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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Oct 18. 2023

마늘 까기 대작전

매년 가을 추석 무렵이면 하는 집안행사가 있으니 바로 마늘 까기다. 온 식구가 신문지를 펴놓은 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밤새 물에 불린 마늘 대여섯 접을 하루종일 까서 1년 먹을치 양식을 준비해놓는다.


2006년 3월 어머님과 합가한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온 행사이다. 김장은 안 해도 이 마늘 까기만은 집안의 연례행사로 자리잡은 이유는 매년 친정에서 부모님이 직접 심고 가꾸신 마늘을 우리몫으로 늘 챙겨주시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때 해남에 가면, 6월에 갈무리해서 창고 한쪽에 놔두신 커다란 마늘차두를 올라가는 차에 실어주신다. 가져와서 바로 까야 한 톨이라도 성할 때 먹을 수 있겠지만 한여름에는 그 대공사를 하기엔 날이 너무 더워서 더위가 가시기 시작하고, 온가족이 모여 일하기 좋은 때를 기다린다. 그 때가 바로 추석연휴이다 보니 늘 그맘때가 마늘 까기에 돌입하는 때이다.


2년 전 어머님께서 쓰러지셔서 시기가 늦춰져 11월 초에 한 게 아마 가장 늦게 마늘을 깐 때였을 것이다. 그해에는 미루다 미루다 더 미룰 수 없어 평일을 택해 까다 보니, 어머님과 나 둘이서만 까느라 거의 온종일 마늘을 까고도 갈아서 냉동실에 넣는 것은 그 다음날 아침에 해야 했다. 어머님께서 건강해지셔서 함께 마늘을 깔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던 2021년 가을이었다.


올해는 추석연휴가 길어서 연휴 마지막 이틀을 남겨둔 10월 1일 저녁부터 마늘을 물에 담가 불려놓고, 10월 2일에 본격적으로 마늘을 깠다. 딸은 출근하고, 아들은 고3이라 어머님과 남편, 나 이렇게 셋이서 6시간쯤 식탁에 앉아서 깠다. 처음엔 어머님과 둘이서만 하고 있었는데, 나 몰라라 하고 컴앞에 앉아 취미생활중인 남편에게 좀 도와달라 했더니 구시렁대면서도 함께 하기 시작했다. 마늘 까기는 손이 많을수록 속도가 나는 거라 확실히 남편이 가세하고부터는 마늘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다.


올 봄에는 가물어서 마늘 밑이 잘 안 든데다, 수확할 무렵에 갑자기 비가 많이 와서 마늘 작황이 안 좋은 편이라 올해는 마늘을 얼마 못 주겠다고 하셨는데도 우리 몫으로 주신 마늘이 서너접은 되보였다. 양은 작년대비 줄었어도 일거리는 작년이랑 비슷하거나 더 많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밑이 안 들어서 마늘알이 굵지 않고 자잘해 마늘 껍질 까는데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김치를 담가먹지 않고 사먹으니 마늘 쓸 일이 그닥 많지 않은 우리집은 작년에 손질해서 냉동해둔 마늘도 아직 많이 남은 상황이라 까면서 궁시렁궁시렁~


"이렇게 많이 안 주셔도 되는데, 올해는 농사도 잘 안 되셨다믄서 뭘 또 이렇게 많이 주셨나 몰라요." 하니


어머님께서 나의 푸념을 듣고는 한 마디 하신다.   


"그래도 사돈어른들 덕분에 비싼 마늘 푼하게 먹는 줄 알고 감사히 생각해라잉~ 이걸 사먹을라고 하면 돈이 얼만 줄 아냐? 그라고 국산이라고 속여 파는 중국산도 많은 시상에 이거는 제대로 국산 아니냐?"


옆에서 듣던 남편이 묻는다.


"마늘 사먹으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데요?"


"정확히는 몰라도, 올해는 마늘금이 더 비싸졌응께 이만큼을 살라믄 못 줘도 10만원은 넘재. 20만원까지 갈라나? 사다 먹으라고 하믄 이렇게 못 먹으꺼시다. 시골에서 농사지어 올려보내주신께 이라고 많이 까서 쟁여두고 아까운 줄 모르고 먹재."


"우와~ 마늘이 그렇게 비싸요? 껍질 까서 파는 건 더 비싸겠네요?"


"말해 뭐하냐. 예전에 서울 살 때도 마트 가서 보믄 봉지에 깐마늘 한 주먹도 안 담겨서 만 원 받더라. 거의 20년 전에도 그랬는디, 지금은 더 비싸겄재."


밥상물가를 모르는 남편이 마늘값을 듣더니만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마늘이 너무 작아서 까기 힘들다며 입이 댓발 나와 투덜투덜하던 게 쏙 들어갔다.   


플라스틱 대야 가득 쌓여있던 마늘이 드디어 바닥을 보이고 마지막 한 알까지 살뜰하게 껍질을 까고 나니 의례껏 하시는 어머님의 한 마디.


"눈이 게으르재, 그 많은 것을 다 깠다잉~"


올해도 깐마늘을 비늘까지 깨끗하게 씻어내는 건 어머님몫, 마늘 깐 자리 치우는 건 내몫, 남편은 바깥에 바람 쐬러 나갔다.


아직 해가 남아있어서 바로 마늘을 갈아서 넣어버리자고 보니, 마늘 갈 때 1년에 딱 한 번 쓰는 트랜지스터가 딸집에 가있네? 딸이 빵 반죽기 돌릴 때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집보다 딸이 더 자주 쓰겠거니~ 하고 이사나갈 때 보낸 생각이 났다. 무거워서 그냥 들고는 못 오고 차에 싣고 와야 할 상황이라 남편에게 전화해 가져다 달라고 했다.


트랜지스터를 가져와 마늘 가는 기계에 연결하고, 마늘 가는 것이 올해는 내몫이 되었다. 작년까지는 어머님께서 하셨지만 이제는 내가 기계사용법을 어머님께 배워서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어머님 손에서 30년 가까이 마늘을 갈던 기계가 내게로  넘어왔다. 작동법이 복잡해보여 그동안 해볼 깜냥을 내보지 않았던 기계인데 막상 해보니 그닥 어렵지 않았다.


"니가 나보다 더 잘 쓴다잉~ 이것도 나이 묵었다고 요새는 내 말을 잘 안 듣더니만, 니가 한께 잘 되네~"


어머님의 칭찬까지 들어가며 마늘을 갈았다. 어머님은 지켜보시며 다 갈은 마늘을 봉지에 넣는 걸 도와주시고, 냉동고에 들어가기 좋게 잘 묶어서 평평하게 눌러서 가지런히 옆에 놓으셨다. 올해는 총 10봉지가 나왔다. 삼계탕이나 고기먹을 때 먹을 통마늘을 갈지 않고 따로 챙긴 것도 네 봉지.


건강하신 부모님 덕분에 직접 농사 지으신 귀한 마늘을 얻어서 감사하고, 건강하신 어머님과 남편 덕분에 이 많은 마늘을 함께 깔 수 있어서 감사하고, 싸악싹 마늘을 잘 갈아주는 기계가 있어 편하게 갈아서 저장할 수 있어 두루두루 감사한 날이었다.


올해도 이렇게 마늘 까기 대작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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