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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중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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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Oct 03. 2023

어부바 이벤트

자신의 무릎에 나를 올려놓고,

나의 몸무게를 가늠하곤 하는 남편은

종종 나를 업어준다.


갑자기 뜬금없이

내 앞에 등을 대고는 업히라고 한다.

나야 뭐 마다할 이유가 없지.

냉큼 업혀서는 좋다고 히히낙락이다.


"에구구, 우리 마누라 무겁네. 괜히 업히라고 했어~"

하면서도 나를 업고는 거실 한 바퀴를 돈다.


젊은 아해들 하듯이,

방 안 가득 촛불 켜두고

꽃잎 마구 뿌려놓고

은은한 음악과 조명으로 분위기 내는 것보다

훨씬 더 기분 좋은 '어부바 이벤트'이다.


주용일 시인은 『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은 날들이 참 오래 되었다』(오르페, 2016)에서 이렇게 말한다.

별 밤, 아내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한다. 그녀도 처음에는 저 별들처럼 얼마나 신비롭고 빛나는 존재였던가. 오늘 저녁 아내는 내 등에 붙은 파리를 보며 파리는 업어주고 자기는 업어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린다. 연애시절엔 아내를 많이도 업어주었다. 그때는 아내도 지금처럼 무겁지 않았다. 삶이 힘겨운 만큼 아내도 조금씩 무거워지며 나는 등에서 자꾸 아내를 내려놓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중략)


연애시절만큼 가볍지 않아도

세월의 무게만큼, 삶의 힘겨움 만큼

아내의 몸이 무거워졌어도

가끔은 아내를 업어주시라.

중년의 이벤트로 이만한 게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할 것.

어느 여름 저녁 마눌을 업은 남편이 말하길,


"아직은 업을 만하네~

근데... 손이 끝까지 안 닿아"


남편 팔이 짧아질 리는 없으니

결론은 흐음....

오래오래 남편에게 업히려면

양심상 살은 좀 빼야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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