면서 답을 푸는 연습을 할 때 문해력 기초를 닦기 위한 읽기 수업을 따로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학습 부진도 문제이지만 정서적 어려움도 큰 문제가 된다. 자신이 뒤처진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상처를 받고 주눅이 드는 것이다. 결국 자존감 형성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문해력 발달의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가장 큰 위험은 악순환에 빠지는 상황이다. 문해력 수준이 낮으면 학습 기회를 상실하고 학습 의욕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글 읽기의 양이 감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나는 글을 못 읽는 사람이구나"라면서 자포자기하게 되고 공부에 대한 의지마저 잃어버린다.


문해력 격차가 학습 격차로 이어지는 문제에 대해 조병영 교수는 "문해력은 매튜 효과(matthew effect)가 특히 많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매튜 효과는 부익부 빈익빈, 그러니까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렸을 때 필요한 시기에 읽기 능력을 적절하게 발달시키지 못하면 문해력 격차가 발생하는데, 한 번 격차가 벌어지면 그 격차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잘 읽는 아이들은 더 잘 읽게 되고 못 읽는 아이들은 점점 더 뒤처지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문해력 격차는 더 커지게 마련이고, 이것이 학습 격차로도 이어진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초기 문해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채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읽기 부진아가 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매튜 효과'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학령기 전체에 걸쳐 문해력 격차가 계속 커지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매튜 효과가 작동하기 전에 적절한 조기 개입을 통해 문해력 격차를 해 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 엄훈 교수는 <아동기 문해력 발달 격차에 대한 문제해결적 접근>이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아동기 문해력의 발달 격차 문제에 대한 해결의 포인트는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매튜 이펙트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전에 조기에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조기 개입에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 그것도 가급적 1학년 시기에 문해력 발달의 면에서 아이들이 실제로 동일한 출발점에 설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초기 문해력 조기 개입이다. 초기 문해력 조기 개입은 초등 저학년의 교실 수업 강화와 교실 수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최저 수준의 아이들을 위한 초기 문해력 단기 집중 개별화 수업이라는 두 개의 트랙 전략으로 구현될 수 있다."



- 이어질 [EBS 당신의 문해력 2]에서 초등문해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개별화 교육방법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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