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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Oct 07. 2021

똥참외와 토란뿌리

입맛이 변한 건지, 세상이 변한 건지  

'처서  물 보고 심는다'는 김장배추랑 무가 쑥쑥 자라는 10월이다. 공기는 하루하루 차가워져가고, 단풍은 나무 꼭대기에서부터 천천히 타고 내리는 계절.

사과, 배, 포도, 감 같은 가을 과일이 식탁을 점령하는 이때, 뜬금없이 참외 생각이 난다.

 

어머님께서 두 번째 병원 생활을 마치시고

며칠만에 검사 겸 외래진료를 하러 가시던 날이었다. 병원일을 마치고 처방전대로 약을 지으려고 함께 병원 앞 약국으로 가게 됐다.


마침 그 약국 앞에선 트럭을 대놓고 참외를 파는 분이 계셨다. 큼직큼직한 참외들이 봉지가득 먹음직스레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과일이라 이따 약국 나오는 길에 사가야겠다 생각하고 약국에 들어갔다.


손님들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3개월치 약봉지를 들고 약국을 나오며 과일행상 앞에 섰다.


"참외 한 봉지 얼마예요?"


"네~ 만 원입니다."


"우와~ 이렇게나 많은데 만 원이요? 싸네요. 맛은 괜찮죠?"


"엄청 달고 맛있어요. 맛은 보장합니다!"


"한 봉지 주세요~"


하고 만 원을 꺼내드리는데,

옆에 계시던 어머님께서


"이건 내가 사주마."


하시구선 잽싸게 내 손을 제지하시곤

지갑에서 만 원을 꺼내드셨다.


"아이~ 어머님,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살게요. 제가 먹고 싶어서 사는 거예요^^"


"그란께 말이다, 니 좋아하는 거라 내가 너 사주고 싶어서 그란다. 사장님, 제 돈 받으쑈잉~"


이쪽 저쪽 두 손에서 나와 나풀거리는 두 장의 만 원짜리를 난감하게 쳐다보시던 젊은 사장님은 결국 고민끝에 어머님의 돈을 받으셨고, 난 얼떨결에 어머님께서 사주신 참외 한 봉지를 들고 오게 됐다. 집에 가져와서 깎아 먹은 참외는 그야말로 달고 맛있었다. 어머님께서 사주신 거라 더 맛있었는지도^^


참외 먹을 때면 늘 어머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옛날에는 똥참외라고, 이라고 참외 먹고 밭에 들어가서 똥 싸면 거기서 나온 씨앗이 자라서 열린 참왼디 고것이 그라고 맛있어야."


"그거 밭에서만 자란 게 아니라 울타리 밑에서도 자라고, 두엄 옆에서도 자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ㅎㅎ 그라기도 했재. 밭에다만 똥 싼 게 아닌께 참외 먹고 싼 똥이 있는데믄 다 자랐을 것이다."


"제가 재작년에 어머님 말씀 듣고, 텃밭에다 맛있는 참외에서 나온 씨를 한 번 심어봤거든요? 신기하게 자라긴 자랐는데, 그닥 맛있진 않더라구요."


"그냥 씨를 심은께 그라재. 똥 먹고 자라야 한당께~"


"아~ 그게 그런 거였군요?^^"


추석이 가까워질 무렵 텃밭에 심은 토란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서, 올해는 토란뿌리 따로 사지 않아도 토란국 끓여먹을 수 있겠다고 하니 어머님께서 또 한 말씀하신다.


"시골에서는 토란 뿌리 그거 안 먹었어야. 토란대만 나물해서 먹었재. 서울 와본께 사람들이  좋다고 먹더라. 니 시아버지가 그렇게 토란뿌리 넣어 끓인 국을 좋아하드라. 뭔 맛도 없든만... 시골서는 토란 뿌리 어따 갖다 둘 데 없어서 처마밑에 부어놓으면 쥐가 하나씩 둘씩 물어가고 나중에 보믄 없어. 남으면 내년에 심고 없으면 말고~."


"왜 처마밑에 그냥 둬요? 어디다 담아두지."


"그릇이 귀할 때라 담을 그릇이 없어서 그랬재. 지금이야 그릇이 푼하지만 옛날엔 그릇도 귀했어야. "


그니까 예전 시골에선 쥐나 먹던 토란뿌리가

지금은 추석때면 꼭 찾아먹는 음식이 된 셈이다.

하긴 아귀도 옛날엔 그물에 걸리면 재수없다고 버리던 물고기인데 지금은 귀한 대접 받으며 아귀탕, 아귀찜으로 사람들 입맛을 돋우고 있으니, 세상의 변화란 참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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