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적막한 차안의 고요를 깬 건 재연이었다.
"이제 그만할까?"
차창 밖을 바라보던 지애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꺼낸 재연을 바라보았다.
"벌써 10년이나 됐네. 우리도 마흔 둘이나 됐고."
지애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던 기다림의 시간을.
배에 주사를 놓는 일이 늘 마지막이기를 바랐다. 산부인과 의사의 입을 통해 임신이 아니라는 말을 듣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랐다. 건강한 아이 한 명만 품기를 바랐다.
세월이 허무했다. 간절한 바램들이 허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마음이 허했다.
"이번에는 될 줄 알았는데."
물기어린 마음을 꾹꾹 눌러담은 지애의 목소리가 아파서, 재연은 지애의 손을 감싸쥐었다.
"아기 낳는 일로 이렇게 오랜 시간 병원을 다니게 될 줄 몰랐어. 그냥 자연스럽게 생기는 줄 알았거든. 살면서 이런 고민 할 줄도 몰랐고. 자기는 알았어?"
"아니. 전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정도로 없을지도 몰랐어. 옆에서 지켜보는 것밖에 못 하잖아."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잖아. 충분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애의 말에 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 다 몸에 이상은 없는데. 왜 그럴까? 어렸을 때, 우리 연애하던 이십 대 중반에 말야, 그때 우스갯소리로 아기 갖지 말고 살자는 말을 해서 그런가?"
지애가 분위기를 바꾸려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재연의 눈가가 붉어졌다. 지애는 애써 눈물을 참는 재연의 모습을 못 본 척 했다.
"아기도 좋지만 당신이 그만 힘들었으면 좋겠어."
재연이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어렵게 꺼냈다.
"그래. 이제 그만하자."
지연이 답하며 재연의 손을 더욱 꽉 쥐어주었다.
마을 초입에 있는 은하수 슈퍼 앞마당에서 슈퍼집 첫째 해나와 둘째 해율이 자전거를 타며 놀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 모습을 보고 미래를 상상하며 대화했을 지애와 재연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조용했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내가 받아올까?"
떡집 앞에 차를 세운 재연이 물었다.
"아니야. 자기는 차에 있어. 금방 다녀올게. 봄나래한테 물어볼 것도 있어서."
봄나래는 지애네 차가 떡집 앞에 서는 것을 보고 미리 준비해 둔 선물을 진열장에서 꺼냈다.
"오셨어요."
"응. 기대하면서 왔어. 어떤 선물일지."
지애가 떡집에서 풍기는 달큰한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봄나래가 색동보자기로 포장해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자를 건넸다.
"파는 건 아니고, 특별히 만들어 본 단자에요. 두 개 뿐이니까 형부랑 같이 드세요."
"그래? 고마워."
선물을 받아든 지애가 부드러운 재질의 색동보자기를 만지작거리며 머뭇거렸다.
"혹시 말야, 봄나래. 내가 친구들 만나러 가는 거 아닌 줄 알았어?"
예상치 못한 지애의 질문에 봄나래가 당황했지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그냥 짐작이었어요."
"그랬구나. 모른 척 해줘서 고마워. 선물도 고맙고."
지애가 돌아간 후 봄나래는 손가락으로 연신 진열장을 두드렸다. 선물하기 전 먹어본 맛보기용 단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고, 이따금씩 만드는 같은 종류의 단자들보다 더 황홀한 맛이었다.
"내 생각이 맞을까?"
봄나래가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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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편한 복장을 한 지애가 거실에 앉아 색동보자기를 풀고 상자를 열었다.
"와. 이거 봐. 예쁘지? 봄나래 손재주는 알아줘야 돼."
지애가 재연이 잘 볼 수 있도록 상자를 들어 보였다.
"예쁘다. 복숭아랑 사과네."
"실물보다 더 예쁘게 생겼지? 자기는 뭐 먹을래?"
"먼저 고르세요."
"나는 사과."
"그럼 내가 복숭아 먹을게."
"아니다. 내가 복숭아 먹을까?"
음식을 볼 때면 매번 갈팡질팡하며 고르지 못하는 지애였기에 재연이 익숙하다는 듯 웃었다.
"반반?"
늘 그랬던 것처럼 재연은 반반을 제안했다.
"좋아."
사이좋게 반반씩 단자를 나눠 먹으며 두 사람은 긴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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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봄날의 떡집' 1화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