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날의 떡집

5. 은하수리의 어느 하루(1)

by 신성화

이른 시간부터 고사떡을 만드느라 분주했던 봄나래가 완성된 떡을 포장해두고 쉬고 있었다. 이제 숨 좀 돌렸다 싶을 즈음 종소리가 딸랑딸랑 들려왔다.


"언니. 고사떡 받으러 왔어."


떡집으로 들어온 사람은 봄나래가 예상한 사람이 아니라 이담이었다.


"왜 최 과장님이 안 오시고?"


"내가 들를 일 있다고 받아 간댔어. 잠깐 바람 쐴 시간 있어? 고사 지내는데 같이 안 갈래? 바빠?"


이담의 질문에 봄나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배송 주문이 많아서 시간이 촉박해. 미안."


"바쁘다니 어쩔 수 없지. 나는 떡 배달이나 가야겠다."


이담이 제법 묵직한 떡 상자를 번쩍 들고 가게를 나섰다. 이담을 배웅하고 진열장으로 향하는데 봄나래의 핸드폰이 짧은 진동음을 울렸다.


3년만의 연락이지만 잊을 수 없는 똑같은 뒷자리 번호. 번호를 따로 저장해 두지는 않았지만 누구인지는 단번에 알았다. 봄나래가 주저하는 손길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늘 떠난단다. 건강하렴.]


짧은 문장으로 간신히 남아있던 끈마저 끊어진 것 같았다.


"너도 알고 있을까."


꺼진 핸드폰 화면 위에 봄나래의 쓸쓸한 얼굴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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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기업의 고사가 마무리 되자, 회사 직원들과 마을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음식을 나눠 먹었다. 온 동네가 흥겨움 가득한 축제 분위기였다.


"이장님은 왜 안 드십니까?"


단정하게 입었던 양복 재킷 단추를 진작 풀고, 넥타이는 주머니에 넣은 최 과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담에게 물었다.


"조금 이따가 먹으려고요. 오늘부터 최 과장님은 계시고, 박 과장님은 가시는 거죠?"


"그렇죠."


"오늘 참석한 다른 분들은요?"


"몇 명은 가고, 몇 명은 새로 올 겁니다. 아직 그쪽에서 일이 안 끝난 사원들이 있어서요."


최 과장의 대답이 이어지고 있을 때 덕기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둘 다 술 한 잔, 딱?"


덕기가 빈손으로 잔을 든 척 손목을 까딱였다.


"예. 좋죠."


덕기의 물음에 최 과장이 서글서글하게 대답했다. 이미 마을 사람들과 친분을 다져두던 최 과장은 은하수리에서 몇 년을 산 사람 같았다.


"나는 괜찮아요. 아빠 술 조금만 드세요."


덕기가 이담에게 윙크를 찡긋 날리고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최 과장을 이끌었다. 이담은 아까부터 눈이 마주치던 사람을 향해 자리를 옮겼다.


"예진서. 오랜만이다? 세상은 생각만큼 넓었냐?"


"넓기도 좁기도 하더라."


진서가 픽 웃으며 답했다. 어린 시절 자주 내뱉곤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이담이 고맙기도 했고, 그런 말을 하고 다닌 날들이 민망하기도 했다.


"이런 고사 오랜만에 보지?"


"대신 세계의 모습을 봤지."


"예예. 그러시겠죠. 아저씨는 좀 어떠셔?"


"더 나빠지진 않으셔. 아직까진."


진서가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이담이 진서의 어깨를 무심하게 툭 쳤다.


"오랜만이다. 이런 위로."


"그때나 지금이나 네 얼굴은 딱 막내상이야. 너무 철들지 마. 재미없어 지겠어, 내가."


"누가 보면 한참 누나인줄 알겠다. 고작 한 살 차이인데."


"너와 나의 정신 연령이 하늘과 땅 차이니까."


이담이 손가락으로 하늘과 땅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사진관 같이 갈래?"


"바쁘신 이장님은 갈 곳이 있지."


"어디 가는데?"


"진섭이네. 소가 새끼 났대."


"이장이면 거기까지 가야되는 건가?"


"아니. 이건 그냥 호기심. 윤서 언니랑 현서 언니는 잘 살고 있지?"


"그럴 걸."


"그럴 걸이라니. 안부 전해줘. 사진관에는 조만간 들를게. 아, 웹진 제작할 예정인데 재밌겠지? 참여하는 거 한 번 생각해봐. 긍정적으로. 간다."


이담이 떠나자 남자 아이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진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삼촌. 이거 먹을래요?"


아이가 내민 건 종이컵에 담긴 떡이었다. 진서가 무릎을 굽히고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고마워. 이름이 뭐야?"


"문해율. 7살이에요. 태권도 노란띠 땄어요."


"그래? 잘했네. 축하해."


진서가 해율의 갑작스런 자랑에 당황하면서도 축하해주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애 낳으면 잘 키우겠다, 너. 윤서가 이걸 알려나."


강은이 휠체어를 멈추며 말했다. 웃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만큼은 예전 그대로라고 진서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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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봄날의 떡집' 1화 보기

이 봄날의 떡집 - 1.새벽이슬 내릴 무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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