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깊이는 나만의 것

구렁텅이에서 나를 만나다.

by Malika

그렇게 갑자기 열정이 솟아나 현실도피를 하다

현실로 돌아오면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금

구렁텅이 나를 밀어 넣는다.


웅크리고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다

순간 누군가의 소리가 들리 듯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이 들린다.


한동안 살아가면서 내가 누군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길 없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다

이런 물음이 던져지면 두리번거리다

이내 모른척했다.


나라는 이름을 잊어버린지도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도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시간에 따라

세월에 따라

흘러가고만 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냇가인지, 강인지, 바다인지 모른 채

흘러만 가고 있었다.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프다고 해도 얼마만큼 아픈지 알 길이 없다.

두물머리에 가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나요?

다시금 울고 울었다.

울어도 돼요.

맘껏 울어도 돼요.

누가 뭐라 하나요.

내 구렁텅이에서 내가 운다는데.

울지 마라 해도 울음이 나긴 해요.


그렇게 울다 보니 구렁텅이에 눈물이 고여

구렁텅이에 가득 채워졌다. 그 눈물이.


그렇게 채우고 채웠던 나날들이

나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고

그 수면 위에 올라 구렁텅이의 눈물을 퍼올려보니

아픔의 깊이가 얼마만큼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나무는 알까요?

아픔의 깊이는 나만의 것!

아픔의 깊이는 나만 알 수 있는 것!


그러나 옆 구렁텅이에서는 아직도 반쯤도 차지 않는 누군가가 있었다. 나보다 깊은 누군가가.


옆 구렁텅이에 대고 큰소리로 외친다.


"울어요! 더 울어요!

그냥 울어요. 울다 지쳐 쓰러져도 울어요.

얼마쯤 남았다고 말해주지 않을게요.


당신이 얼마나 깊이 있는지 알길 없지만

그 눈물이 구렁텅이를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임이

틀림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눈물이라는 열쇠 덕에

나는 어떤 성향인지, 성격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어떤 노래를,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심지어 과자 취향까지.



몇 달 동안 집을 나가지 않았어요. 내가 아닌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거든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집 밖은 위험천만이었고요. 아픔은 나만의 것이니 아무도 모르잖아요. 굳이 설명하고 싶지도, 할 필요도 없잖아요. 구구절절하게.


당신의 구렁텅이의 깊이는 얼마였나요?

그리고 구렁텅이에서 발견한 것이 있었나요?

과거형이라도 좋고, 진행형이라도 좋아요.



@카르페 디엠/마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