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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홍대리 Jul 03. 2021

'성적'을 믿는 엄마, ‘아이’를 믿는 엄마

엄마의 결심

어느 날 내게 코칭 수업을 받던 한 어머니께서 찾아와 아이가 가출을 했다며 제발 도와달라고 사정을 했다.

오지랖 넓은 내가 마다할 수도 없는 일이라 발 벗고 나서 수소문한 끝에, 다행히 가출 청소년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집에서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며칠 째 집에 들어가지 않아 행색이 후줄근한 아이를 밖으로 불러내 물었다.


“가출했다며? 우와, 이제 네가 네 인생을 결정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아이는 내 말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혼쭐을 내 집으로 돌려보낼 줄 알았는데, 다른 어른들과 다르게 말하니 어련했겠는가.


“그런데 가출은 왜 한 거야?”


아이가 우물쭈물하더니 만날 공부, 공부만 이야기하는 지긋지긋한 엄마 잔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모의 간섭과 공부에 대한 강요가 싫다는 이유로 가출하는 아이들이 참 많다. 잘되라는 소린 줄 알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같이 계속되는 반복에 그만 참지 못하고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이다.


“나와 보니 어때?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아이와 함께 잠은 어디서 자고, 어떻게 생활할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상처럼 아이에게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나는 슬쩍 물었다.

“여기저기 전전해봤자 별거 없지?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될 것 같니?”

“…….”

내 말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동안 가출한 아이들을 참 많이 만나봤다. 그중에는 전교 1등을 하는 아이도 있었고, 전교 꼴찌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가정폭력 같은 정말 심각한 경우를 제외하면 가출한 이유가 거의 비슷비슷하다. 대부분 부모와의 소통이 문제다. 그리고 거의 모든 부모들이 학생은 무조건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믿음에 경도되어 있는 경우다. 부모들이 아이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성적을 믿는 것이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 때문에 원수처럼 지내는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아이 행동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엄마는 풀 데 없던 스트레스를 내게라도 풀 듯 미주알고주알 아이 험담을 늘어놓았다. 한참 동안 그분의 하소연을 들어주다가 물었다.


“어머니, 만약에 아이가 내일 죽는다면 지금 바라는 세 가지만 말해보실래요?”


내 물음에 엄마의 입이 금세 닫히고 침묵이 흘렀다. 한참을 생각하던 엄마는 “숨, 숨을 쉴 수만 있다면…… 엄마, 하고 불러줄 수만 있다면…….” 하고 말하다 울음을 터뜨렸다. 어디 그 엄마뿐일까. 세 가지를 미처 말하기 전에 엄마들은 100퍼센트 울어버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물질은 모두 고유의 파동이 있다. 모든 물질은 다 다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녀에게 모두 똑같은 파동을 원한다. 공부 잘하는 파동 말이다. 이것을 절대 믿음으로 맹신한다. 그러나 아이를 믿어야 한다. 내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아이의 파동이 어떤지 알아야 한다.


나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용기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네가 엄마, 아빠를 바꿀 수는 없어. 하지만 바꿀 수 있는 것도 있지. 바로 네가 부모님을 바라보는 생각이야. 힘들지? 힘들지 않으려면 네 생각을 살짝 바꾸기면 돼. 어때,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내 설득이 통했는지 아이는 며칠간의 가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정이 북받치겠지만 아이를 다그치지만 말고 잘 보듬어주세요. 그래야 아이가 힘을 냅니다.”


며칠 뒤,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돌아온 아이의 짐 가방을 받으며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맙다.”라고 애써 말했더니 아이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느냐고. 바로 “칼국수 먹고 싶어요.”라고 했단다.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따뜻한 정이 가득했다. 문제가 조금씩 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다. 싸우고 가출하고 돌아와서도 칼국수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게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아이를 믿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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