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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중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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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04. 2023

온기가 그리운 계절

더우니까 옆에 오지 말라고
"저리 가, 저리 가!"를 연발하면서
스킨십을 시도하던 남편을 밀어낸 게  엊그제인데,
8월 마지막 날 무렵부턴 새벽엔 추워서 온기를 찾아 남편의 품으로 파고들곤 한다.

어느 늦여름에도 새벽 2시부터 그렇게 있다가 까무룩 잠이 들어 4시 알람소리에 깨어 일어났다. 두 시간 가량 남편의 온기에 파묻혀 자는 동안 슬금슬금 찾아오던 감기기운이 저만치 도망가고 가뿐해졌던 기억이 난다. 사람의 온기란 병마도 쫓아보내는 힘이 있다.

때로 남편은 잘 때 배 위에 앵그리버드 파란 새를 본따서 만든 인형을 올려놓곤 한다. (편의상 파랑이라고 하자) 중년 들어 나날이 위용을 자랑하는 배 위에 이 작은 인형이 올라와있는 걸 볼 때마다 실실 웃음이 난다.




"이불을 덮지 왜 그러고 있어?"

"이불을 덮자니 덥고, 안 덮자니 좀 추울 것도 같을 때 이 파랑이를 배에 올리고 있으면 적당히 온기가 돌아 잠이 잘 오거든~"
 
"에~ 진짜? 별로 크지 않아서 배를 덮어주는 것도 아니고, 오똑하니 배 위에 그냥 올려진 것뿐인데  따뜻하다고?"

"응. 너두 해보면 알아."

"해보나 마나지 뭐~ 됐슈!"

했는데......
어느 볕좋은 가을 오후에 소파에서 책 읽다 슬슬 졸음이 몰려오는 순간이었다. 뭐를 가져다 덮자니 일어나기 귀찮아서 마침 옆에  있던 파랑이를 배 위에 올려두었다. 그렇게 낮잠을 30분 정도 즐겼다.

의외로 파랑이가 전하는 온기가 넉넉해서 잠깐의 낮잠이라도 이불을 덮지 않으면 잠을 깊이 못자는 내가 세상 편하게 푹 잠을 잤다. 오호~ 이것이 남편이 말하던 파랑이의 위력이구나~ 싶었다.

그저 솜뭉치 털인형에 불과한 작은 인형 하나가 전하는 온기가 이 정도니 좀더 큰 인형이 주는 온기는 더하리라. 요즘 사람 크기만한 오리인형이 때아닌 인기를 누리는 이유도 이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36.5도의 체온을 지닌 사람이 전하는 온기는 말해 뭐할까? 코로나에 이어 급성수술로 10월을 아프게 보내는 남편이 이마를 짚어주고, 발을 만져주는 내 손길을 좋아하는 게 이해된다. 마눌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노곤한 잠에 빠져들어 통증을 잊을 수 있으니. 아플 때 옆에 돌봐줄 사람 하나 없으면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중년이 될수록, 중년에서 노년으로 갈수록 체온을 나누며 함께 있을 사람이 그리워지는지도.

가을이 깊어가고 온기가 점점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나의 온기를 나누어줄 사랑하는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는 한편, 그 온기가 가족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가족을 넘어 온기가 필요한 가족울타리 바깥으로도 퍼트려지길 바래보는 십일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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