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날의 떡집

7. 선택

by 신성화

지난 한 주 동안 봄나래는 틈틈이 동백나무를 살피며 새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여러 종류의 새들이 오갔지만 맑고 높은 음색으로 삑- 우는 새는 만나지 못했다. 야행성 새인가 싶어 밤을 샌 날도 있었지만 허사였다.


"새 울음 소리도 들었고, 모습도 봤는데....... 어린 아이 목소리는 어디서 들려온 걸까?"


봄나래는 어둠이 내린 침대 위에서 바로 누운 채 눈을 끔벅였다. 지난 꿈의 영상이 희미해졌지만 그때의 감각만은 또렷하게 떠올랐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는데. 다시 만나야 해."


봄나래는 천장을 바라보며 자그마한 새의 모습을 떠올렸다. 꿈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어느 순간 봄나래의 귀에 째깍째깍 소리가 들려왔다.


"침실에는 시계가 없는데."


초침 소리가 잠들기를 방해하던 나날들 이후로 침실에서 시계를 치운 것이 3년째였다.


봄나래는 캄캄한 주위를 살폈다. 지난번처럼 걷고 있지는 않았지만 발바닥은 따끔거렸다.


"이번에도 마당인가?"


천천히 손을 올려 주위를 더듬어 보려는데 규칙적인 초침 소리에 삑- 하는 새소리가 섞여 들렸다. 멀리서 들려오던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위치를 알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새가 울었다.


봄나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금세 주변이 밝아졌다. 봄나래는 밝아진 풍경 안에 동백나무가 있다는 걸 알았다. 자그마한 새도 함께.


"안녕?"


동백나무에서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번 꿈보다 빛이 닿는 공간이 넓어진 듯 했지만 어디서도 어린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봄나래가 동백나무 가지에 앉은 새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네가 말하는 거니?"


앙증맞은 새는 고개를 빠르게 까닥였다. 막상 새가 질문에 응답하자 봄나래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동화책 본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나는데. 이건 꿈이야, 꿈. 괜찮아."


봄나래가 심호흡을 뱉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이 많았지만 제일 궁금한 건 이거였다.


"너는 누구야?"


"동박새."


짧은 대답이 빠르게 돌아왔다. 봄나래가 다른 걸 물어보려 입을 벙긋하자 동박새가 날아올랐다.


"가지마. 이리와."


봄나래가 주위를 나는 동박새를 다급히 부르며 손을 뻗었다. 동박새가 천천히 하강하더니 발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봄나래의 손바닥에 내려놓았다.


"쑥?"


봄나래가 궁금한 일을 물어볼 틈도 없이 동박새는 사라졌다.


눈을 번쩍 뜬 봄나래의 손에 갓 뜯어온 듯 싱싱한 쑥의 생기가 전해졌다.

-----
오후부터 갑작스럽게 내린 비가 순식간에 바깥의 풍경을 바꿨지만 봄나래는 종이 위에 글씨만 끼적이고 있었다.

[장소는 마당. 동백나무 앞. 말하는 동박새. 정체모를 어린 아이 목소리. 4월 10일 첫 번째 꿈에서 받은 건 복숭아와 사과. 4월 17일 두 번째 꿈에서 받은 건 쑥.]

꿈 속 장소가 같고, 동박새가 등장했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었다. 펜을 쥔 채 턱을 괸 봄나래가 더 적을 만한 내용이 없을지 생각나는 모든 걸 떠올렸다.


"모르겠어."


봄나래의 꽉 막힌 생각을 흩어놓은 건 종소리였다.


"어서 오세요."


봄나래가 인사를 건네자 그쪽에서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외지인인가 싶었지만 제법 편한 복장이라 놀러온 사람 같지는 않았다.


진열대에서 남자가 원하는 떡을 고르는 사이 다시 떡집의 문이 열렸다.


"언니. 나 왔어. 오늘 비 소식 없었는데 웬 비야."


이담이 우산을 접어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우산꽂이 옆에 섰다.


"이건 또 왜 이래."


이담이 우산을 묶으려니 똑딱이가 고장 났는지 잠기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담은 우산꽂이에 우산을 그대로 넣었다.


손님에게 포장된 떡을 건넨 봄나래가 이담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이담이 손을 흔들며 진열장 쪽으로 걸어가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 초보운전?"


이담의 생각은 긴가민가했으나 말이 더 빨랐다.


"공승재입니다. W 회사에서 근무하는."


딱딱하고 정중한 말투였다. 그날의 긴장이나 당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생이 아니라 사회초년생처럼 보여 분위기가 새삼 달랐다. 소를 닮은 눈을 빼고는.


"W 회사?"


이담은 첫날의 대화를 떠올렸다. W회사의 내비게이션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하필 그 회사 사람이라니. 오지랖이 과했나 싶었지만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W회사의 내비게이션이 길을 잘못 알려주는 건 사실이기도 했고.


"오류는 해결 했습니다."


담담한 문장을 던지고 승재는 유유히 이담의 곁을 지나 가게를 나섰다. 이담은 승재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봄나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언니. 저 남자가 뭐래?"


"꿀떡 하나 주세요."


"그거 말고는?"


"약과도 하나 주세요."


"아니, 그런 말 말고."


"다른 말은 안 했어. 아는 사람이야? 나는 처음 보는데."


유리창을 휙 돌아보며 남자가 사라진 길을 내다본 이담이 무심하게 말을 뱉었다.


"소 눈깔."


"차 빼줬다던 사람?"


"응. 관련 부서에 있나? 하긴. 나랑 무슨 상관이야. 언니, 나 쑥떡 하나만. 엄마가 꼭 사오래."


"어떤 걸로?"


쑥떡도 종류가 많았기에 봄나래가 되물었다.


"쑥인절미. 아빠 좋아하는 증편도 사야겠다. 그것도 줘요."


"그래. 잠깐만."


봄나래가 진열장에서 쑥인절미와 증편을 꺼냈다.


"씁. 아무래도 찜찜해. 언니, 쑥떡 하나만 더 줘."


"왜?"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랬어. 그거 쑥찰떡 맞지?"


이담이 가리킨 건 봄나래가 따로 담아둔 쑥찰떡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봄나래는 주먹 만한 크기의 떡 두 개를 모두 담았다.


"하나는 그 분 드리고, 하나는 너 먹어. 네 건 선물이야."


"역시 언니밖에 없어. 고마워!"


계산을 마치고 발걸음을 서두르던 이담이 우산을 꺼내들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맞다. 지애 언니네 가죽공방 문 닫는다더라. 10월까지 여행 간다네? 나 진짜 갈게!"


이담이 달려가는 모습을 봄나래가 가만히 지켜보았다.


"너의 선택이구나, 이번에는."


봄나래가 기지개를 쭉 펴고 난 뒤 아까 보고 있던 종이를 손에 들었다.


-----

* '이 봄날의 떡집' 1화 보기

이 봄날의 떡집 - 1. 새벽이슬 내릴 무렵(1)

이전 06화이 봄날의 떡집