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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an 06. 2024

끝내주는 인생

이슬아의 23년 산문집 <끝내주는 인생>을 책이 막 나온 작년 7월에 읽고, 12월에 한 번 더 읽었다.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 빛나는 이슬아 작가는 2018년 <일간 이슬아 수필집>으로 데뷔한 이래,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이슬아 산문집'을 여러 타이틀로 펴내왔다.



거기다 이슬아는 2023년에 드라마 작가로서의 첫 시작도 알렸다. 2022년 10월 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된 이슬아 작가의 첫 장편 소설, <가녀장의 시대>가 제작사 하이그라운드와 손잡고 2024년에 방영을 목표로 드라마 제작 중이기 때문이다. <가녀장의 시대>가 이슬아 작가의 손에서 어떻게 각색될지 기대된다.


이슬아 산문집 <끝내주는 인생>은 아티스트 이훤과의 콜라보 작업이 더해져 그의 사진 '내 손을 떠나는 이야기'도 책의 첫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책 속 기억에 남는 내용들을 옮겨본다.


“슬아씨 재주는 슬아씨한테서 온 게 아니에요."

그럼 누구한테서 온 거냐고 제가 물었죠. 선생님은 대답하셨어요. "증조할머니가 주신 거예요. 그분이 큰무당이셨잖아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 대代를 횡단하여 전해졌다는 재주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증조할머니가 유명한 무당이셨던 것만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사십 년 뒤에 이런 문장을 적고 있습니다. 그가 태어난 날로부터 지금까지 백 년을 사이에 둔 증손녀의 판타지입니다. 병찬씨도 복희씨도 저도 언젠가는 순남씨 계신 곳에 도착할 텐데요. 무당이었던 조상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덜 고독해지는 기분입니다.


마르께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에서 사람들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 실수 때문에 어떤 고독이 거듭되죠. 후대의 자손들도 선조와 비슷한 고독을 겪고요. 그러나 저의 판타지에서는 고독보다 재주가 더욱 커다랗게 반복됩니다. 마술 같은 재주와 귀신같은 솜씨로 우리는 몇 대를 횡단하며 연결됩니다. 엄마와 엄마의 아빠와 그 아빠의 엄마를 동시에 품은 채로 노래를 하고 글을 쓰면서 저는 무언가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실은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어온 느낌. 내 몸이 그저, 재주가 흐를 만한 통로인 것 같다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 옛날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벌써 이렇게나 가까이 와버렸습니다. 순남씨가 보시기에 백 년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 가버리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어요. 쉼 없이 무얼 바라고 버리며, 더욱더 오래된 제가 되어가려 합니다.


- 그랜드도터 中에서



저의 글쓰기 스승 어딘이 대학생 때 썼던 문장을 들려줄게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시였어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미자, 옥자, 혜자, 순자, 희자......


이 시의 용맹함을 단번에 알아챘기 때문에 현은 웃었 다. 오로지 남성 현인들만 기록되던 역사 옆에 할머니들의 이름을 나란히 놓다니 얼마나 좋은가.


- 신인들 중에서



두 바퀴 돌면 딱 일 킬로미터다. 달리기가 잘 되는 날에는 누가 나를 뒤에서 밀어주는 느낌이 든다. 그게 누구냐면 지난 며칠간 꾸준히 달려놓은 과거의 나다. 그런 날들이 쌓였을 땐 몸이 마음을 거뜬하게 이끌고 간다. 하지만 오랜만에 달리는 날에는 마음이 몸을 이끌어야 한다. 몸이 안 따 라줘도 마음의 힘으로 살살 달래며 데리고 가는 수밖에 없다. 입은 다물고 주위를 보면서 뛴다.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 두 눈은 바깥을 향해 중에서



옆에서 스마트폰을 만지던 열두 살 이제하가 이르듯이 나에게 말한다.


“아빠는 놀릴 사람이 생겨서 재밌다고 말하는 거예요. 저를 맨날 엄청 놀리거든요." 이제하는 이재현과 조소정의 아들이다. 기저귀의 시절을 한참 지나 이제는 나에게 글쓰기 수업을 듣는 학생이기도 하다. 이제하의 얼굴에서 내가 사랑하는 두 편집자의 눈, 코, 입을 동시에 본다. 유전자란 정말 신비롭다. 그는 엄마와 아빠가 만드는 책들을 어깨 너머로 구경하며, 수학 숙제와 영어 숙제를 풀며, 같이 놀자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이웃집 친구의 부름에 달려나가며,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아빠의 농담을 눈치껏 분석하며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편집자이자 양육자인 이재현이 내게 한 번 더 강조한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정말 좋 아요. 어렵긴 해도요. 저는 정말 추천하고 싶어요."


그의 말이 너무 진심이어서 나는 생각에 잠긴다. 진짜로 그렇게 좋으려나. 미래를 이리저리 상상해보는데 옆에서 가만히 듣던 열두 살 이제하가 이렇게 말한다.


"아빠, 나 지금 완전 감동받았어."


그 순간 내 마음 한편에 커다란 종이 울린다. 이제하의 말은 이런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와의 시간이 그렇게 좋았다니. 소중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추천할 정도라니...... 완전 감동이야!'


태어나고 자란 어린이가 어른에게 그런 말을 돌려준다. 나는 두 세대 사이로 넘실거리는 사랑을 본 다. 이상한 어른인 나도 언젠가는 그 파도를 타게 될까.


- 판권면의 얼굴들 중에서

(책의 맨 뒷장을 판권면이라고 부른다. 편집자들의 이름은 그곳에 적혀 있다. 작은 글씨로)


살아남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나이 든 언니들은 지난 날을 회상하며 말하곤 한다. 하나의 고생을 지나면 또 다른 고생이 있는 생이었다고. 그중에서도 어떤 언니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끝내주는 인생이었다고. 그 언니의 말을 들으면 너무 용기가 나서 막 웃는다.


나는 내가 고생 한복판에서도 이렇게 농담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오, 끝내주는데?" 임종 직전에도 이 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이지 끝내주는 인생이었어." 그날이 죽는 날임을 미리 알아차릴 행운이 주어진다면 말이다.


삶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메일 답장 대리인도, 마감 관리인도, 요가 강사도 아닌 전업작가로 가능한 한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전업작가라는, 마법 같고 신기루 같은 이 시절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마지막 문장을 쓰게 하는 건 언제나 독자다. 독자가 글을 완성시킨다는 진실을 작가만큼 사무치게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들이 기다려주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날마다 겨우 글을 완성한다.


글을 보내고 나면 책상을 치운다. 노트북과 키보드와 찻잔이 있는 나무 책상이다. 아침마다 책상에 앉을 수 있다면, 이 단출한 장소로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어디든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 끝내주는 인생 중에서



어느 날 김진형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요즘 '유래'라는 말을 계속 곱씹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제 아이들인 예지와 예서의 유래는 당연히 진형과 순일이라 생각해왔는데요. 오히려 저의 유래야말로 예지와 예서가 아닐까, 저의 유래는 제 아내인 순일이 아닐까 싶은 거예요. 이런 세상 살아 무엇하나 하는 사춘기적 우울을 여태 앓고 있는 저에게, 삶의 지속가능성은 예지와 예서 그리고 순일로부터 유래하거든요.


유래는 존재의 기원일 텐데요. 제가 순남씨를 알게 된 건 슬아 작가님 덕분이므로 적어도 저의 세계에서 순남씨는 슬아 작가님으로부터 유래하죠. 고양이 탐이도 작가님으로부터 유래하고요. 여성의 계보도 그렇습니다. 작가님이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잊힌 여자의 계보가 복원되죠. 우리는 분명 누군가로부터 유래한 사람들인데요. 그가 저를 낳은 사람일 수도 있겠으나 저를 기억하게 만드는 사람들일 수도 있겠어요."


그러자 이 책이 끝나도 끝나지 않으리란 걸 알게 되었 다. 할머니의 삶이 끝났어도 나를 통해 선생님의 마음속에 살아있듯이, 책이 내 손을 떠난 후에도 누군가에게는 이제 막 시작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 에필로그 : 나만은 아닌 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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