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아악~~~~~!!!!!'
'윽윽윽'
'악악악'
그런 진단을 받은후(터닝포인트라고 말하고싶다)
억울했다. 대놓고 이야기하면 나한테 이런일이 생겨서 억울했다.
지금 억울한게 아니라 그때는 억울했다.
그때 그 억울함을 쓰지 못한것이 더 안타깝다.
글로는 억울하다고 말해도 억울함이 글의 감정에 묻어나지 않는다.
억울함이 당면했을때는 그때는, 글로 남길 힘이 없었다.
신들에게 내버려진 상태였기에 지금 억울하다는 감정을 글로 쓰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 억울함이 연해졌다. 억울했었던 느낌만 남아있을 뿐이다.
하루에도 열두번도 바뀌는 마음이다.
'악에 받쳤다가'
'억울했다가'
'속상했다가'
'짜증났다가'
'열받았다가'
'불쌍했다가'
'안쓰러웠다가'
별의별 감정이 마음을 왔다갔다 했다.
'그때 넘어져서 그런가'
'그때 그 드라마를 안볼껄'
'의자에 발을 잘 디딛고 있을껄'
'식탁을 그때 살껄'
'다 남편때문이다. 티비보려는데 왜 거실에 누워있어가지고'
과거를 다시 돌리고 싶었다.
과거에 대한 억울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때,
진단서에 적인 '상세원인불명'을 보면 머릿속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엉덩방아를 크게 찧은 것'
'병원에서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MRI를 찍지 않는 것'
'한의원가서 침을 맞아서 그런가'
'운동을 안해서 그런가'
현재의 상황을 모든 과거를 꺼내서 자책, 후회, 억울, 반성 등 부정적인 감정으로 채웠다.
메말라가는 가을나무같았다.
모든 감정들이 몸과 마음에 뒤섞여 나를 더욱더 자책한다. 수술하기 전까지 나의 마음상태는 내내 이랬다.
수술의 나에게 튼튼한 동아줄같았다. 수술이라는 심각성을 알기보다는 그냥 동아줄이였다.
전래동화 '해님달님'의 오누이처럼 하늘에 기도해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와서 나를 구해준다.
썩은 동아줄이 아니라 아주 튼튼한 동아줄이 수술이라면 그 수술을 받고 예전처럼 돌아갈 줄 알았다.
물론 호랑이처럼 썩은 동아줄은 아니더라도 그 동아줄의 댓가는 꽤나 고통스러웠다.
전래동화에서는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는 오빠가 밤의 달이 되고, 누이동생은 해님이 되었는데 나는 그냥 내가 좋다. 해님이나 달님이나 거창한거 말고 그냥 이전의 평범한 내가 되고 싶었다. 동아줄을 잡는다고해서 그 나머지 몫은 나의 몫이란걸 알지 못했다. 누구나 그렇듯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을 최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자부한다. 나도 그랬으니깐. 그때 의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였다고 자신있게 자부한 나를 자책한다.
억울함이 한번 더 밀려온다.
그때의 결정도 내가 한 결정이였고, 그때의 나도 나다. 그 결정이 틀린것이 아니다. 최선의 결정이든 최고의 결정이든 그 결정으로 인하여 지금이 있다. 그러나 가끔, 내가 하는 결정이 아주 튼튼한 동아줄이였으면 좋겠다생각한다.
썩은 동아줄인줄 알았는데 튼튼한 동아줄이였던지, 또는
튼튼한 동아줄인줄 알았는데 썩은 동아줄이 였던 경험이 있었나요?
@카르페 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