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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r 04. 2024

엄마랑 15년, 시어머니랑 25년

친해지려면 방귀부터 트세요~

73년 소띠인 나는 올해 만으로 50이 됐다. 


올 1월에 무릎에 도가니가 나갔는지,

자꾸 무릎이 아파서 동네정형외과 가서 엑스레이 찍고, 물리치료받고, 약국에서 약 타오다 약봉지 보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


작년에 약을 탈 때까지만 해도 약봉지에 48세라고 적혀 있어서 그래도 아직 40 대구나~ 홍홍~ 했는데, 눈 몇 번 껌뻑이니까 50이라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50이 되니까, 몸이 지가 알아서  어르신 대접해 주라고 여기저기 난리가 난 모양이다.


1월에 무릎을 시작으로, 허리로 올라갔던 통증이 2월엔 어깨로 내려가더니, 팔까지 쭈욱 내려왔다.

병명도 무릎염좌,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건초염, 테니스엘보. 가지가지한다, 정말!


이렇게 50이 된 기념으로 온몸 구석구석이 나잇값을 하는 요즘, 뚜드려 맞은 듯한 몸으로 침대에 늘어져있다 잠은 안 오고 머릿속은 말똥소똥해서 지난 세월을 곰곰 짚어보다가... 또 깜짝 놀랐다.(뭐 이리 자꾸 놀래? 애 떨어지겄어~)

 

50년을 살아오는 동안,

나를 낳아주신 엄마랑은 한 지붕 아래 같이 산 세월이 15년인데, 시어머님과 함께 산 세월은 25년이나 된다는 거다. 내 평생의 절반을 시어머님과 함께 했다니~~~ 와!!!


정확하게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좀 더 세밀하게 계산기를 돌리자면, 99년에 결혼해서 처음엔 따로 살다가 06년 3월에 시어머님과  합가한 시점부터 따지면 19년이다. 엎어뜨리나 메치나 그래도 역시 엄마보단 시어머니랑 같이 산 세월이 더 길다.


계산기를 어떻게 돌리든 나를 낳아주신 엄마보다 더 오래 함께 살아온 분이 시어머니이고, 앞으로도 더 많은 세월을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갈 확률이 높은 분이 시어머니란 사실을 깨닫고 보니, 시어머니에 대한 입장정리를 신중하게 다시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20년 가까이 한집에서 생활하다 보니, 나는 어머님을 그렇게 어렵게 여기지 않고 산다.


막 결혼하고 새댁이었을 때부터도 시어머님께서 워낙 잘해주셔서 그닥 어려운 분이라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한집에 같이 살면서 볼 꼴 못 볼 꼴(뽀옹~ 방구를 뀐다거나, 꺼억 트림을 한다거나, 방바닥이나 이불에 오줌을 싼다거나, 왕창 토하거나... 기타 등등의 생리적 현상들) 다 보고 살다 보면 아무래도 그 어려움의 경계가 더욱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래봐야 며느리는 며느리고, 딸은 딸이기에 어느 순간엔 역시 시어머니란 자리는 어쩔 수 없구나~ 하고 실망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엄마보다 더 편하게 지내곤 한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이


"시어머니랑 어떻게 한집에 살아요? 나는 어쩌다 가끔 시댁 가서 시어머니 만나는 것만으로도 불편해 죽겠는데..." 하면


"어쩌다 가끔 만나니까 더 어렵고 불편한 거예요. 아예 같이 살면 하나도 안 어려워요~ 저는 시어머님 앞에서 방구도 뿡뿡 뀐답니다~ ㅎㅎ"


친정 갔다가 엄마 아빠 앞에서 어쩌다 실수로 뽀~~옹~ 하고 방구를 뀌면, 엄마가 놀래셔가지고


"아니, 넌 아빠 앞에서 창피하지도 않냐? 방구를 그라고 막 뀌게?"


하고 면박을 주시지만,

시어머님은 며느리의 방구소리에도 아무 표정의 변화가 없으시다.


딸이 그린 삽화 by 나미니


'뭐가 지나갔냐?' 하는 보살의 표정으로 하시던 일에 그저 골똘하실 뿐이다. 혹자는


"시어머님 귀가 좀 먹으셨나 보군요?"


하실 수도 있는데,

물론 내년에 팔순을 앞두신 이라 조금 가는귀가 먹으시긴 했으나 며느리 방구소리를 못 들으실 정도로 절벽은 아니시다.


내가 친정부모님 앞에서는 맘 놓고 못 뀌는 방귀를 시어머님 앞에서는 별생각 없이 뿡뿡 뀌고 살 정도로 시어머님이 편한 존재가 된 바탕에는 25년 세월을 함께 했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더 이유를 아보자면,

며느리가 이쁘면 방귀소리도 노랫소리처럼 곱게 들린다더라~ 하는  요새 속담처럼(내가 방금 급조한 거유. 속담사전 찾아보지 마셈!) 며느리를 이쁘게 보면 된다. 마찬가지로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곱게 바라보면서, 서로서로를 이해하면 방귀 소리 까이꺼 암 껏도 아니다.


부부사이에도 방귀를 트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얼마나 서로를 찐가족으로 생각하는지 테스트하곤 하는데, 시어머니와 며느리, 고부사이 이해도 테스트에도 딱이다.


시어머니랑 잘 지내고 싶으시다면,

며느리랑 잘 지내고 싶으시다면,

우선 방귀부터 트시길!^^


by 나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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