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안 쓰고 모셔져만 있다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시는 어머님의 정리벽으로 인해 버려질 뻔한 새 스뎅 그릇을 사수해서 친정에 공수한 이야기와 역시나 쓴 지 오래 됐으니 버리자고 하시는 어머님과 아직도 쓸만한데 왜 버리냐고 절대 못 버린다는 며느리의 밀당끝에 여전히 잘 쓰이고 있는 스뎅 냄비 이야기였다.
이번엔 50년 넘은 세월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스뎅밥통이다.
우리집에선 대량의 콩밥이나 찰밥을 했을 때, 호박죽이나 팥죽을 쑤었을 때 먹고 남은 밥이나 죽을 으례껏 담아두는 그릇이 있으니 바로 이 스뎅밥통이다.
이 스뎅밥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머님께서 남편을 낳기도 전에 경기도 성남 성호시장에서 큰맘 먹고 사신 것이라 한다. 남편이 만 나이로 올해 50이니, 이 스뎅밥통은 50년을 거뜬히 넘어 남편보다 더 오랜 세월 어머님의 손때가 묻은 그릇이렸다!
"성호시장이 집에서 가까우셨어요?"
"가찹기나 하다믄 좋간? 옛날엔 돈 십 원이라도 싸다고 하믄 거그까정 가서 장을 볼 땐께, 집에서 고개 너머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디도 성호시장이 싸당께 거그 가서 사왔재. 그때는 돈 백 원만 가지믄 장 볼 수 있었어야. 콩나물 10원, 두부 10원, 배추는 큰 거이 40원~ 이랄 땐께."
"와우~ 물가 정말 착했네요. 예나 지금이나 살림하는 여자들은 어디가 싸다고 하면 단돈 얼마라도 기어히 싼 곳 가서 사죠. 지금도 직접 장을 안 다닌다 뿐이지, 뭐 사려면 인터넷으로 가격비교는 필수거든요."
"그라고봉께 생각난다. 한 번은 아범이 아즉 깐난쟁이 때라 등에다 업고 배추랑 무랑 양념거리할 거랑 김치 담근다고 이거저거 장을 봐서 머리에 이고 오는디, 언덕을 넘을라고 봉께 어찌나 힘들든가 중간에 한 번 짐을 내리고 쉬었단마다. 그란디 다시 그 짐을 머리에 일라고 한께 도저히 혼자서는 못하겄드라. 마침 지나가는 아저씨가 보이길래 '아자씨~ 죄송한디 이 짐 잠 머리에 이어주실라요?' 한께 '그랍시다!' 하고 짐을 들어서 머리에 올래줄라다가 깜짝 놀라드라. 아범이 애기 때 얼굴이 포동포동하니 살집이 좋았거덩. 짐 들 때만 해도 안 보이던 애기가 머리에 이을라고 본께 등에 업혀있는 게 보였나베. '아이고머니나~ 아주머니는 애기만 해도 한짐이구만 어뜨케 이 짐을 여까정 이고 왔소?' 하드랑께~ ㅎㅎㅎ. 그때는 젊었응께 그라고 댕겼제, 지금은 누가 돈 주고 하라고 해도 못할 것이다."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긴 고개를 넘어넘어 사오셨던 스뎅밥통은 집에 보온밥통이 없던 시절, 겨울엔 여기에다 밥을 담아서 아랫목에 놓고 이불로 덮어두면 따끈한 온기가 몇 시간동안 유지되어 보온밥통 쩌리 가라하게 좋았단다. 하지만 좋았던 추억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한여름에 마당에다 수도 놓는 공사를 할 띠였는디, 그땐 집에서 밥해서 일하는 사람들 식사를 준비할 때라 아침 일찍 밥을 해서 아침식사 대접하고 남은 밥을 저 스뎅밥통에다 담아놨재. 점심 때 남자들 먹을 밥은 새로 해서 내놓고, 그때 막내고모가 일 도와준다고 집에 와있었는디 여자들은 아침에 먹고 남은 밥을 먹었니라. 그란디 점심 먹고 쪼끔 지난께 나랑 고모랑 배가 막 아프고, 속이 미식거리든만 토하고 아조 난리가 났재. 인부들은 멀쩡한 거 봉께 우리만 따로 먹은 밥이 문제인 거라. 아침에 한 밥인디도 날이 얼마나 더웠등가 그 사이에 빈해가꼬 식중독 걸려서 고생했당께. 그날이 엄청시리 덥기는 했어야. 지금같으믄 냉장고에 넣어두겄지만 그땐 냉장고도 없던 시절인께"
보온엔 좋았지만 보냉엔 한계가 있었던 스뎅밥통, 어머니가 해주신 추억담 말고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이 스뎅밥통 속에 담겨있을까? 50년 넘게 함께 하며 숱하게 이사를 다니면서도 어디 찌그러진 데 하나 없다고 기특해하시는 어머님의 스뎅밥통을 보니 정말이지 스테인레스의 견고함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