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날의 떡집

3. 간절한 소망(1)

by 신성화

"언니! 나 어제 완전 잘생긴 남자 봤어."


떡집 유리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리며 동시에 이담의 빠르고 높은 목소리와 다급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어디서?"


봄나래의 질문에 이담은 미리 대답을 준비해놓은 사람처럼 술술 말을 이었다.


"떡집 맞은편 골목길 입구에서. 어젯밤에 지나가다 봤는데 진짜 잘 생겼어."


"얼마나 잘 생겼기에 이러는 거야."


이담의 호들갑이 익숙한 봄나래는 차분히 대꾸하면서 배송 주문을 마저 확인했다.


"길바닥에 쓰러져 있어도 '어머, 세자께서 왜 이런 곳에 쓰러져 계시지?', '이런. 왕자님이 다치셨잖아?'하면서 집에 고이 모셔 와야 할 것처럼 생겼어."


"세자나 왕자면 궁이나 성에 데려다주면 되잖아. 왜 집에 데려와?"


"이 언니, 뭘 모르네."


이담이 미간에 살짝 주름을 잡고 전날 드라마 내용을 전하는 고등학생처럼 말을 이었다.


"세자나 왕자가 왜 길에 쓰러져 있겠어. 분명 위험한 일에 휩싸인 거지. 궁중 암투라던가. 뭐, 그런 일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하여튼 진짜 잘생겼어."


흥분한 채 어제 본 사람에 대한 말을 이어가는 이담을 보면서도 봄나래는 작은 미소만 보일뿐이었다.


"아, 답답해. 보여줄 방법도 없고. 진짜, 진짜, 진짜 잘생겼다니까."


"알았어. 잘생겼어. 근데 밤에 봤다며. 잘 본 거 맞아? 조명빨 아니고?"


"절대. 그건 조명으로 나올 수 없는 후광, 아우라, 포스, 그런 거였어."


신나서 말을 잇던 이담이 돌연 입을 굳게 다물고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멍하니 쳐다봤다.

[오늘 오전 일양시 A빌라에서 다발성골절상을 입은 영아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평소 들려오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며칠 째 들리지 않자 이를 수상하게 여긴 시민의 신고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경찰은 숨진 영아의 부모를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습니다.]

"미친."


이담이 인상을 팍 찌푸린 채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껐다.


"아기 낳고 싶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저런 사람들한테는 아기가 쉽게 가는지 몰라. 원하는 사람한테 가면 좋을 걸."


이담의 분노가 솟아오르려는데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막 떡집으로 들어오던 지애가 미소를 머금으며 이담의 곁에 섰다.


"왜 젊은 처자가 인상을 팍 쓰고 있어. 못 볼 거 본 사람처럼. 주름 생겨."


"방금 뉴스에서 어떤 정신 나간 사람들이......"


이담이 뉴스를 전하려다 멈칫했다. 지애가 의아해하며 바라보자 이담이 봄나래를 쳐다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뉴스에서는 원래 끔찍한 일이 많잖아요. 안 좋은 내용이었어요."


봄나래가 자연스레 말을 이어받았다.


"그래서 뉴스가 보기 싫어. 안 볼 수도 없고."


"그러니까요. 그런데 어디 가시나 봐요?"


봄나래가 평소보다 꾸민 태가 나는 지애를 보며 말을 돌렸다. 떡집 앞, 이담의 트럭 뒤에 세워진 차 운전석에서 통화중인 재연의 모습도 보였다.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기로 했거든. 가는 길에 봄나래네 떡 홍보하려고 들렀지. 조각 떡케이크 종류별로 포장해줘."


"감사해요. 얼른 포장해 드릴게요."


봄나래가 딸기 떡케이크, 블루베리 떡케이크, 앙금플라워 떡케이크를 비롯해 다른 색색의 조각 떡케이크를 차례차례 포장 용기에 담았다. 평소보다 긴장한 듯 보이는 지애의 모습에 왠지 짐작 가는 일이 있어서 떡케이크를 담는 손길에 더욱 정성이 들어갔다.


"W기업 위성회사 건물은 리모델링 거의 끝난 것 같던데. 사람들은 언제부터 오는 거야?"


포장을 기다리던 지애가 이담에게 물었다.


"다음 주부터 이사 올 건가 봐요. 다음 주 금요일에 고사 지낸댔어요. 아마 업무 시작은 그 다음 주부터일 거예요. 19일."


"근데 W기업이면 IT회사잖아. 그런 곳도 고사를 지내나?"


"여기나 저기나 고사 안 지내는 곳이 드물걸요. 전투기에도 고사 지낸다던데."


"하긴. 나도 지난달에 새 차 뽑고 차고사 지내기는 했어."


지애가 웃으며 말하자 이담이 한술 더 떠 비밀스런 말을 전하는 척 목소리를 줄였다.


"W기업은 옛날에 큰 사고 난 다음에 계속 지내는 걸로 알아요. 이번에 들어올 때 풍수지리도 보고 들어왔대요. 그 왜, 아시죠? 저 옆 동네에 그분."


"들어는 봤지. 아무나 안 봐주신다 던데."


"그분이랑 W기업 회장님이 젊었을 때부터 친분이 있었대요. W기업 위치는 다 그분이 정해줬다고 들었어요. 그 다음부터 계속 승승장구하고."


"큰 기업들은 자리도 함부로 안 정한다는 소문이 사실인가보네."


"아까워요, 아까워. 위성회사가 들어온 건물을 미리 사놨어야 했다니까요."


이담이 당첨된 복권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말했다.


"이장님께서 그러실 돈은 있으시고?"


떡케이크의 포장을 마친 봄나래가 대화에 끼었다.


"없지. 늘 그게 문제야."


진지한 표정의 이담에 봄나래와 지애가 고개를 설레 저으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주문하신 떡케이크 나왔어요."


봄나래의 말에 지애가 핸드폰으로 계산한 뒤 떡이 포장된 보자기를 들었다.


"갈게. 둘 다 좋은 하루!"


지애가 인사를 건네고 몸을 돌리는 순간, 봄나래의 머릿속을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잠시만요!"


갑작스런 외침에 지애는 물론 이담까지도 놀란 눈으로 봄나래를 쳐다봤다.


"이따가 집에 가실 때 떡집에 잠깐 들리실 수 있나요?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지금은 없는 거라."


"그래? 알았어. 잠깐 들릴게."


"네. 이따 뵐게요."


지애가 눈인사를 보내고 가게를 나가자, 이담이 눈을 새초롬하게 뜨고 말했다.


"내 거는? 나는 줄 거 없어?"


이담의 물음에 봄나래가 빙긋 웃기만 했다.


"없구나. 내 거는? 나 삐질 건데?"


"그러지는 마. 나중에 줄게."


"대신 오늘은 내 소원 하나 들어줘."


"그래. 들어줄 수 있는 거면."


"진짜지? 좋아. 은하수리 웹진 준비 중인 거 알지? 나중에 인터뷰 참여해줘. 나 간다! 무르기 없음! 거절은 거절!"


이담은 빠르게 말을 쏟아내고 도망가듯 떡집을 나섰다. 이담을 부르는 봄나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이담의 트럭이 쏜살같이 가게 앞을 떠나고, 유리창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봄나래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뷰라......"


봄나래가 눈을 감고 차분히 숨을 고른 후 천천히 눈을 떴다. 곧장 주방으로 향한 봄나래는 한 곳을 응시했다. 원형의 싸리채반 위에 복숭아와 사과가 소담스레 놓여있었다.


'떡을 만들어. 이걸로.'


꿈속에서 들은 목소리가 봄나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당에 침입해서 동백나무에 복숭아랑 사과를 걸어두는 사람은 없지."


봄나래는 한참동안 복숭아와 사과를 바라보고, 또 지난 꿈을 돌이켰다.


"누구라도 다른 사람에게 꿈을 꾸게 할 수는 없고. 절대."


마음을 굳힌 봄나래가 복숭아와 사과를 집어 들었다.


-----

* '이 봄날의 떡집' 이전글 링크


이 봄날의 떡집 - 1. 새벽이슬 내릴 무렵(1)

이 봄날의 떡집 - 1. 새벽이슬 내릴 무렵(2)

이전 02화이 봄날의 떡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