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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Dec 15. 2020

봄을 먹다

산악인 어머님의 봄 마중

* 날이 추워서 봄에 썼던 글을 끄집어내 봅니다~^^



새벽이면 아파트 헬스장에서 두 시간, 낮에는 동네 산책로에서 평균 서너 시간씩 운동을 하시는 어머님께서 코로나로 발이 묶이셨다.


등산을 해도, (남편의 표현에 따르면) 거의 빨치산 수준으로 산을 타시는 어머님이시다. 어머님께서 20년 넘게 활동해오신 산악회는, (이 또한 남편이 보기엔) 북파 간첩 훈련을 목표로 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 빡쎈 등산 일정을 자랑했다.


한국 100대 명산이야 진즉에 주파하셨고, 눈이 허벅지까지 빠지는 엄동설한에 소백산 덕유산 눈꽃 산행에,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처럼 멀고 높은 산들의 무박 산행도 십수 번씩 다녀오셨으며, 한여름 더위에 지리산 종주도 수 차례 하셨다. 해외 원정 산행도 중국으로 몇 번 다녀오신지라 내심 히말라야도 다녀오시려나? 싶어서 가시고자 하면 보내드리려고 여쭈니, 산악회에서 같이 갈 사람이 없어 안 가신다고 하셨다. 속으론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 아쉽기도 했다. 히말라야 다녀온 시어머니의 며느리가 될 뻔했는데~^^


이토록 왕성한 외부활동을 해오신 어머님께서 코로나로 그 좋아하시는 운동을 못하시고 한동안은 꼼짝 마! 하곤 집안에만 계시려니 오죽 답답하셨을까. 답답시러워서 더는 안 되겠다 하시곤, 3월 중순쯤 마스크와 모자, 장갑까지 완전무장으로 꽁꽁 싸매시곤 집 앞의 청벽산에 다녀오신다며 나가셨다. 걸어서 10분 거리쯤에 있는 야트막한 동네산이다.


어느 날은 쑥을 한 봉지 캐오시고, 어느 날은 돈나물을 뜯어오셨다. 쑥은 쑥털털이(버무리)도 해 먹고, 쑥국도 해 먹고, 쑥부침개도 해 먹으며 야금야금 봄을 느꼈다. 돈나물로는 흔한 초고추장 생채 대신 풀국을 끓여 물김치를 담그셨다. 쪽파도 송송, 무랑 양파도 깍둑깍둑, 당근도 나박나박 썰어서 빛깔도 어여쁘게 조화를 이룬 돈나물 물김치를 한 입 먹었더니 그야말로 싱그런 봄맛이 입안에 가득 차올랐다.


쑥으로 만든 음식은 그닥 반응이 없어 좀 시들하셨는데, 물김치는 인기가 좋아 금방 동이 나자 신이 나신 어머님께서 집 근처에 지천으로 깔린 돈나물을 며칠 전 잔뜩 뜯어오셨다. 양이 제법 돼서 아들까지 가세해 셋이서 나물을 다듬은 뒤 물김치 만들기에 돌입!


이번에도 상큼한 봄맛을 기대하며 물김치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진달래를 뜯어다 화전도 해 먹고, 차로도 마시고, 술도 담그던데 우리 집은 돈나물로 봄을 먹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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