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날의 떡집

6. 은하수리의 어느 하루(2)

by 신성화

허리를 수그린 채 송아지를 바라보는 이담의 옆에서 진섭이 우쭐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 말이 맞지? 귀엽지?"


"인정. 모처럼 옳은 말 했어. 오늘은 인정한다."


이담은 어린 송아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커다랗고 까만 눈도, 풍성하게 자란 여린 속눈썹도 신기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는 처음 봐.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릴 때는 다 귀엽네."


"너한테도 그런 시절이 있었겠지."


"난 그랬겠지. 지금도 그러니까. 넌 예외고."


"낮술 했냐? 됐고. 이제 그만 보고 가."


"송아지를 인질로 잡다니."


"송아지는 사람이 아닌데."


"송아지를 우질로 잡다니. 이런 우라질."


"욕쟁이 라임 맞춰 래퍼로 진화중이네. 계속 성장해서 세계로 진출해라."


진섭의 말에 이담은 엄지만 척 들어보였다. 시선은 송아지의 말간 눈망울에 향한 채였다. 송아지는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근데, 너네 동네 들어오는 회사, 옛날에 가고 싶어 하던데 아니냐? 공무원 시험 준비하기 전에."


"맞아. 가차 없이 떨어져서 공무원 시험 준비했지. 아...... 그 건물을 샀어야 돼."


"뭔 헛소리야."


"됐고. 이것만 알아둬. 짝사랑하던 남자한테 대차게 차이고,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기분인 거."


"너랑 IT는 진짜 안 어울리는데. 너 고 1때 컴퓨터 시험 4번 떨어지지 않았냐?"


"다섯 번째는 붙었잖아. 합격했으면 됐지. 지금은 어엿한 스마트팜 농장 주인이고. 아니, 관리자. 그냥 알바생?"


"언제는 농장주 2세라며. 야. 축사주 2세는 소 밥 줘야 돼. 도울래?"


"아니. 갈 건데. 은하수리 이장은 바빠."


"송아지 구경 온 바쁜 이장님, 가라."


이담은 마지막으로 핸드폰에 송아지 사진을 담고, 진섭네 축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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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처음 보는 차인데."


이담이 핸들을 붙잡으며 대치 상태로 마주선 차를 쳐다봤다. 맞은편 운전석에 탄 젊은 남자는 놀란 고라니처럼 멈춰 있었다.


"또?"


이담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얼마 전 그날과 똑같았다. 길을 잘못 든 젊은 커플이 탄 차와 이 길에서 마주친 그날.


"시골길이 어렵지. 어려워."


이담이 고개를 설레 젓고는 차에서 내렸다. 차에 탄 남자는 이담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 창문을 내렸다. 과수원 쪽으로 비탈진 흙을 밟으며 운전석 옆에 선 이담이 남자를 마주했다.


"어쩌다 이 길로 오셨어요?"


"그...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로 따라왔어요."


이담은 거치대에 놓인 남자의 핸드폰을 슬쩍 바라봤다. 또 W 회사의 내비게이션이었다. 얼마 전 젊은 커플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이 길에서 낯선 차량을 마주치는 일이 더러 있었고, 전부 W회사의 내비게이션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대체 그 회사는 넓은 길 놔두고 농로 취급받는 좁은 길을 알려주는 거야. 사고 나면 어쩌려고."


이담이 다 들리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담이 타고 온 트럭은 구불거리는 구간을 지나온 참이었기에 후진이 어려웠다. 남자의 승용차 뒤쪽 길을 살피니 후진해서 과수원 쪽에 차를 잠깐 빼두면 될 듯 보였다.


"후진해서 저기까지 갈 수 있겠어요?"


이담의 말에 남자가 안전벨트를 잡아당기며 고개를 뒤로 빼서 과수원 입구의 위치를 확인했다.


"가볼게요."


남자가 천천히 차를 후진 시켰다.


"어? 어어? 멈춰요. 멈춰."


이담이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외쳤다. 그대로 가면 차 바퀴가 옆에 밭으로 빠질 상황이었다. 아니면 사과나무를 쳐서 나무며, 차며 사달이 나던지. 사람은 안 다치겠지만 일은 복잡해질 게 분명했다.


이담의 외침에 남자가 당황한 듯 서둘러 차를 세웠다. 이담은 비탈진 경사의 흙을 아슬아슬하게 밟으며 다시 운전석 옆으로 갔다.


"제가 아직 운전이 미숙합니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난감한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이담을 올려다봤다. 살짝 인상을 썼는데도 눈빛은 참 소년 같았다.


"어디서 봤더라 이 눈빛을. 분명히 봤는데."


이담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에요. 제가 빼도 되죠? 내려 봐요."


이담의 말에 남자가 순순히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차 문을 피해있던 이담은 남자가 과수원으로 내려오자 운전석에 앉아 신발을 탁탁 털고는 문을 닫았다. 남자가 도로로 움직여 차 앞쪽에 서자, 이담이 능숙하게 후진한 뒤 사과밭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내렸다.


이담은 트럭을 몰고 가 사과밭 입구를 지나쳐 세워둔 다음, 다시 남자의 차를 빼왔다.


남자 가까이에 차를 댄 이담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저기 큰 나무 보이죠? 이 길 끝에."


이담의 손을 따라 남자가 시선을 돌려 나무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좌측 말고 우측으로 가요. 그쪽 길이 더 좋으니까."


"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뭐, 그래요. 그리고 내비게이션 바꿔요, 가능하면. W회사 내비는 맨날 넓은 길 놔두고 좁은 길 알려준다니까요. 그럼 조심히 가세요."


이담은 남자를 지나쳐 트럭으로 향했다.


"최 과장님에게 말씀드려 봐야지."


중얼거리며 멀어지는 목소리에 남자가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며 멀어지는 이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생각에 잠긴 얼굴 위로 구름이 만든 그림자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곧 이담의 트럭이 좁은 길을 유유히 빠져나가자 남자도 운전석에 올라 목적지로 향했다.


"아, 어디서 봤더라. 낯익은 눈인데."


이담이 아직 텅 비어있는 논과 논 사이의 시골길을 달리며 남자를 닮은 눈을 생각했다. 가로수로 심어둔 벚꽃나무에는 꽃이 만개했고, 먼지 없는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몇 개가 둥실둥실 떠다녔다. 이맘때쯤이면 늘 보는 풍경이지만 언제나 마음이 설렜다.


한참을 풍경에 취해있던 이담이 불현듯 한 손으로 운전대를 탁 치며 외쳤다.


"아! 소눈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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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날의 떡집 - 1. 새벽이슬 내릴 무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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